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6-09-13 15:39]
어떤 여성은 아이를 셋 낳고 어떤 여성은 아이를 안 낳는다. 어떤 여성은 직업을 갖고 있고, 어떤 여성은 매우 바쁘지만 돈을 버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 조합이 어떻든 각자 고민과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는 우리의 시대상이 농축돼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들의 대안을 지지해주는 게 아닐까. 또 여성들 스스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닐까. 아이 셋 키우는 전업주부 백난숙씨와 아이가 없는 커리어우먼 하왕희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백난숙씨=1966년생. 대학 졸업후 미국에 건너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사진기자로 2년간 일했다. 강원 속초의 동우대학 겸임교수가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33살때 결혼해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았다.
국방대학원 교수인 남편이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다시 2살 터울로 셋째인 딸을 낳았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8살, 7살, 5살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숭실대 미디어학과에서 비디오아트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난해 사람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전 ‘감·옴’을 열었다.
◇하왕희씨=1968년생. 관광학을 전공하고 인터컨티넨탈호텔 기획파트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직장생활을 계속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을 갖고 싶어서 결혼한 지 1년 만에 혼자 호주로 유학을 떠나 홍보학을 공부했다.
2001년말 귀국해보니 홍보업무가 아웃소싱 위주로 바뀌면서 보수나 지위의 안정성이 당초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해 다른 일을 모색하다가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껴 영어학원을 설립했다.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서 5년째 ‘루소영어’ 학원을 운영하면서 일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왜 아이를 셋이나 낳았나, 왜 안 낳았나
백난숙:처음 두 아이는 계획해서 낳았다. 늦게 결혼했으니까 터울 없이 빨리 낳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국 가서 셋째가 생긴 걸 알았다. 셋까지는 키울 자신이 없어서 무척 고민을 많이 했다. 남편은 교수이지만 공무원 신분이라서 월급이 적고, 집도 장만하지 못했고, 교육비도 걱정되고…. 그래도 남편은 계속 아이를 낳자고 나를 설득했다. 결국 낳기로 결심했다. 남편이 귀국할 때 배가 불러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두 아이와 함께 남아있다가 나중에 셋을 데리고 귀국했다.
하왕희:결혼한 다음해에 호주로 1년 동안 공부하러 갔다. 남편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라면서 유학을 허락했다. 귀국하고 1~2년은 새로 직장을 구하느라 아기 낳는 걸 미뤘다. 영어학원을 차리고 일하는 재미에 빠지면서 아이에 대한 생각이 좀 희박해졌다. 집을 일단 장만한 뒤 아이를 갖자는 계획도 있었다. 일과 집, 모두 자리가 잡히고 결혼 5년차인 2년 전부터 아기를 가지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시험관 아기를 권했다.
몸 상태가 썩 좋지 않고 나이도 있으니 빨리 가지려면 시험관 아기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험관 아기를 가지려면 1년에 1천만원 정도 비용이 들고, 학원일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오히려 학원 규모를 2배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냥 자연임신이 되면 산후조리하는 기간만 쉬면 된다. 그러나 시험관 아기는 일과 출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년이 걸릴 지, 2년이 걸릴 지도 알 수 없다. 올해말이나 내년 초로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갈등이 많다.
#아이와 자아실현, 끝없는 평행선
하왕희:요즘은 아이가 없어도 “왜 안 낳느냐”고 채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학원에서 만나는 엄마들 가운데는 “없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 다닐 때 보았던 여자선배들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너무 힘들어 했다. 두 가지를 다 하려면 슈퍼우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다보니 아기를 낳는 일에 대해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꼭 내 아이를 갖고 싶기는 한데 앞으로 헤쳐나갈 일이 너무 많아서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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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멈춘다. 의사들은 자연임신을 하려면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하지만
스트레스를 안받고 일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아이냐, 일이냐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백난숙:결혼한 뒤 5년 동안 “이건 내 자리가 아닌데” 하는 고민이 많았다. 집안살림도 남의 일 같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보면 시기심이 생기고, 부부끼리 만나는 기회가 있어도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 상관 없고 그 부인이 뭐 하는 사람인지만 궁금했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만 머물던 기대가 아이들에게로 옮겨가고 아이들이 잘 크는 걸 보면서 3년 전부터는 갈등이 사라졌다.
요즘은 보람을 느끼고 아이들한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잘한다는 게 꼭 따라다니고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건 아니다.
무엇이든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아이들 키우는 대신 남편 월급 중 10%는 꼭 떼놨다가 나를 위해 썼다. 옷이나 액세서리는 별 관심 없기 때문에 새로 나온 카메라를 사거나 아이들과 함께 피아노·미술도 배운다. 그래도 돈을 못버니까 나 자신을 애 키우는 전업주부라고 규정한다.
#저출산 현상에 대한 생각
하왕희:사회분위기가 아이를 많이 낳자는 쪽으로 기울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은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인프라, 삶의 질의 인프라가 갖춰져야 여유가 생기고 아기도 낳는다고 생각한다. 밤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부가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나.
호주에 가보니까 동네마다 무료 수영장이 있고 바비큐 그릴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일찍 퇴근한 아빠들이 가족과 함께 수영을 즐기고 저녁식사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수영장에 가려면 꼭 돈 내야 하고, 식구대로 가려면 곱하기 4를 해야 한다. 그나마 쉽지 않다. 그러니 각자의 형편과 생각에 따라 아이 낳는 걸 선택하게 된다.
백난숙:아이를 키우는데 부담을 갖는 건 꼭 아이를 따라다녀야 하고 1등으로 키워야 한다는 엄마들의 생각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크도록 내버려두면 그렇게 돈이 많이 들거나 힘들지 않다. 방치형 엄마가 돼야 한다. 내 경우는 세 아이 합쳐서 사교육비가 1백50만원 나간다.
학습은 빼고 놀이 위주로 8~9가지 시키는데 시간당 1만원 이상이 들어가면 스무번쯤 고민한다. 또 다른 원칙은 항상 아이들 수업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이들 셋 합쳐서 단체 할인도 받는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서 공부 잘하게 만들고 좋은 대학 보내는 게 정답이라는 식의 획일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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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대책, 이렇게 본다
하왕희:솔직히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로서는 별다른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조건이 까다롭다.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하니까 서둘러 정책을 발표하는데 그보다 좀더 고민했으면 한다. 49명의 대상자에 만족하지 말고 나머지 1명의 요구를 찾아내 50명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 됐으면 좋겠다.
돈 몇백만원 준다고 아이 세 명 낳으라면 낳을 사람 없다. 교육비가 가장 문제라면 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또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많이 해줬으면 한다. 요즘 뚜렷한 이유가 없는 불임이 많다. 이 문제를 개인병원에만 맡겨놓지 말고 국립병원에서 저렴하게 해결해주면 좋겠다.
백난숙:사교육비에 대해 확실한 저감책을 썼으면 한다. 결국 방과후 수업으로 흡수돼야 할 것이다. 또 세 자녀에 대한 연령 구분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셋째 아이는 2003년 1월생인데 2003년 3월생부터만 셋째에 대한 정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운 좋으면 되고, 운 나쁘면 안되는 정책은 곤란하다. 아이를 낳는데만 관심이 집중되는데 입양문제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외국으로 입양되는 게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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