♡피나얀™♡【여행】

맨발의 달림이, 산 속을 질주하다

피나얀 2007. 5. 15. 23:02

 

출처-2007년 5월 14일(월) 오후 3:38 [오마이뉴스]

 

 

▲ 싱그럽기만 한 5월 13일 대전 계족산에서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맨발로 산길을 달리는 마사이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2007 임윤수

 

'텀벙'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헛헛한 가슴에 서러움 같은 눈물이 부슬부슬 흘러내립니다. 슬프거나 서러워서 서러운 게 아니라, 잠시나마 잊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벅차게 명치끝에 치솟아 오르기에 감당할 수 없는 서러움입니다.

두 손을 모은 할머니, 뭔가를 애틋하게 기도하고 계신 한 할머니의 애절한 모습은 진지함을 넘어 거룩해 보였고, 너무나 간절한 모습이기에 보는 이의 마음을 서럽게 합니다. 파파 할머니가 되었어도 시들지 않는 어머니들의 모정, 한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오롯하게 담고 계신 할머니의 자애한 모습이 회초리처럼 명치끝을 자극하며 가슴으로 흘러듭니다.

나이를 먹어 몸은 쇠잔해지고, 몸뚱이가 늙으니 여자로서의 외모와 뜨거움은 사그라들었을지 모르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모정, 일구월심 자식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늙지도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들의 모정은 새댁 시절에도 대단했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대단합니다. 산고의 고통 끝에 갓 낳은 자식을 끌어안고 있는 새댁 시절의 모정이나 지팡이에 육신을 의지해야 하는 꼬부랑 할머니가 가지는 모정의 크기는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 사진과 그림들을 전시해 놓으니 행사장으로 가는 임도는 노천갤러리가 되었습니다.
ⓒ2007 임윤수
아무리 강조해도 어머니들의 마음은 정말 대단합니다. 수줍은 많은 새댁 시절에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훌떡 젖가슴 풀어헤치고 배고픈 자식에게 젖꼭지 물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더니 파파할머니가 된 늙은 몸이 되었어도 자식들을 위한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마련 된 노천갤러리

입가심 같은 싱그러움이 흐드러지는 신록의 5월입니다. 숨 한번 크게 쉬니 코끝이 상큼해지고, 마음껏 들여 마시니 가슴조차 풋풋해집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니 사방천지가 신록으로 싱싱합니다.

산이 싱싱하니 바람도 싱싱하고, 바람이 싱싱하니 마음도 싱싱합니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5월의 산하는 마냥 싱싱하고 푸르기만 합니다. 아무 곳이나 쥐어짜기만 하면 5월의 싱그러움이 주루룩 물줄기처럼 쏟아질 듯합니다.

5월 13일,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어지는 맨발마라톤, 마사이마라톤대회엘 참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계족산 자락으로 하나둘 모여듭니다. 잘 다듬어진 임도를 따라 사람들이 걸어갑니다. 대회장까지 들어가려면 얼마만큼은 더 들어가야 하지만 오늘 하루쯤은 누드 족이 되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 일찌감치 신발과 양말을 벗어버리고 맨발이 된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 맨발로 흙길을 내달리는 쾌감, 키스 같은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전국의 누드 족들이 계족산으로 모였습니다.
ⓒ2007 임윤수


 
▲ 맨발로 흙길을 달리겠다고 나선 발들은 건강해 보였고, 아직 맨발에 자신이 서지 않는 참가자는 예쁜 덧신을 신었습니다.
ⓒ2007 임윤수
울퉁불퉁했던 산길은 이미 고운 흙으로 다듬어져 있고, 산길 여기저기에 볼 것 들이 널렸습니다. 싱그러움에 묻혀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산길은 노천갤러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찍어온 다양한 사진들이 산길을 따라 자신을 드러냅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은 조명이 되고, 이따금 불어주는 산바람은 사진 속 풍경에 향기를 실어줍니다. 여느 갤러리나 전시회장처럼 격식을 차리진 않았지만 풀꽃 같은 향기와 싱싱함이 배어나는 천혜의 갤러리가 되었습니다.

폐부를 시원하게 해주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시공을 초월한 사진 속 세계를 감상합니다. 사진 속 세계에는 산사의 풍경소리도 들어 있고, 하늘을 붉게 물들인 해질 무렵의 석양도 있습니다. 오드득 이빨 떨리게 하는 한겨울 풍경은 물론 하롱베이의 아름다움도 들어 있고, 포대화상의 넉넉한 미소도 들어 있습니다.

산세에 맞춰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놓여진 사진들은 놓여진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고, 그 작품에 들어가 구경꾼이 된 자아의 모습 또한 하나의 작품이 될 만큼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습니다.

▲ 행사장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대회조직위원장인 조웅래 선양주조 회장의 어머니 이두수할머니(왼쪽)와 장모되시는 분입니다. 이두수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90이나 된다고 하셨습니다.
ⓒ2007 임윤수
노천갤러리는 꽤 길고도 진지합니다. 전시된 사진 위쪽으로 구도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갇힌 공간이었다면 미술 감상에 문외한인 필자에게 자칫 둔탁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페인팅들조차 싱그러운 5월의 구불구불한 흙길에 놓이니 아름다움으로 마음에 젖어듭니다.

