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요리】

냉면은 조선 후기부터 겨울철 별미로 먹어

피나얀 2006. 8. 16. 21:23

 

출처-[주간조선 2006-08-16 09:29]

 

 


이북음식으로 6·25 직후 붐 일어…
평양냉면은 주로 메밀로, 함흥냉면은 전분으로 만들어

 

냉면은 언제 처음 먹기 시작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 후기부터 먹기 시작했다. 냉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동국세시기(1849년, 홍석모)에 ‘겨울철의 시식(時食)으로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수의 재료로 밀가루를 많이 쓰고 있으나,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가 그다지 흔하지 않았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화북지방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의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成禮)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보다 메밀로 만든 국수가 더 흔한 식품이었다.

 

조선시대에 국수는 메밀가루나 밀가루로 만들었고, 별식으로 잔칫상에 올리거나 계절식으로 즐기는 것이었다. 국수는 국물에 말았는데 건더기가 부족할 때는 국물로 배를 채웠다. 특히 구황식으로 먹은 국수는 국물로 헛배만 부르게 했고, 여기에서 실속 없이 헤프다는 뜻으로 ‘국수 먹은 배’라는 속담이 생겼다.

 

조선시대 때 여름에 먹는 별식으로는 국수 이 외에도 밀전병, 수제비 등이 있었고, 겨울에는 냉면을 비롯해서 떡, 엿, 약식 등을 먹었다. 이러한 별식 풍속은 지방에 따라 달랐는데 북쪽 지방에서는 잡곡의 생산이 많아 메밀이나 밀가루로 만든 별식이 많았으며 남쪽에서는 쌀로 만든 별식이 많았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소리이지만, 예전 겨울밤에 흔하게 들렸던 “메밀묵 사려”라는 외침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밤참으로 메밀묵이나 메밀국수를 먹던 것은 양반, 서민 등 계층에 관계없이 행해지던 겨울철 풍속이었다.

 

또 조선 후기 강원도에서는 구황식으로서 칡을 활용했다. 칡 전분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고 감자 녹말과 칡 가루를 섞어 국수틀에 눌러서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세시풍속 중에서 냉면은 동짓날에 먹는 음식이었다. 그러므로 냉면은 여름에 먹던 음식이 아니라 추운 겨울에 먹던 시식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 국물에 말아 돼지고기를 섞은 평양 국수가 유명했다.

 

1917년에 쓰인 방신영 선생의 ‘조선요리제법’에는 냉면을 여름냉면과 겨울냉면으로 구분해 기록하고 있다.

 

여름냉면 : 여름냉면은 두 가지가 있으니, 가게에서 파는 냉면은 고깃국이나 닭국을 식힌 후 금방 내린 국수를 말고 한가운데에 얼음 한 덩이를 넣고 국수 위에다가 제육과 수육과 전유어와 배추김치와 배와 대추와 복숭아와 능금과 실백과 계란을 삶아 둥글게 썬 것과 알고명(달걀 고명)과 석이 채친 것, 실고추와 설탕과 겨자와 초를 쳐서 먹으나 여러 가지 넣는 것이 좋지 못하니 잡고명은 넣지 말고 김치와 배와 제육만 넣는 것이 좋다.

 

집에서 하는 냉면은 장국이나 깨국이나 콩국에다가 국수를 말고 오이를 채쳐서 소금에 절였다가 기름에 볶아 얹고 알고명과 석이버섯 채쳐 얹고 고기를 볶다가 잘게 썰어 얹고 실백(잣)을 뿌리고 얼음 넣어 먹는다.

