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봉평’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피나얀 2006. 9. 7. 23:11

 

출처-[조선일보 2006-09-07 09:17]

 


강원도 봉평 ‘메밀꽃 여행’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꼭 한 번 밤에 보고 싶었다. 국어 시간에 이 유명한 문장에 밑줄 굵게 그으면서, ‘심미주의…인간 본능’ 등등 작품 해설을 받아 적으면서 막연하게 상상하고 떠올리던 풍경.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1907~1942)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남긴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 팔십리 길을 당나귀 타고 가던 장돌뱅이 허생원의 눈 앞에 펼쳐졌던 신비로운 하얀 꽃밭.

 

“이지러지기는 했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허생원이 일생일대의 물레방앗간 로맨스를 만들어낸 달밤, 함께 길 가던 장돌뱅이 청년 동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그 달밤을 상상하며 온통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을 메밀꽃밭을 찾아 봉평으로 떠났다.

 

지난 1일 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평창 무이예술관’ 옆 메밀꽃밭. 아쉽게도 반달이다. ‘짐승 같은 숨소리’와 ‘푸르게 젖은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를 만들어내기에는 달빛이 흐리다.

 

또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전조등, 드문드문 인가의 불빛이 그나마 약한 달빛을 방해한다. 인공 조명을 몽땅 꺼 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도 한밤중에 찾아간 메밀꽃밭은 매혹적이다. 살짝 빛을 비추니 한낮에는 그토록 잔잔하고 조용했던 꽃이 탱글탱글 화려하게 살아난다.

 

폐교를 개조한 ‘무이예술관’에서 메밀꽃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는 화가 정연서(52)씨는 “보름달 아래 메밀꽃밭을 보면… 아, 정말 반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때 보면 정말 하얗게 눈이 온 것 같아요.” 아들 정원교(25)씨의 말.

 

보름이었다면, 하고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록 반달이지만, 도시에서 보던 흐리멍텅한 달이 아니다. 누군가 정성껏 닦아놓은 듯 반질반질 윤이 난다. 밤 공기는 달다. 블루 블랙의 바탕 위에 펼쳐진 흰 꽃밭. 봉평의 밤은 아름다웠다.

 

소설 속에 나오는 메밀꽃밭을 보려면 9월8~17일 열리는 ‘평창효석문화제’ 기간에 봉평을 찾으면 된다. 지난 2일 현재, 봉평 곳곳이 메밀꽃밭 때문에 파우더 솔솔 뿌려놓은 듯, 눈이 내린 듯 하얀 색이었다.

 

그러나 축제의 주 무대인 ‘효석문화마을’에 위치한 대규모 메밀밭에는 아직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다. 사무국은 “9월8일이나 9일이면 만개할 것 같다”라며 “꽃이 20일까지는 피어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사람. 지난해에만 무려 57만여명이 다녀갔다는 유명한 축제라 행사 기간 중에는 사람 구경, 차 구경만 하다 올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