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음악·영화】

레오의 지젤? 아당의 지젤!

피나얀 2006. 11. 18. 21:03

 

출처-[오마이뉴스 2006-11-18 12:28]



 

 

ⓒ2006 유니버설 발레

인터넷에서 '지젤'을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누른다. 미국 영화배우의 옛 애인이었다는 슈퍼모델의 기사와 사진이 쏟아진다. 아무리 컴퓨터 화면을 밑으로 긁어내려도 그 여자의 사진을 벗어나기 어렵다.

도서관 컴퓨터로 그 이미지 속을 헤매며 '유니버설 발레단 순회공연'을 찾고 있자니, 이를 힐끔 보던 어떤 사람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나간다.

비록 오늘날에는 대중적 인기 면에서 '발레 지젤'이 '모델 지젤'의 그늘에 가린 감이 있지만, 19세기에 <지젤>은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던 '블록버스터'였다.

무희들이 슬리퍼를 신고 무대 위를 슬슬 걸어 다니는 것을 '무용'이라고 믿고 있던 관객들 발 끝으로 서는 것은 물론, 다른 무용수의 힘을 빌어 '날아다니는' 무용수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젤> 이전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i)가 <라 실피드>에서 발 끝으로 서는 기술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지젤>은 보다 더 정교한 안무와 새로운 음악으로 낭만주의 무용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공연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던지, 상인들이 모자나 옷감에 '지젤'이라는 이름을 붙여 팔 정도였다. 1841년 파리에서 초연된 <지젤>이 이듬해에 영국과 러시아에서 공연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이탈리아 그리고 다시 1846년에는 보스톤에서 완전히 미국팀으로 꾸린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이처럼 <지젤>은 대륙의 경계를 넘는 인기를 누리던 국제적 문화상품이었다. 이 과정에서 초연부터 지젤 역을 맡았던 발레리나 칼로타 그리시(Carlotta Grisi)는 지젤 변천 못지않은 세계적 스타로 부상했다.

콧대와 문지방을 낮춰 더 아름다운 <지젤>

▲ 유니버설 발레단의 <지젤> 공연 중 2막 윌리(Wilis)의 군무 장면. 윌리 '윌리'라 불리는 독일 전설 속의 혼령은 슬라브의 '빌라(Vila)'에서 유래했다.
ⓒ2006 유니버설 발레

이로부터 세기 반이 지났고, 이제는 더 멀리 지구의 반대편을 돌아 한국의 각 지역에서 <지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지젤>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과 더불어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발레지만, 유니버설 발레단의 2006년 순회공연은 아주 특별했다. '공연문화 저변확대'는 관계자 모두가 입에 담는 구호지만, 이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뿐 아니라 경제, 정치, 교육의 모든 면에서 한국처럼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차별하는 나라도 없다. '지방'이 ('전국'의 반대가 아니라) '서울'의 반대로 통용되는 한국 특유의 언어용법이 이를 입증한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이 경제, 정치, 교육의 홀대를 받는 상황에서 문화계의 대접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전국 각지를 돌며 장기 공연을 연 유니버설 발레단의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받을만하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펼쳤던 <지젤> 공연은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다.

첫째는 물리적으로 각지를 방문한 것 이외에 1만원부터 7만원 사이의 높지 않은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심리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이다(필자가 관람한 청주 예술의 전당 공연의 경우 'S'석이 2만원이었다). 무엇보다 필자를 사로잡은 것은 높은 공연 수준이었다.

 
▲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임혜경
ⓒ2006 유니버설 발레

무대, 안무, 무용기술, 그리고 조명에 이르기까지 흠잡기 어려운 훌륭한 공연이었다. 막이 오른 후 한국의 발레가 세계수준에 올랐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특히 필자가 관람한 공연의 주역을 맡은 지젤 역의 임혜경은 무용과 연기력 모두에서 관객들의 찬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젤이 실연에 충격을 받아 머리를 풀어헤친 정신 나간 표정으로 꽃점을 치는 몸짓을 할 때 필자는 넋을 잃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임혜경이 한국에서 교육받았다는 사실은 한국 무용의 밝은 미래를 예고한다. 가장 큰 아쉬움은 녹음된 음악을 쓴 것이지만, 순회공연의 한계와 비용 문제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한국 무용의 발전을 지켜보는 것은 뿌듯한 경험이지만,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이 국제적 수준의 발레단이 각지의 애호가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문지방과 콧대 모두 높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특권의식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낮은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징표임을 생각할 때, 유니버설 발레단의 '관객 찾아 나서기'는 역으로 한국 문화계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젤>, 낭만주의 무용의 새로운 시도

 
▲ 전설적인 무용수 마리 탈리오니. 낭만주의 발레의 효시 <라 실피드>에서 발끝으로 서는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2006 Wikimedia Commons

유니버설 발레단의 색다른 노력은 무용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지젤>의 혁신적 시도와도 잘 어울린다.