할머니 세대의 어머니를 만나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행사장에서 산 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마련된 들마루, 평소 산림욕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걸터앉거나 올라가 앉을 수 있게 마련된 들마루에 파파할머니가 앉아 계신 게 눈에 띕니다. 지금껏 행사장을 두리번거리며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 중 제일 연장자가 분명합니다.

할머니 일행은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셨는지 식사를 마치고 막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느린 걸음으로 걸을지라도 할머니께서도 맨발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온 참가자인지가 궁금해 할머니에게 다가가 맨발마라톤엘 참가하러 오신 거냐고 여쭈니 "아이, 못해요. 조웅래가 내 아들인데요. 뭘" 하십니다. 불청객처럼 불쑥 여쭙는 질문에도 노여움 없이 환하게 웃으시며 답하십니다.

 
▲ 마사이 마라톤을 주관하고 있는 조웅래위원장이 내년에는 국제행사로 추진해 보겠다는 계획을 말하고 있습니다.
ⓒ2007 임윤수
조웅래, 맨발마라톤대회 조직위원장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시는 중에도 사용하지 않은 비닐 봉투가 쓰레기에 묻혀 쓰레기봉투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시고는 그것을 꺼내게 하는 할머니 세대의 어머니였습니다. 성공한 아들을 둔 성공한 어머니였지만 파파할머니는 그냥 가난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어머니며 할머니일 뿐이었습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다시 여쭈니 "나이 많아요. 90"이라고 일러주십니다. 졸수(卒壽)의 연세셨지만 이른 시간에 도착해 경기장에서 조금 비껴난 장소에서 꼿꼿한 자세로 앉아 아들이 주관하고 있는 커다란 잔치를 지켜보고 계시는 중입니다.

자식이 큰 대회를 치르는데 어떤 마음이냐고 재차 여쭈니 할머니께서는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별일 없이 잘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으십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할머니가 두 손을 모았던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리던 합장의 손길이었지만 불쑥 나타난 젊은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니 이렇듯 수줍은 합장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행사장에는 할머니뿐 아니라 조직위원장인 조웅래 회장의 가족들이 대거 참가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족 중 어떤 이는 주자가 되어 흙길을 달렸지만 대개의 가족들은 자원봉사자가 되어 주자들을 위해 응원을 하고 급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괄목하게 발전한 마라톤 규모

경기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이 시작됩니다. 소문에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딱 한 번 치른 대회지만 그 독특함과 충실한 내용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진 모양입니다. 울타리 없는 행사장이 빼곡합니다. 연록의 싱그러움에 맑은 햇살까지 곁들이니 사람들 표정도 싱그럽습니다. 개회식에 이어 몸 풀이를 마친 사람들이 출발선을 향해 이동합니다.

▲ 맨발로 걷고, 맨발로 달리며 꽃길을 즈려밟았습니다. 거기에 동호인들의 환호성까지 더해지니 사방천지가 싱싱합니다.
ⓒ2007 임윤수
사람들이 비탈진 산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연기처럼 꾸역꾸역 솟아오르는 푸른빛 주로를 향해 맨발을 한 사람들이 의기양양하게 올라갑니다. 청아한 산 빛이 사람들 얼굴에 젖어듭니다.

산바람조차 잠시 멈춰야 할 만큼 출발지점은 빼곡합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치러지는 대회지만 참가자 수나 행사내용, 규모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음이 확연합니다. 촬영을 위해 상공을 맴도는 헬리콥터가 일으키는 바람조차 싱그러운 촉감으로 피부에 와 닿습니다.

사람들은 땅을 디디며 산다고 합니다. 사람이 땅을 디디며 산다고 말하기 이전에 인간의 몸은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땅에서 자란 음식을 섭취하며 몸도 마음도 성장합니다. 인간의 몸은 땅과 물, 불과 바람을 일컫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구성되었기에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게 순리입니다.

지수화풍인 인간의 연을 맞나 이루어진 게 인간의 몸뚱이기에 뼈와 살은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피나 땀과 같은 액체는 물이 되어 대지를 흐르고, 따뜻하거나 불덩이 같던 체온은 열이 되어 온기로 돌아가고, 살아생전 콧구멍을 들락거리던 들숨과 날숨은 바람이 되는 게 인간의 몸뚱이니 인간의 귀의처는 땅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 산도 싱싱하고 바람도 싱싱하니 달리는 사람들 가슴도 싱싱합니다. 아무 곳이나 쥐어짜기만 하면 5월의 싱그러움이 주루룩 물줄기처럼 쏟아질 만큼 싱싱한 풍경입니다
ⓒ2007 임윤수
사람의 몸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는 게 진리며 순리임에도 정작 인간들이 땅과 살을 맞대며 보내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놀이터에서 흙 놀이를 하던 아가 때를 건너뛰면 흙과 인체 사이엔 언제나 양말이나 신발이란 매개체가 비닐 막처럼 끼여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이따금 흙과 맞닿는 순간이 있지만 그것은 기껏 해수욕장을 찾을 때처럼 제한되고 한정된 행사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의 뿌리며 돌아갈 귀의처인 땅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원초적 모습인 맨발로 흙을 밟았습니다. 야생마처럼 울퉁불퉁 거칠기만 했던 산길이지만 고운 흙이 깔려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포슬포슬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흙과 맨살을 부비고, 맨발로 흙을 디디려는 인간들의 마음을 헤아린 듯 전날 봄비마저 내려주니 맨살에 와닿는 촉감은 쭐쭐 빨아대던 어머니의 젖꼭지처럼 촉촉한 느낌이 한 입 가득합니다.

