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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 이런 ‘발칙한 사극’ 을 봤나

피나얀 2006. 2. 28. 18:41


기발한 상상력으로 한껏 뒤집고 비튼 ‘퓨전사극’열풍… 세속적 시각 가미하고 고급스러운 영상미로 재미 배가

 

화려함, 고급스러움, 기발함 그리고 발칙함….’ 보다 진보된 스타일의 퓨전사극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강타하고 있다. 요즘 시청률 30%대의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MBC TV 드라마 ‘궁’(연출 황인뢰, 각본 인은아)은 시대로 보면 현대극. 하지만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고 2006년 현재에도 궁에 황태자가 살고 있다는 가상설정하에 전개되는 황실 로맨스 드라마다.

 

따라서 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는 인물들은 물론 퓨전음식과 퓨전의상들이 다채롭게 선보이니 일종의 퓨전사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황실 인물들의 이야기가 기발하다.

 

TV ‘다모’ 영화 ‘황산벌’이 장 열어

 

드라마는 케이블TV에 황실 채널이 있고 왕립고등학교와 왕립미술관이 있으며 황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황’색저널도 있다고 시침 뚝 떼고 말한다. 황실 사람들은 ‘하오체’를 빈번하게 사용하면서도 그 아들들은 ‘어마마마’ 대신 ‘엄마’라는 말을 쓴다. 과거와 현재가 시차 없이 마구 뒤섞이고 그게 또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전국 극장가에는 지난 2월 23일 개봉된 영화 ‘음란서생’(감독 김대우, 제작 비단길)이 화제다. 조선의 명망 높은 사대부 집안 자제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주인공이 필명으로 난잡한 음란소설을 창작, 장안 아녀자들의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는 내용의 코믹물이다.

 

주인공 윤서(한석규)는 음란소설의 1인자가 되기 위해 그림에 소질이 있는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에게 다양한 정사 장면을 그려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왕의 후궁 정빈(김민정)을 희한한 체위의 모델로 끌어들인다. 점잖은 양반들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능청스럽게 주고받는 음란한 대화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음란서적 유통업자인 오달수의 행태는 오늘날 출판 및 영화 유통업자들을 연상케 하고, ‘댓글’ ‘동영상’ ‘폐인’ 등 요즘 인터넷 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적절한 지점에서 활용될 때 객석에선 웃음이 터진다. 배경은 조선이지만 주인공들이나 이야기는 리듬을 타며 현대와 현대인을 그대로 관통한다.

 

고정 틀 깨면 사극은 ‘이야기보따리’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처럼 과거와 현대의 맥이 이어진 동시에 독창적이면서 세련된 영상을 자랑하는 사극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TV 사극으로는 2003년 MBC TV ‘다모’가 빠른 템포와 고급스러운 영상미, 하이틴적 감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퓨전사극의 시대를 열었다.

 

종전 ‘조선왕조 500년’이나 ‘여인천하’ 등 왕위세습을 둘러싼 후궁들의 궁중암투나 영웅들의 삶을 그린 TV 사극의 전형을 벗어난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 궁녀들의 삶과 음식을 멋스럽게 조합하며 인생의 철학까지 담아낸 ‘대장금’이나 조선시대를 벗어나 삼국시대를 무대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한 ‘장보고’ ‘서동요’ ‘신돈’도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감흥을 불러일으킨 새로운 스타일의 사극이다.

 

 MBC 드라마국 김사현 국장은 “요즘 TV 사극은 크게 두 갈래로 분화되고 있다”며 “하나는 삼국시대나 고조선 등 조선시대보다 앞선 과거로 거슬러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왕이나 영웅이 아닌 민초들의 삶을 다루는 등 외연이 더 넓어지면서 깊이도 더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규모 커지면서 제작비 부담 견뎌

 

TV 사극 ‘조선왕조 500년’이 사랑받던 시절에도 영화의 사극장르는 오랫동안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많이 드는 반면 흥행에 성공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징크스를 무너뜨린 작품이 2003년 개봉된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과 같은 해 개봉된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사극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공식을 깬 것은 ‘황산벌’”이라며 “지금껏 사극을 다룰 땐 항상 주눅이 들어 변형이나 가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나 ‘황산벌’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적 진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퓨전 역사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로 버무려냈고 계백(박중훈)과 김유신(정진영)을 희화화하는 전복적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또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지역감정을 사투리를 통해 코믹하게 드러냄으로써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현재를 담고 있는 점도 인기의 비결이었다.

