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꿈결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기차의 진동이 몸으로 느껴졌다.
"누구세요?"
무의식적으로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방문을 열어 보니 어젯밤 우리 가족의 여권을 받아 갔던 객실 승무원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발음이 섞인 영어로 이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베네치아(Venezia)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의 손에는 우리 가족의 여권과 샌드위치, 오렌지 주스 그리고 요구르트 등이 들어 있는 간단한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여권과 도시락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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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 열차 침대칸을 이용하면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 |
ⓒ2006 서상원 |
가족을 깨우기 위해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었다. 순간 눈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광경이 차창 밖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어느 목가적인 풍경의 들판이나 도심의 변두리가 아닌 바다 위에 외길로 난,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탯줄과 같은 철로를 따라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신새벽의 맑고 푸른 기운이 끝간데 없이 펼쳐진 수면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이렇게 내게 도도한 첫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기차가 서서히 베네치아 산타루치아(S. Lucia) 역으로 진입을 했다. 더 갈데없는 종착역인데다 관광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역을 빠져 나왔다. 역을 나서자마자 비릿한 바다냄새가 훅하고 불어왔다. 불과 수십 미터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으로 운하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배들이 바삐 흘러가고 있었다. 베네치아에 오면 중세풍의 오래된 건물들과 그 사이를 흐르는 운하들을 원없이 보리라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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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길을 따라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
ⓒ2006 서상원 |
처음 목적지인 리알토(Rialto) 다리까지는 수상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바퀴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베네치아에서는 여느 도시의 대중 버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바포레토(Vaporetto)란 수상버스이다.
배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가득했다. 일터로 향하는 듯한 사람들과 등굣길 아이들이 가방을 둘러멘 채 참새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단체 관광버스가 아니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수단을 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다.
얼마 가지 않아 첫 목적지인 리알토 다리에 도착했다.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S자 모양의 대운하(Canale Grande)의 거의 중앙에 있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13세기에 처음 건설될 때는 목조였지만 16세기말 건축가 안토니오 다 폰테가 대리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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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알토 다리 위에서 바라 본 대운하 풍경 |
ⓒ2006 서상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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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화려함을 사진에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습니다. | |
ⓒ2006 서상원 |
천천히 기념품 상점들을 구경하며 다음 목적지인 산마르코(San Marco)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고 미로같이 얽히고설켜 있는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주위의 모든 건물들은 무척 오래되고 낡아 보였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골목 모서리를 돌아 서면 기다렸다는 듯 조그마한 다리와 운하가 나타났고, 그 다리를 지나 다시 골목으로 접어들면 낡았지만 예쁘게 테라스를 장식한 집들이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꿈 속을 걷는 듯 나도 모르게 점점 베네치아의 골목들과 중세풍의 집들에 빠져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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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베네치아의 골목 풍경 |
ⓒ2006 서상원 |
그곳에는 자그맣지만 환한 햇살이 비추는 광장이 있었다. 이름 모를 광장을 빙 에둘러 각종 생필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물건을 구매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본 듯한 공동수도가 고즈넉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한 상인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싱싱한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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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그리고 사람들.... |
ⓒ2006 서상원 |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이탈리아의 냄새가 뚝뚝 묻어나는 노래가 평화로운 아침 광장에 널리 번져 나가고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골목길이 다소 복잡했지만 갈림길이 나오는 모서리 건물마다 이정표를 붙여 놓아 그리 힘들이지 않고 방향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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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비둘기 자식 둔 적 없다!" | |
ⓒ2006 서상원 |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했다는 산마르코 광장은 산마르코 성당(basilica San Marco)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등과 함께 베네치아 관광의 중심지이다. 길이 175m, 폭 80m 넓이의 산마르코 광장을 빙 둘러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들이 늘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돈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명품 상점들과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노천카페들이 즐비하다.
광장 정면에는 산마르코 성당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성 마르코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9세기에 세워진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며, 특히 성당 내ㆍ외부를 뒤덮듯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는 미술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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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에서 바라 본 산마르코 성당 |
ⓒ2006 서상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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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마르코 광장 전경 |
ⓒ2006 서상원 |
바닷가를 따라 피아노 표면같이 매끄럽게 칠을 한 베네치아 명물 곤돌라(Gondola)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우리 같은 가난한 배낭여행족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아들 녀석이 곤돌라를 타자고 졸라댔지만 "나중에 커서 애인이 생기면 그때 같이 와서 타라"하고 달래 보았다. 녀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씩 웃더니 순순히 포기한다.
겨울 해는 짧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숙소가 있는 산타루치아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어둑해지는 베네치아의 골목길과 운하는 낮에 보았던 그것과는 또 다른 정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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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에 밤이 찾아 오면 사랑도 무르익는다. |
ⓒ2006 서상원 |
어디에선가 곤돌리엘레(Gondolielle)가 부르는 칸초네가 말초신경처럼 얽힌 미로 사이를 타고 날아와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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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3-13 14:28]![](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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