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7-05-17 09:54]
돌탑들이 여기저기 서있는 멕시코의 팔렝케 유적지. 이들은 옥수수를 신성시 여겼다고 한다. |
옛날 옛적, 신은 세상을 만들고, 동물을 창조했다. 그런데 이 동물들, 도무지 신을 공경할 줄을 모르더라. 한 번 더 수고로움을 거쳐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 이왕 만드는 것, 화려하고 튼튼하게, ‘때깔 좋게’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금으로 인간을 빚었다. 번쩍번쩍 폼 나는 것은 좋았는데, 몸이 너무 무거운 탓인지 도통 움직임이 없는게다. 이래서야 창조한 재미가 없다.
신들은 다시 나무로 인간을 빚었다. 나무 인간들은 잘 움직이고, 열심히 일도 잘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릴 줄 몰랐다. 이유를 살폈더니, 먼저 만들어 놓은 금 인간에게 부림을 당하느라 신을 공경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두 번의 실수를 거친 신은 드디어 제대로 된 재료로 인간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옥수수 인간이다. 옥수수 반죽으로 빚은 인간.
이것은 과테말라의 창조 신화다. 멕시코에서는 첫 재료가 흙이었으나 뭉그러졌고, 두번째 재료는 나무였으나 움직임이 없었고, 세번째에 비로소 옥수수 반죽으로 인간을 빚어 성공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아메리카에는 이렇듯, 과정만 조금씩 변형되었을 뿐, 자신들을 옥수수의 자손이라 믿는 신화가 널리 퍼져있다.
옥수수는 아메리카의 녹색 황금이라고 불린다. 척박한 땅 아메리카에 옥수수가 없었다면, 고대 번성했던 잉카, 마야, 아즈텍 문명 등은 피어볼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옥수수는 재배하는 데 1년에 50일 정도의 노동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농촌에 풍요한 여유로움을 선사할 뿐 아니라, 알갱이는 먹고 속은 말려 연료로 쓸 수 있어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고마운 식물이다. 아메리카의 문명은 옥수수가 기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이렇게 고마운 옥수수일진대, 신성한 식물 옥수수를 신으로 모시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믿어 온 태양신 외에 옥수수신이 있었다. 어느 문화권이든, 고대 왕들은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기 위해 애썼으니, 옛 마야의 왕들은 최대한 옥수수신처럼 보이는 것이 목표였다. 옥수수 수염 비슷한 모자와 옷차림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 외모 또한 가장 옥수수답게 보여야 했기에, 왕족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놓기에 이른다.
왕족의 아이가 태어나면 판자로 머리 앞뒤를 눌러 옥수수 모양 머리, 일명 콘헤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마와 두개골을 비정상적으로 길게 만들어 옥수수처럼 보이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데, 이는 왕족들을 보다 옥수수신에 가깝게 보이도록 만들어 국민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사실이다. 멕시코의 까까스뜨라 유적지 벽화에는 옥수수 머리 왕족들의 모습이 생생히 새겨져 있으며, 변형된 두개골이 출토되기도 해 이 학설에 신빙성을 더한 바 있다. 옥수수 머리는 왕족들만의 특권이었으며, 다른 계층에서는 엄금되었다고 한다.
