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7-01-08 13:35]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로 이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11시, 백담사 앞에서 한숨을 돌렸다. 내설악 백담사라 쓰인 일주문은 머리에 하얀 눈을 쓰고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는데, 웬일인지 백담사에 만해 선생은 아니 계시고 머리 반짝이는 어느 정치군인이 여직 앉아 있는 것 같아 들어가 보기가 싫었다. 내쳐 길을 나서니 백담계곡의 물은 반 넘어 얼어있고 그 위에 눈이 덮여 황은색의 괴석과 어우러져 선경을 이루었다. 그 아래 졸졸거리는 물소리는 세속의 옹졸한 생각을 버리라고 우리를 달래는 것 같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눈도 깊어져 이제 발목을 지나 종아리까지 찬다. 인적은 괴괴하고 사방은 고요하여 앞에 가는 친구의 헉 헉 대는 숨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가깝다. 때때로 사람소리에 놀란 산새, 퍼덕이며 날아간 나뭇가지에서 눈 떨어져 '늘근 백수'의 목덜미를 간질인다. 좋구나. 비록 벌써 허리 뻐근하고 가슴이 풀무 짓하듯 쿵쾅거리지만, 좋구나. 이렇게 좋으니 딴 소리를 듣더라도 오지 않을 수가 없을 수밖에.
영시암을 거쳐 수렴동 계곡으로 접어드니 산은 점점 깊어지고 눈도 덩달아 깊어져, 길은 종내 없어지고 앞 사람의 발자국만 희미하게 눈 속에 남아 있을 뿐. 헌 발자국위에 새 발자국을 포개며 앞선 자의 흔적을 쫒아가다 보니 시계는 어느 듯 오후 1시 30분. 어차피 앉아서 편하게 밥 먹기는 글렀고 눈밭에 서서 주먹밥을 꺼내 먹는다.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서니 산은 급격하게 가팔라지고 눈은 무릎보다 더 높이 싸여 있어, 등산스틱을 조금만 어긋나게 짚으면 손잡이까지 눈 속에 파묻히는 지경이었다. 그 상태로 한참을 가다 오랜만에 사람 목소리를 들었다. 눈밭 속에 중년의 여인 둘이 아무런 장구도 없이, 배낭도, 하다못해 물통 하나 없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속도가 조금 느리기는 하였으나 힘든 기색도 전혀 없이 마치 동네 마실 가듯 유유자적 산길을 즐기고 있었다. 차림새로 보아 봉정암에 가시는 보살인 듯 하였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이 눈길 속에 나서게 하였을까. 우스개 속의 늙은이처럼 며느리가 있을 나이도 아닌데, 저 여인들은 무엇을 구하러 이 눈밭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일까? 나는, 또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무엇을 버리고자 이 가파른 눈밭 속을 헤매는 것일까? 이 나이에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다는 자기 만족감을 위함일까. 아직 육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 해보고자 함일까. 아니면 고통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 보자 함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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