무용에서 낭만주의는 문학이나 미술 등 다른 예술의 영역보다 뒤늦게 찾아왔다. 그리고 이 변화의 움직임은 마리 탈리오니라는 한 무용수의 '엉뚱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 이전까지 무용은 남성 위주로 기획되고 공연되었으며, 희랍신화 등의 익숙한 이야기를 재현하던 무용은 전통적인 기교를 어떻게 잘 익혀서 보여주는가에 집중되었다.

당시 무용수는 무거운 가발에 바닥까지 닿는 겹겹의 치마를 입고, 심지어 높은 굽이 달린 신발을 신은 채 춤을 추었다. 탈리오니는 무거운 신발을 벗어 던지고 스커트를 무릎까지 잘라냈다. 지금과 같이 앞이 단단한 신발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공단에 천과 가죽을 댄 신발로 발 끝으로 서는 기술 '앙 포앵트(en pointe)'를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그녀의 신발은 현재 보편화된 발레화와 짧은 무용복 낭만주의 '튀튀(tu tu)'의 원형이 되었으며, <지젤>은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태어났다.



 

▲ 1830년경에 사용되던 무용화(위)와 오늘날 사용되는 현대적 포인트슈(아래)
ⓒ2006 Wikimedia Commons

낭만주의의 핵심이 창작자의 개성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다면,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적인 예로 <지젤>을 꼽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지젤>은 그 기원부터가 낭만주의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이야기를 기존의 기술로 답습하던 전통과 달리, 특정 무용수를 염두에 두고 창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테오필 고티에는 하이네가 쓴 독일 민담을 읽다가 밤마다 분노의 춤을 추는 처녀귀신의 이야기를 발레로 옮겨보기로 결심한다. 그가 처녀귀신의 이미지에 투사한 것은 자신이 흠모하던 발레리나 칼로타 그리시였다. 여기에 아돌프 아당이 곡을 쓰고, 그리시의 남편 페로가 안무를 맡아 발레 <지젤>이 탄생했다.

고티에의 제안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작곡자 아당은 스케치를 단 8일 만에 끝내고, 곡 전체를 3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새로운 기획에 걸맞게 아당은 음악에 새로운 장치를 동원했다. 그것은 등장인물에 따라 다른 시도동기(leitmotif)를 쓰는 것이었다.

▲ 지젤을 위한 음악의 동기부. '사랑의 장면(Scene D'amour)'의 도입부.
ⓒ2006 강인규

등장인물인 지젤, 알브레히트, 힐라리온이 등장할 때 서로 다른 악상에 기초한 음악이 연주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젤은 다음과 같은 소절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바이올린이 앞 세 음을 연주하면 오보가 그 음을 낮은 소리로 흉내 낸다. 이 동기에 기초한 곡은 흔히 '사랑 장면(Scene D'amour)'나 '꽃의 테마'로 불리는데, 그것은 지젤이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져 데이지꽃잎을 하나씩 떼면서 그의 사랑을 점쳐보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곡이기 때문이다. 이 곡은 지젤이 알브레히트가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미치는 장면에도 사용된다. 흥미롭게도 이 동기부는 사랑의 환희와 실연의 고통을 동시에 표현한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노력에 갈채를 보내며

▲ 유니버설 발레단의 <지젤> 공연 1막 가운데 한 장면.
ⓒ2006 유니버설 발레

언젠가 동료 하나가 "같은 발레를 몇 번씩 봐도 지겹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그 친구는 필자가 88년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20년간 '같은 공연'을 매년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지젤>이 초연되던 당시만해도 오늘날과 같이 극장 공연을 대체할 만한 다양한 대중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는 텔레비전, 영화, 녹음된 음악과 녹화된 공연 등 극장에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넘쳐난다. 수준급 발레단의 녹화공연을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텔레비전에서 발레공연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수고와 비용을 치르면서 '같은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야 하는가?

같은 안무가의 무용을 같은 발레단이 공연하는 경우라도 같은 공연을 두 번 볼 수는 없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은 공연을 영화나 텔레비전과 다르게 만들어준다. 모든 공연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공연자들은 매 순간마다 미묘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한다. 이것은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어떻게 무용과 연극이 존속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동시에 이것은 왜 공연단체가 전국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니며 대중들과 소통해야 하는 이유 또한 설명해 준다.

유니버설 발레단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더 자주, 그리고 더 멀리, 한국의 구석 구석을 찾아주기를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강인규 기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같은 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기호학으로 세상 읽기> (소명/공저)와 <대중문화 낯설게 읽기> (문학과 경계/공저)가 있다.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