 

개봉 당시 300만 명의 관객이 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도 오늘이 담겨 있다. 300년 전 정조시대에도 ‘쿨한 사랑’이 있었고 쿨한 연애박사 조원(배용준)과 조씨 부인(이미숙)이 나라에서 열녀문까지 받은 숙부인(전도연)을 두고 사랑내기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 종전 사극에서 보기 어려웠던 아름다운 한복의상과 미술세트도 화제가 됐다. 영화 속 사극의 이같은 반란은 ‘천군’ ‘형사’ ‘혈의 누’ ‘왕의 남자’를 거쳐 ‘음란서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큰 공통점은 ‘정사(正史)’가 아닌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내 만드는 사람이 자유롭게 과거를 비틀어 보여준 점이다. 궁중암투, 충, 효 등 오랫동안 사극의 몇 가지 키워드로 작용했던 관습에서 벗어나 세속적이고 반권위적이며 불충한 시각에서 접근해 재미를 배가시킨 것이다.

 

일단 고정 틀에서 벗어난 사극은 무수한 이야기의 저장고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사극은 현재와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신기함을 가진 동시에 오늘날을 비출 수 있는 색다른 거울이기도 하다”며 “과거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매력이 만만찮아 가능성이 아주 많은 장르”라고 말했다.

 


최근 새로운 스타일의 사극이 쏟아질 수 있는 배경은 산업의 규모와 무관치 않다. ‘음란서생’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은 “기본적으로 사극은 의상비와 세트 등 현대극에 비해 훨씬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과거 한국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보편타당한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으나 산업규모가가 커진 지금은 어느 정도 제작비 부담을 견뎌낼 수 있게 돼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극 제작의 열풍은 올해도 이어진다. 싸이더스FNH는 명성황후의 사랑을 그린 야설록의 원작소설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영화화하고 씨네2000은 장윤현 감독 연출로 ‘황진이’를, 한맥영화사는 신라시대 빼어난 아름다움과 지혜로 세 명의 왕을 섬긴 미실의 삶을 그리는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또 조선 정조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젊은 개혁자들의 이야기인 ‘방각본 살인사건’이 씨즈엔터테인먼트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TV 사극으로는 MBC ‘주몽’, SBS ‘연개소문’, KBS는 ‘사육신’ ‘대조영’ ‘황진이’ 그리고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 등이 제작·기획되고 있다.

 


‘궁’ 연출 황인뢰PD

 

“가짜 역사 진지해버리면 부담”

 

- ‘궁’이 30%대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예상한 일인가.

 

“‘궁’이 방송될 초기에 다른 방송사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들은 이미 한 달 이상 방송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대진운이 안 좋았다. 하지만 원작만화가 워낙 인기가 있어 드라마도 시청자를 매료시킬 요인이 많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결실을 맺게 돼 기쁘다.”

 

- 드라마 내용이 파격적이다. 모험이라는 생각은 안 했나.

 

“기획 단계에서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면 캐스팅이 어려울 것이라며 최소한 대학생으로 설정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난 반대했다. 어차피 판타지드라마로 가짜 역사를 다루는 것인데, 너무 진지하면 그게 주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작만화대로 주인공들을 ‘고삐리’로 설정해 재미를 주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예상대로 됐다.”

 

- 방송 초기 윤은혜 등 캐스팅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주인공들이 모두 신인이어서 처음 진행할 때는 연기가 많이 서툴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성배우가 가지지 않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기성배우, 신인배우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잘한 결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 원작만화가 4편까지만 나온 상태에서 드라마가 제작됐다. 드라마는 어떤 결말인지 말해줄 수 있나.

