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명동성당 입구에 문을 연 유기농매장 ‘하늘 땅 물 벗’.
가게에 들어서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명랑한 인사소리가 고객을 반긴다. 그러나 앞치마 두르고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는
선우옥경(44·동부이촌동·사진왼쪽), 서해순(45·서울 양평동)씨는 가게 주인도, 직원도 아니다. 자원봉사하다가 상근자가 된 이들은 스스로를
‘우리 농산물과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활동가’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둘다 수험생만큼이나 힘들다는 고3 엄마들. 아이들이 고2,
고3이 되면 하던 일도 모두 그만두고 공부 뒷바라지 하는 것이 현실인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 내내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뭘까.
유치원 자모회장 등 아이에게 득되는 일이라면 모두 나서던 극성엄마 선우옥경씨는 5년전 같은 성당 다니던 친구 소개로 명동
카톨릭회관 안의 매장에 봉사하러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있기도 심심한데 일주일에 한번 바람이나 쐬러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물건을 팔고 정리하는 사이사이 생산지를 직접 방문해 농민들을 만나고, 실무자들끼리 모여 공부도 하면서 점점 의식화(?)되기 시작했다. 이 일이
몸으로 때우는 일이 아니라는 자각은 어느새 ‘다음세대에 먹거리와 땅과 물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소명의식으로 바뀌었다. ‘치맛바람’
아줌마는 올 초엔 홍콩 WTO 반대집회에까지 따라갈 정도의 투사(?)로 변해 있었다.
서해순(45· 양평동)씨도 마찬가지. 강론
오신 담당신부님이 “양평동 물류센터가 가까우니 봉사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정말 집이 가까워서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손이 많이 가는
농사일들을 농약도 쓰지 않고 고생하는 농민들을 직접 목격한 터라 이젠 친지들을 만날 때마다 유기농을 권유하는 운동가가 됐다.
이들이
스스로 말하는 자신들의 가장 큰 역할은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놓는 일. 궁극적으로 생산지와 소비자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라도
임실에서 만들던 치즈와 요구르트, 청주의 싱싱한 버섯과 유정란, 수원 화성의 축산농가, 강원도 산골마을의 뽕잎나물과 누에환….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권할 때마다 지금까지 20여곳 생산지들을 돌며 만난 생산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목소리를 높이게 된단다. 더 이상 농촌문제가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고, 내 식탁에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는 내 문제로 다가왔다.
대부분 깨끗하고 예쁜 물건들에 익숙해진 도시의
소비자들이 때깔나지 않고 볼품없는 제품을 들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들은 ‘물건을 보고 발길을 돌리다가 설명을 듣고 나서 마음을 바꾸게
된 경우’ ‘뭘 먹어봤더니 참 좋다면서 회원도 가입하고 각종 농촌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할 때’ 참 뿌듯하다고 했다. 반면 음식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거 국산이에요? 어떻게 믿어요? 키우는 거 직접 봤어요?”라고 의심하는 눈초리가 가장 싫단다.
아무리 보람있는 일을 한다지만
가족들 입장에선 주말도 없이 빛도 안나는 일을 하는 엄마, 아내가 싫진 않을까.
선우옥경씨는 작년 몸이 아파 당분간 쉬려고 했을 때
“엄마 치맛바람 일으키는 엄마로 돌아오지마. ○○엄마가 아니라 열심히 활동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아요”라는 딸들의 만류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본인 스스로도 “아마 이 일을 안 했으면 더 극성스러운 성격으로 변했을 것, 막내아들을 마마보이로 만들었을지도…”라며 피식 웃는다. 서씨도
남편과 아이들의 적극적인 격려가 가장 큰 힘이란다.
“우리농산물을 이용하는 것이 건강도 살리고 농촌도 살리는 일이죠. 회원으로
가입하면 각종 농촌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어요. 5월엔 모심기, 6월엔 병충해 방지와 퇴비 마련을 위해 논에 오리를 넣는 행사, 사과따기,
포도봉지씌우기, 감깎기, 배추절이기도 아이들과 참여하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각종 행사일정과 농사 일정을 줄줄이 꿰는 이들은 이미
반은 농부였다.
▶서울매장 16곳…홈페이지서도 구입 가능
#천주교 우리농살리기 운동, 하늘땅 물벗
운동
그동안 가톨릭회관 안에 있던 ‘하늘 땅 물 벗’ 매장을 명동성당 입구에 내놨다는 것은 천주교가 환경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농살리기는 천주교의 오랜 운동. 최근 환경이니 웰빙을 추구하며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커졌지만
생협이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주자는 운동이었다면 ‘우리농’은 소비자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천주교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더욱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결의했다. 활동의 주역은 평신도 여성들.
본당 활동가라 불리는 여성 수백명이 ‘도·농생명공동체 함께 살리기’에 팔을 걷고 있다.
‘하늘 땅 물 벗’ 상설 매장은 명동 말고도
서울 전역에 16개가 더 있다. 주말 장터 형식으로 열리는 41개 본당 안 가게들도 여성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상품을 구입하려면 직접
매장으로 와서 살 수도 있고 홈페이지에서 회원으로 가입하면 정해진 날짜에 주 1회 배달해준다. 회원이 되려면 출자금 3만3천원을 내는데 3만원은
탈퇴할 때 받는다.
파는 물품은 곡식과 각종 장류, 장아찌, 우리밀로 직접 구운 빵에서 재생휴지, 세재 등 생활재까지 다양하다.
백화점 유기농코너보다 대체로 30% 정도 저렴한 편이다. www.wrn.or.kr, (02) 2068-0140~3
〈글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 대한민국 희망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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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006년 4월 3일(월) 오후 3:09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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