 

겨울냉면 : 좋은 동치미국물을 떠내어 놓고 국수를 더운물에 잠깐 잠갔다가 건져 물을 빼어 대접에 담고 김치 무와 배를 어슷비슷하게 썰고 제육을 굵직하게 썰어 국수 위에 얹고 김칫국물을 부어 먹되 식성에 따라서 꿀도 치고 알고명과 표고버섯을 기름에 볶아 채쳐 넣고 배 채친 것, 김치 흰 것을 썰어 넣기도 하며 실백도 넣고 고춧가루 뿌려 먹는다. 그러나 어떠한 여러 가지 재료에도 불구하고 냉면에 김치 무와 배와 제육과 고춧가루 이 네 가지를 넣는 것 외에는 더 맛나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여름냉면과 겨울냉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름냉면은 겨울냉면의 맛에 비길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작가 김소저가 ‘사시명물 평양냉면’이란 글을 통해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리는 날, 살얼음이 뜬 김칫국물에다 냉면 풀어 먹고 벌벌 떨며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이 어떻소”라며 겨울철 평양냉면을 찬미한 것에서도 그 시원한 맛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평양냉면이 서울로 진출한 건 1920년대 말이라고 한다. 이때 낙원동의 평양냉면집과 부벽부,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돈의동의 동양루 등이 메이저급 냉면집으로 자리잡았다.

 

1933년 7월 ‘매일신보’에 나온 신의주와 평양에서 냉면을 먹은 사람들이 중독현상을 보였다는 기사와 1926년 평양의 냉면 배달 노동자 16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는 기사 등을 보면 일제하에서도 냉면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36년 6월 ‘조선중앙일보’에서는 ‘냉면의 고향은 평양’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보도되었을 정도로 냉면은 주로 북부지방에서 발달했고 남부지방에는 밀가루국수가 많았다.

 

남한에는 6·25가 발생하면서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에 의해 냉면 붐이 일었다. 서울 오장동 일대, 강원도, 부산 지역에 이북 피란민들이 크고 작은 냉면집을 열면서 냉면 열풍이 불었다. 부산에는 밀면이라는 밀가루 냉면까지 생겼다.

 

냉면도 지방에 따라 특색이 있는데, ‘동국세시기’에 냉면은 관서(關西)지방의 것이 최고라고 했다. 평안북도에서 메밀이 많이 생산돼 이것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고 평양냉면으로 정착된 것이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에 녹말을 약간 섞어 만든 압착형 국수이다. 평양냉면 국물은 그야말로 찡한 것이 특징이다. 냉면을 먹으면서 큰 대접을 양손으로 받쳐들고 국물을 들이켜면 그 맛이 시원해 간장까지 서늘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평양냉면은 국수에 꿩탕이나 동치미 국물을 부어 돼지고기 삼겹살, 무채김치, 배를 위에 얹고 계란을 실처럼 썰어 덮은 위에 잣, 실고추, 겨자, 식초 등을 넣는다.

 

평양냉면의 전통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는 북한의 옥류관 냉면은 면발이 우리 것보다 덜 쫄깃하지만 부드러우며, 식초만 넣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게 특징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요리제법’의 겨울냉면처럼 고춧가루를 뿌리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다.

 

함흥의 회비빔냉면은 일종의 비빔국수로 볼 수 있다. 함흥냉면의 특징은 국숫발이 쇠심줄처럼 질기고 오들오들 씹히는 데 있다. 평양냉면의 국수는 주로 메밀을 원료로 쓰는 데 비해, 함흥냉면은 함경도 지방에서 많이 나는 감자로 만든 녹말을 압착한 면이기 때문에 매우 질기다. 여기에 고기나 생선회를 고명으로 얹어서 얼큰하게 비벼낸 것이 함흥 비빔회냉면이다.

 

또 남국적인 다정한 맛으로 유명한 진주냉면이 있다. 이것도 겨울철에 먹어야만 제 맛이 난다. 평양냉면이 메밀가루에 녹말을 약간 섞어 만드는 데 비해 진주냉면은 순 메밀만으로 만들고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춘천 막국수 역시 냉면의 일종이다. 강원도도 메밀로 유명한데, 이곳에서는 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국수틀로 뽑아내고 냉수에 잘 헹구어 사리를 만든다. 여기에 식초, 겨자, 육수, 양념간장을 쳐서 먹는다. 막국수는 면만 차갑게 식힌 후 간단한 양념을 해서 쉽게 만들어 먹는다고 해서 막국수라고 불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