 

“드라마를 애초 사전제작 형태로 하기로 했는데 방송 일정이 갑자기 두 달 앞당겨지면서 계획이 엎어졌다. 지금은 미리 촬영해놓은 것을 다 소모한 상태여서 숨이 턱에 차 있다. 솔직히 한국드라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는 사전 제작 형식이 아닌 그때 그때의 졸속 제작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요구가 드라마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도 다른 드라마의 이런 행태를 따라가는 형국이 됐으니 드라마 엔딩도 유동적으로 열어놓으려고 한다.”

 

- 시즌2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MBC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우리도 미술세트를 준비하면서 세트 순수 제작비만 15억 원이 들어갔다. 우리나라 황실이 있다면 굉장히 화려했을 것이니 만큼 그에 맞게 매우 공들여 꾸며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로는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MBC가 이런 우리의 처지를 배려해서인지 먼저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확정짓지 못한 상태다. 배우들에게도 공식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음란서생’ 연출 김대우 감독

 

“익숙한 관습에서 벗어나려 노력”

 

- ‘퓨전사극’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크다.

 

“퓨전은 일반적으로 이질적인 것을 서로 섞는 것이다. 그런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나 ‘음란서생’엔 그런 요소가 없다. ‘음란서생’에 등장하는 ‘댓글’이란 말은 재미있으라고 넣은 것이지만 조선시대에 사용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고 ‘폐인’이라는 말도 당시 썼던 말이다. 또 인물과 이야기가 가상일 뿐 ‘음란서생’은 나름대로 고증에 충실했다.

 

나는 조선시대나 삼국시대가 무대면 무조건 사극으로 규정하는 것도 반대한다. 시대적 배경만 과거일 뿐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왜 사(史)극인가. 박정희 시해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사극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같은 1970년대를 무대로 한 ‘사랑해 말순씨’는 사극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뭔가 장르를 세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 ‘음란서생’의 이야기와 미술엔 기존 사극을 뛰어넘는 새로움이 보인다.

 

“되도록 컨벤션(Convention:이미 익숙한 요소들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영화방식)을 벗어나려고 했다. 어디서 본 듯한 건 하지 않으려 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다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나온 사극 중 제일 열심히 컨벤션을 벗어나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자신한다.”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김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와 ‘음란서생’ 모두 점잖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성(性)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 온갖 점잖을 빼는 사람들의 성이니까 재미가 곱절이다. ‘음란서생’의 아이디어는 인터넷 야설에서 얻었다. 야설 밑에 네티즌들의 댓글이 달려 있고 ‘홀딱벗은님’ 등 특정작가에게는 고정 팬이 많더라. 야설 내용은 형수나 처제와의 불륜 등 대부분 난잡했지만 그 나름대로 문장력이 있는 작가도 보였다. 혼자 그런 상상을 했다. ‘만약 한국의 대표적 소설가인 이문열씨나 황석영씨가 가명으로 밤에는 인터넷에 야설을 쓰는 어둠 속 제왕이라면?’ 하고. 그래서 조선시대 최고 문장가가 야설을 쓴다는 내용의 ‘음란서생’이 탄생한 것이다.”

 

- 개인적으로 ‘성’과 ‘사랑’에 대한 이상향이 큰 것은 아닌가

 

“글쎄. 난 섹스와 음식은 상 위에서 떨어지면 쓰레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섹스에 윤리가 개입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지켜야 할 품위가 있다. 식욕과 마찬가지로 가장 절실하고 보편적인 만큼 절차와 매너와 상황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 연출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낀 부분은.

 

“촬영감독과 맑은 날에만 야외촬영을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95%까지 버텼다. 촬영감독을 위하는 게 곧 영화를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씨의 제약이 어려운 점이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출처-[뉴스메이커 2006-02-28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