일찍이 옥수수신으로 추앙받았던 왕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왕은 마야 문명의 키니치 하나브 파칼 1세다. 자신이 다스리던 팔렝케에 거대하고 낭만적인 구조물을 남김으로 인해 유명해졌다. 멕시코의 마야 저지대 서부에서 숲으로 둘러싸인 채 습윤한 북부 평원을 굽어보고 있는 이 신전은 18세기 후반에 발견된 이래, 마야 문명의 신비감을 발산하면서 학자들과 일반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석관 안에 안치된 그의 유골은 경옥으로 만든 모자이크 가면으로 장식되어 있고, 양손에는 커다란 옥구슬을, 입에는 경옥을 물고 있었다. 옥은 예로부터 마야인들이 잘 익은 옥수수에 비견하던 장신구였으니, 그가 완벽히 옥수수신을 모방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정교하게 장식된 석관의 뚜껑은 파칼 왕이 옥수수신으로 부활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무덤의 비문들은 키니치 하나브 파칼 1세가 서기 603년 3월26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팔렝케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그의 어린시절, 팔렝케는 이웃 강대국들의 제물이었지만, 615년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의 오른 그는 옥수수신으로서의 영민함을 발휘해 적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왕국을 넓혀 번성시켰다. 상형문자로 기록된 석관의 비문을 그대로 믿는다면, 파칼 1세는 위대한 전사이자 예술과 건축의 후원자였고, 68년 동안 팔렝케를 지배했으며, 683년 8월28일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옥수수신으로 부활했다!
신은 우주와 생명을 창조했으나, 생명의 번식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인식이 옥수수 인간 창조신화에 깔려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우화 속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나온다. 먹기 위해 작물을 수확하는 사람들은 그 식물에게 까닭을 이야기하고 사과해야 하며, 언젠가는 자신의 몸뚱이가 그들의 양식으로 주어질 것임을 알리는 것이 예의라고 말이다.
멜 깁슨의 영화 ‘아포칼립토’에 나오듯, 살아있는 포로의 심장을 꺼내고 목을 잘라 피라미드 아래로 내던지는 잔인한 인신제사의 풍습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옥수수 인간은 살기 위해 누군가의 몸을 먹어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기도 하지만, 잡아먹는 쪽도, 잡아먹히는 쪽도, 죽는 쪽도, 죽이는 쪽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죽음은 생명의 교환이며, 그 교환을 통해 우주의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믿은 마야 사람들.
팔렝케 유적지는 그래서 의미있다. 마야의 정신을 가장 마야인답게 떨치고 종국에는 옥수수신으로 당당히 부활했다고 믿어지는 파칼 1세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마야인들의 이유 있는 인신제사 따위는 우스울 정도로 원주민을 도륙하고 도시를 파괴했던 스페인 정복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마야의 정신이 잠들어 있는 안식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옥수수 인간의 지혜로움이 묻어나는 원주민 우화의 마지막은 현자의 말로 끝을 맺는다.
“우리나 식물이나 어느 쪽도 더 중요하지도 덜 중요하지도 않다는 거지. 그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란다.”
▲팔렝케 유적지
팔렝케 유적에서 출토된 조각품 역시 옥수수 모양으로 길쭉하게 생겼다. |
넓이는 17.7㎢.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팔렝케란 에스파냐어로 ‘울타리로 둘러싸인 성채’를 뜻한다.
이 유적지는 BC 300년쯤부터 세워졌으며, 6~8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마야문자의 80% 이상이 해독되어 당시 마야의 생활상을 밝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중요한 유적지다.
10세기 말에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방치되었으며, 이후 약 800년간이나 열대 우림속에 감춰져 있다가 1784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유적 가운데 유명한 것은 궁전과 비문의 신전으로, 궁전은 행정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궁전 중앙에 위치한 높이 15m의 4층 탑은 천체 관측용으로, 마야나 아즈텍 문명에서는 유일한 탑으로 의미가 있다. 비문의 신전은 파칼왕의 무덤이 발견됨으로 인해 유명해졌고, 발굴된 유물들은 멕시코의 국립인류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스위스 출신 데니컨은 파칼 왕의 석관 덮개에 새겨진 그림이 UFO가 이륙하는 장면을 묘사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고고학적 무지에서 드러난 오류라고 밝혀지긴 했지만.
멕시코 직항편이 없어서 미국의 플로리다 등을 거쳐 멕시코로 넘어간다. 멕시코의 도시 메리다까지 간 뒤 버스로 이동한다. (메리다 남서쪽 450㎞ 거리에 위치) 팔렝케 터미널에 도착하면 건너편에 유적지로 향하는 미니버스 콜렉티보 탑승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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