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건강】

상담 권하면 “미쳤단 말이냐” 화부터 벌컥

피나얀 2007. 3. 9. 18:15

 

출처-[동아일보 2007-03-09 04:07]

 
‘2000년 현재 미국에서 암 다음으로 직간접 비용(질병 부담)이 많은 질환은 무엇인가?’ ‘전 세계에서 직간접 비용이 2000년 현재 4위지만 2020년 2위로 올라서리라 예상되는 질병은?’
 
이들 질문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놓은 답은 우울증이다. 정신질환 가운데 한 가지인 우울증으로 세계인들이 겪는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이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특별히 정신이 연약한’ 사람들이 걸리며, 한번 걸리면 치료가 힘든 ‘천형(天刑)’으로 잘못 알고 있다. 정신질환은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3명 중 1명꼴) 병이며 꾸준히 약물 또는 상담치료를 받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한국은 정신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려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이 공동 조사해 2005년 발표한 한국인의 질병 부담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8위)은 상위 10대 질병에 속한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자도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 파괴되는 개인의 삶
 
김모(58·경기 성남시) 씨는 1월 말 형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찾았다. 그는 술만 마시면 의처증이 심해져 부인과 자녀를 폭행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10대 후반부터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셔 대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됐다. 형제들은 “사람은 착한데 그저 술이 너무 과해서”라며 혀를 찼다. 이들은 사춘기를 맞은 김 씨의 아들이 가출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에 대한 무지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가정이 파괴되고 직장 생활이 붕괴된 뒤에야 허겁지겁 정신과를 찾는다.
 
한모(37) 씨는 정신건강을 제때 돌보지 못해 직장에서 쫓겨났다. 1990년대 중반 금융권에 발을 디딘 그는 소심한 성격 탓에 직장 동료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는 ‘성격이 이상한 사람’으로 찍혀 1년 뒤 지방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이후 대인관계를 접었으며 자신감과 집중력이 떨어져 20대 중반에 권고 퇴직을 당했다. 그를 진찰한 전문가들은 지방 발령 직후 우울증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성인뿐만 아니다. 소아청소년정신장애를 겪는 아이들은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면 문제아로 낙인찍혀 비행 청소년의 길을 걷기 쉽다. 가장이 알코올의존증이나 도박 중독 증상이 있는 가정에선 노인 및 아동 학대가 흔하다. 정신질환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의 파괴범이기도 하다.
 
○ 정신건강에 대한 오해들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환청을 듣거나 머리를 산발한 채 이유 없이 웃는 사람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이런 증세를 보이는 정신분열병 환자는 전체 정신질환자의 1% 안팎에 불과하다.
 
가장 흔한 정신질환인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는 겉으로 보기엔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아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일반인들은 ‘기분이 나빠서’ 또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여길 뿐이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세주 교수는 “가끔 경험하는 걱정, 불안, 의욕 저하, 기분 변화 등이 약한 정신질환의 징조일 수 있는데 상담받기를 권하면 대부분 ‘내가 미쳤다는 말이냐’고 화를 낸다”며 “초기 우울증세가 있던 한 주부는 남편이 ‘그 정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해 증세가 심해진 뒤에야 입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지식지수 측정에 참여한 사람 10명 가운데 7명(70.2%)은 정신질환에 걸리면 마음을 다스리는 게 좋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우울증 환청 망상 등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원인이어서 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 정신건강 문맹이 더 큰 문제
 
호주 멜버른대 심리학자 앤서니 좀 교수는 “정신질환에 걸린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100년쯤 뒤 사람들은 우리가 정신질환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알고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암 환자들이 암에 걸린 사실을 공개하길 꺼렸지만 치료방법이 알려지면서 요즘 암 환자들은 병을 대하는 태도가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정신질환자나 주위 사람들도 이 같은 자세를 갖지 않는 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동우 연구위원은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일시적이나마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기란 어렵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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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결심땐 ‘죽고 싶다’ 안해”

 


 
한국인이 평생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은 33.5%다. 3명 가운데 1명꼴로 정신적 이상을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본보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공동조사에서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88.7%·7번 문항)은 정신질환이 이처럼 흔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가운데 6명(58.9%·4번 문항)은 정신과 약물은 한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할 만큼 의존성이 있고 뇌기능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신과 약물은 대부분 의존성이 없으며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이 호전되면 뇌기능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염두에 둔 사람의 절반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죽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다. 지난달 자살한 정다빈 씨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겼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60.9%·6번 문항)은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죽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다. 정신질환으로 비롯되는 파국을 막으려면 이런 오해부터 사라져야 한다.
 
응답자들은 정신질환의 종류와 증상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는 편이었다.
 
질환명을 나열하고 정신질환의 증상과 연결하라는 9번 문항에서 10명 가운데 5∼8명이 정답을 맞혔다. 특히 초등학생이 주의가 산만하고 수업 시간에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는 증상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는 답을 맞힌 사람은 76.8%나 됐다.
 
정신질환을 난치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1번 문항)은 10명 중 3명(29.8%)에 불과했다. 실제 정신질환은 감기처럼 치료가 잘되는 것부터 암처럼 치료가 힘든 것까지 종류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