맨발의 사람들, 신록의 주로로 빨려 들어가다

출발 신호에 맞춰 출발선에 섰던 사람들이 주로 속으로 빠져듭니다. 튕겨지듯 출발을 서두르는 사람도 있지만 은은한 몸짓으로 봄날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려는 듯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출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싱싱함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신록의 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맘껏 달리니 달리는 사람들이 맺어가는 그림자와 발자국에도 산록의 싱그러움이 어른어른 비춰집니다.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서 일등 주자가 뛰어옵니다. 거반 30리길, 산길 13㎞를 힘껏 달렸으니 가쁜 숨길에서 단내가 풀풀 날 것 같은 그의 콧바람에조차 봄날의 싱그러움과 대지의 촉촉함이 배어납니다.

▲ 행사규모가 괄목할만하게 커지니 하늘엔 중계를 하려는 헬기가 맴돌고 출발지점에선 빼곡한 주자들 때문에 바람조차 멈칫 멈춰야 했습니다.
ⓒ2007 임윤수
주로에 펼쳐진 싱그러움 속으로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던 사람들이 골인지점에 깔려진 꽃길을 즈려밟으며 하나둘 통과합니다. 과정이야 힘들었겠지만 꽃길을 즈려밟으며 골인을 하는 주자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싱싱하고 밝기만 합니다. 문득 붉을 거라고만 생각하였던 사람들의 피에서조차 푸른빛이 돌고 신록의 향이 풍겨 나올 것 같은 기분입니다.

맨발로 흙길을 달려온 사람들이 소감을 쏟아냅니다. 어머니의 젖무덤에서 느끼던 그 촉감, 그 부드러움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고, 차마 어쩌지 못해 설레기만 하다 입술과 입술끼리 맞닿은 진한 키스를 할 때 느꼈던 첫 경험 때의 짜릿함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처음이든 작년에 참가를 해 맨발로 뛰어본 경험이 있던 사람이든, 첫사랑의 몸부림에 욱신거리기만 했던 사타구니처럼 흙길을 달려온 맨발이 욱신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건 없습니다. 첫사랑의 욱신거림이 평생 동안 얼굴 붉히는 순정으로 추억 되듯 흙길과 길게 맺은 몸부림에서 맛보는 맨발의 욱신거림도 두고두고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니 말입니다.

누드 족들이 발가벗은 두 발로 흙과 뜨겁게 부비는 동안 함께 온 가족들은 행사장 여기저기에 마련된 볼거리들을 둘러봅니다. 여기엔 전통혼례복들이 전시되어 있고 저기엔 전통복장을 한 무리들이 볼거리를 늘어놓습니다. 무대에선 비보이들의 현란한 춤동작이 펼쳐지고, 잔디광장에선 학생들이 직접 구운 빵과 케이크가 봄 햇살만큼이나 만난 경험으로 배부됩니다.

실컷 흙길을 달렸던 사람들, 첫사랑의 몸부림처럼 발바닥이 얼얼해지도록 흙길을 달렸던 사람들은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발 마사지 장을 찾아 얼큰해진 발을 얼러줍니다. 행사장 여기저기에 웃음꽃들이 피어납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무지갯빛처럼 행복한 쌍곡선을 이루며 행사장 구석구석에 드려집니다.

잔상처럼 가슴에 남는 할머니의 기도

 
▲ 사람들이 즈려밟았던 꽃길, 사람들이 맨발로 달릴 수 있게 깔렸던 고운 흙에는 이런 어머니의 마음, 90세가 넘어서도 자식을 걱정하고 기도하는 모정이 깔려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2007 임윤수
행사가 별일 없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할머니의 모습이 궁금해 다시 찾으니 할머니는 조금 아래쪽 들마루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무탈하게 골인을 하였고, 대회가 무사히 끝난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니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십니다. 참가한 사람들이야 그냥 즐기고 달리기만 하면 됐지만 대회를 준비한 자식을 둔 어머니의 마음은 노심초사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보아주는 이 없고, 들어주는 이 없었지만 당신이 바라던 대로 별 탈 없이 행사가 끝났다는 소리를 듣고는 싱그러운 산하, 풋풋한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모으던 할머니의 손끝이 지금껏 그리던 어머니들의 모정 실체임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울퉁불퉁한 산길을 곱게 덥고 있던 흙과 꽃을 즈려밟으며 대지의 산길을 뛰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 흙과 꽃길 아래에는 대회를 준비하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쇠잔한 모습으로 깔려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