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화천 파로호 숨죽인 설경… 발소리에 소스라칠라

피나얀 2007. 1. 11. 19:06

 

출처-[국민일보 2007-01-11 15:49]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파로호 수면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포연처럼 자욱하던 물안개가 블랙홀 같은 허공으로 빨려들자 겨울호수가 탈색한 흑백사진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 호수를 감싼 산봉우리의 윤곽이 선명해질 즈음 부지런한 낚싯배 한 척이 살얼음을 깨고 강심을 미끄러진다. 호젓한 겨울호수를 무대로 ‘백조의 호수’를 꿈꾸는 까마귀 한 쌍이 파로호에 생명력을 더한다.

 

산천어와 수달이 사는 파로호는 상상의 동물인 대붕(大鵬)을 닮았다.

 

꼬리에 해당하는 북한강 줄기는 평화의 댐과 휴전선을 넘어 내금강을 향하고,날개처럼 생긴 호수가 화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모양새는 하늘에서 보면 영락없이 대붕이 날아가는 모습이다.

 

겨울호수의 비경은 대붕의 꼬리와 오른쪽 날개에 꼭꼭 숨어 있다. 나룻배가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해 육지 속섬마을로 불리는 비수구미는 파로호를 상징하는 비경. ‘신비한 물이 만든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란 뜻의 비수구미(秘水九美)는 3가구가 사는 오지마을로 원시림에 둘러싸여 있다.

 

평화의 댐 2단계 공사가 끝나면서 파로호가 담수를 시작해 산기슭을 따라 난 흙길이 물 속에 잠기면서 더욱 쓸쓸해졌다. 비수구미 주민과 외지인이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때는 얼음이 두껍게 어는 한겨울뿐.

 

미수구미 아래에 자리한 동촌마을은 스위스의 호수마을처럼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멋을 풍긴다. 그 옛날 호랑이가 출몰해 사람을 해쳤다는 구절양장의 호음(虎音)고개를 넘으면 외딴집들로 이루어진 동촌리다.

 

향어 잉어 붕어 메기 쏘가리 등 담수어가 많아 강태공들이 입소문으로 찾는 동촌리는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나 눈꽃이 활짝 핀 겨울철에 찾아야 제 멋이다.

 

아침밥 짓는 연기가 푸르스름하게 피어오르는 동촌마을 고샅길은 밤새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을 뿐 인적은 없다. 낚싯배 서너 척이 뭍으로 올라앉은 호숫가의 갈대와 왕버들은 눈꽃과 서리꽃을 활짝 피운 채 보석처럼 반짝이고,미루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산까치는 나그네가 반가워 목청을 높인다. 동촌마을에서 만나는 파로호는 저수지처럼 아늑하다. 호수를 향해 주름치마처럼 흘러내린 해산(1194m) 자락이 들쭉날쭉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화천댐과 해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나는 딴산유원지의 겨울풍경도 동천마을 못잖다. 평화의 댐이 생기기 전 딴산 양쪽으로 물줄기가 흘러 섬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도로가 나면서 동산으로 변했다. 강물을 끌어올려 만든 딴산폭포의 빙벽 앞 강은 우리나라에서 늦게 해빙되는 곳으로 신차 개발 때 빙판길 주행 테스트를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딴산유원지에서 반딧불이 계곡과 산천어 양식장을 거슬러 오르면 화천댐과 파로호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로호는 1944년 화천댐 건설로 탄생한 38㎢ 넓이의 인공호수. 파로호는 처음 대붕제로 불리다가 해방이 되면서 지역명을 따 화천호로 불렸다. 그러나 1951년 국군이 이곳에서 중공군 3만명을 수장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우자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의미로 파로호(破虜湖)라는 휘호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겨울호수가 가장 겨울호수다운 곳은 구만리의 파로호선착장 부근. 그 중에서도 자유수호의 탑과 이곳 출신 시조시인 이태극의 시조비를 잇는 200m 남짓한 오솔길은 겨울호수의 서정이 물안개처럼 아스라하게 피어오르는 곳이다.

 

멀리 호수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진동시켜 겨울호수를 깨우면 파로호는 부끄러운 듯 다시 물안개로 나신을 가린다. 거울 같은 수면을 유영하던 물오리 떼가 물안개를 넘나들며 숨바꼭질을 하고 호숫가에서 자맥질을 하던 원앙새 부부는 수초 숲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물안개는 적군처럼 밀려왔다가 포연처럼 스러지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호수를 에워싼 병풍산 정상의 눈구름 사이로 밝은 기운이 언뜻언뜻 보이더니 물안개가 씻은 듯 사라진다. 벌써 해가 솟았나보다. 순간 파로호의 설경이 앨범 속의 흑백사진처럼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파로호선착장에 닻을 내린 낚싯배와 방갈로형 수상 좌대는 겨울호수를 벗한 겨울나그네. 산철쭉이 호수를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올 봄부터 평화의 댐까지 24㎞ 구간을 운행할 꿈에 부푼 유람선은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봄꿈을 꾸고 있다.

 

파로호의 유일한 섬인 다람쥐섬은 겨울호수의 설경을 완성하는 화룡점정 같은 존재. 수평선 끝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다람쥐섬엔 안타까운 사연이 전설처럼 전해져온다. 1970년대 중반 한 사업가가 일본에 애완용 다람쥐를 수출하기 위해 수만 마리의 다람쥐를 섬에서 사육했으나 가뭄으로 호수의 물이 빠지면서 그 많던 다람쥐가 모조리 인근 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한 겨울호수의 주인공은 까마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까마귀 한 쌍이 화려한 날갯짓으로 흑백사진 같은 겨울풍경화를 동영상으로 바꾼다. 하루에 9만리를 날아간다는 대붕을 깨우기라도 하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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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파로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45번 국도를 탄다. 남양주 화도읍에서 경춘선과 만난 45번 국도는 46번으로 이름을 바꿔달고 강촌유원지를 스친다. 의암교 아래에서 계속 북한강과 나란히 달리는 서쪽 도로를 타고 거슬러 오르면 화천이다.

 

화천 읍내에서 460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대붕교를 건너면 파로호선착장이 나온다. 대붕교에서 북쪽으로 직진하면 해방 전에 일제가 기초를 놓고,한국전쟁 중 북한이 교각을 놓았으며,휴전 후 화천군이 상판을 얹어 완공한 구만교가 나타난다.

 

꺼먹다리는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타르를 칠한 교량으로 영화 ‘전우’와 ‘산골 소년의 사량이야기’를 촬영한 곳.

 

처녀고개를 넘으면 화천댐으로 가는 딴산유원지가 보이고 이어 동촌마을로 가는 시멘트길이 나온다. 해산의 아흔아홉고개를 넘으면 북한의 금강산 댐(임남댐) 방류에 대비해 건설한 평화의 댐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댐에는 비목공원과 한국수자원공사의 물문화관,세계평화의 종공원 등 볼거리가 많다.

 

비수구미 마을을 둘러보려면 평화의 댐 아랫길을 달려 수하리선착장에 차를 세워놓은 후 마을주민의 나룻배로 이동해야 한다. 비수구미마을 토박이인 장만동(033-442-0145,www.bisugumi.com)씨에게 연락하면 민박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