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저 바다 좀 봐! 나 오늘 땡 잡은 기분이야

피나얀 2006. 4. 13. 19:56

 

 

▲ 관악산 깃대봉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2006 이승철
4월11일 화요일, 서울과 과천, 안양의 경계지역에 있는 관악산 연주대에 올랐다. 지난 주말의 지독한 황사 때문에 외출까지 삼가고 화요일의 산행 걱정을 했었는데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까지 내린 봄비가 황사를 말끔히 씻어내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서 친구들과 만나 물개바위와 마당바위를 거쳐 연주대로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곧 관음사와 절 마당에 우뚝 솟은 석탑이 진달래 꽃밭 속에 조용한 모습이다.

산길에는 여기저기 분홍색 화사한 진달래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어떤 꽃은 흙 한 줌 없는 커다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모습이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 흙 한줌없는 바위틈에서 꽃피운 진달래
ⓒ2006 이승철

 

▲ 관음사 풍경
ⓒ2006 이승철
등산로는 대부분 바윗길이다. 첫 번째 바위봉우리에 올라서니 바람이 시원하다. 뒤돌아서 서울시가지 쪽을 바라보니 한강을 건너 남산과 북한산, 도봉산까지 선명한 모습이 세수하고 화장한 새색시처럼 산뜻해 보인다.

엊그제 모임에서 과음을 했다는 친구 한명은 바윗길 오르기가 몹시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쉬운 길 다 놔두고 왜 어렵고 힘든 길로 오르느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도 바위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만족한 성취감에 젖는 표정이다.

"이 정도 산에 오르면서 쩔쩔매는 걸 보니 이제 다 됐구만."

힘들어하는 친구를 자극할 겸 다른 친구가 슬쩍 약을 올린다.

"이 친구야 너도 내 나이 돼봐! 너라고 별 수 있을 것 같아?"

동갑내기 친구사이는 항상 격이 없어서 좋다. 어떤 농담을 해도 오해를 하거나 나쁜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 마당바위와 등산객들
ⓒ2006 이승철

 

▲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서울의 동남부지역
ⓒ2006 이승철
등산은 너무 쉬워도 별 재미가 없는 법이다. 적당히 땀도 흘리고 어렵고 힘든 코스를 올라야 그만큼 짜릿한 쾌감도 느끼고 뿌듯한 자부심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마당바위에 올라서니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우리들도 친구 한명이 간식으로 준비해온 과일과 떡을 맛있게 나누어먹고 연주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등산길 능선곳곳에서 세찬 바람으로 모자가 날아갈 뻔 했지만 맑은 하늘과 함께 바람도 서늘하여 등산하기에는 정말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오늘 화요일인데 웬 등산객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백수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저 사람들은 아직 너무 이른 편이군."

서울근교의 산에는 공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날마다 등산객들이 많다. 이날도 등산객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등산객 남성들 중에 40대 중반이나 50대 초반의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 보이는 것이었다. 평일엔 대개 여성들이 많은 편인데 이날은 남성들이 더 많은 것도 특이한 현상이었다.

 

▲ 관악문과 그 앞에서 선 친구 서상규씨
ⓒ2006 이승철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느라 땀이 흘러 겉옷은 모두 벗어 배낭 안에 집어넣고 올랐는데 연주대로 오르는 능선에 이르니 몸이 서늘하게 식는 느낌이다. 다시 겉옷을 꺼내 입고 걷기 시작했다. 연주대가 저 만큼 다가왔을 때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마주 보고 서 있는 위에 또 커다란 바위가 얹힌 관악문이 나타났다.

관악산의 여러 등산코스 중에서도 이 코스가 기암괴석들과 아기자기한 바윗길이 가장 많은 코스다. 관악문을 통과하니 연주대가 지척이다. 연주대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작은 암자도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기와불사를 끝내고 산뜻한 모습이다.

길가의 커다란 바위 위에는 오랜 풍상을 겪은 듯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늠름한 자태로 서 있다. 어떻게 빈틈없는 커다란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저렇게 크고 무성하게 자랐을까, 저런 소나무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동이 또 다시 밀려온다.

 

▲ 넓고 커다란 바위 위에서 자란 소나무
ⓒ2006 이승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아래 과천시가지와 공원지대를 건너 청계산이 푸른빛으로 다가온다. 그 능선을 따라 높고 낮게 이어지다가 제법 웅장하게 솟아있는 산이 광교산이다. 이제 마지막 코스는 연주대, 뾰족하게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 연주대에 오르는 길도 만만한 길은 아니다. 굉장히 가파른 바윗길을 밧줄에 매달리며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연주대에 올라서니 막걸리 냄새가 진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움푹 파인 바위에 둘러서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땀 흘리며 어려운 등산을 한 사람들이 한잔의 막걸리로 컬컬한 목을 축이고 있는 것이다. 이 꼭대기까지 막걸리를 운반한 장사꾼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놓고 파는 막걸리의 양이 상당히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 과천시가지와 공원지대를 넘어 청계산
ⓒ2006 이승철

 

▲ 연주대를 오르는 등산객들
ⓒ2006 이승철
연주대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정말 넓다. 막힘없이 탁 트인 시야가 그야말로 무한하게 열려 있었다. 근래에 만도 이 연주대에 몇 번이나 올랐지만 이날처럼 시계가 맑은 날은 기억에 없었다. 동서남북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깨끗하고 맑은 시야에 들어오는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동쪽으로는 아득하게 용문산이 바라보이고 특히 서쪽으로는 하늘과 이마를 맞댄 푸른 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져 있었다. 서북쪽에 자리 잡은 파주와 일산 신시가지가 너무나 선명하다.

"관악산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보인다더니 정말이네."
"저기 바다가운데 제법 높아 보이는 뾰족한 산이 어느 섬의 무슨 산일까?"

우리들 옆에서 서해 쪽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져 있던 여성등산객이 누구에게랄 것 없이 막연하게 묻는다.

"어이 저게 무슨 산이야?"
친구가 그 여성이 바라보는 방향을 가리키며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저게 강화 섬이니까 마니산이겠군."
한강을 따라 눈길로 훑어 내려가며 어림잡아 본 것이 강화도 마니산이었다.

"그럼 마니산 아래쪽으로 떠 있는 저 섬들은?"
친구는 내친김에 모두 알고 싶은 모양이다.

"그건 나도 몰라. 인천 앞바다 쪽의 섬들이 좀 많아야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 구름 밑에는 많은 섬들이 길게 또는 둥글게 자리 잡고 있었다.

 

▲ 연주대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2006 이승철

"연주대에서 인천 앞바다와 섬들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니 나 오늘 땡 잡은 기분인 걸."
평소 등산을 잘 하지 않아 연주대에 처음 올라온 친구는 정말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너 오늘 출세 한 거야. 연주대에서 저런 멋진 풍경도 바라보고."
올라오면서 힘들어 쩔쩔매던 친구도 어느새 생기가 돌고 있었다.

"좋아, 내려가서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나 정말 땡 잡은 기분이야."

이웃나라 중국대륙의 사막화로 해마다 봄철이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 황사, 그 황사를 말끔히 씻어준 고마운 봄비가 내린 후 찾은 관악산 연주대는 맑고 깨끗한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시야에 들어오는 아름답고 멋진 풍경으로 등산객들의 기분을 하늘만큼이나 상쾌하게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유포터뉴스에도 보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 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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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4-12 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