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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물골 노부부의 시골집을 지켜온 것들

피나얀 2007. 4. 10. 21:35

 

출처-2007년 4월 9일(월) 12:01 [오마이뉴스]

 

 

▲ 경운기 자가용(?)을 타고 건너마을 잔칫집에 가시는 물골 노부부

 

ⓒ2007 김민수

 

강원도의 물골의 겨울은 길었습니다. 이제서야 땅을 갈고 파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땅이 되었으니 지난겨울이 얼마나 길었는지 감이 오시는지요? 물론 그렇게 긴 겨울을 뒤로하고 푸릇푸릇 개망초, 쑥, 애기똥풀, 벼룩나물, 점나도나물, 씀바귀, 냉이가 올라왔구요 지난겨울 심어놓은 마늘도 푸릇푸릇 새순을 올렸습니다. 제비꽃, 산괭이눈, 처녀치마도 봄바람이 났고요.

지난주에 밭을 갈아놓을 터이니 와서 감자도 심으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올해는 물골에 무엇을 심을까 다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토란도 싹을 틔워 가져갔고, 당귀도 심으려고 모란장에 가서 당귀뿌리를 사두었고, 돼지감자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에 돼지감자도 조금 샀습니다. 물론 옥수수와 감자는 기본이겠지요.

아침 8시, 노부부가 경운기 자가용(?)을 타고 외출 하십니다.

"어디, 장에 가세요?"

"아니, 저그 동네에 잔치가 있어서 다녀올라요. 서울양반이 집 좀 봐주시구랴."

"예, 잘 다녀오세요."

맨날 사람 그립다고 언제 오냐고 하시더니만 훌쩍 잔칫집으로 떠나시다니, 오늘은 삼겹살도 구워 드리려고 넉넉하게 사왔는데.

▲ 노부부가 집을 비운 뒤 집을 지키고 있는 멍멍이
ⓒ2007 김민수
물골 노부부가 시골집을 비운 사이, 그 집을 지키는 것들이 있습니다. 순둥이 멍멍이, 그도 사람이 그리운지 짓기는커녕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자기 좀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놀아달라고 난리를 칩니다.

"멍멍아, 그래 가지고 어디 집 지키겠냐? 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구나?"

지난겨울에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고 하시더니만 흰둥이 다섯 마리가 잘 자라주었습니다. 서로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통에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강아지와 함께 있으면 든든하겠지요. 더군다나 밤에는 산짐승들이 내려오기도 한다니 개가 짖어줘야 산짐승들도 집 근처에 얼씬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개가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인정사정없이 흔들리는 꼬리, 가만히 앉아 바라보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혹시 자기들을 해치는 무기가 아닐까 경계하며 집으로 쏙 들어갔다가도 이내 다시 나와 꼬리를 흔드는 것을 보니 집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물골 노부부의 가장 큰 재산인 한우
ⓒ2007 김민수
한미FTA의 파장이 어떻게 미칠지 물골노부부는 모르십니다. 그저 키우는 소들이 잘 자라주고 쑥쑥 새끼를 낳아주면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수고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터인데 세상이 어수선하니 작은 것으로 행복해하는 이들의 행복의 편린들이 하나 둘 부서져 버립니다.

지난 늦가을 소가 병이 들었는지 수의사가 왕진을 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할아버지, 수의사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자 곧 환하게 펴지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타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보다 더 애틋한 정이 가는 것이 바로 이 소들일 것입니다.

외양간 주변에 잔뜩 쌓인 볏단을 보면서 "너희들은 참 행복한 소들이다"고 했습니다. 초식동물이 풀을 먹고 자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풀을 먹으니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한 동안 뜸하던 사이 못 보던 식구가 늘었다.
ⓒ2007 김민수
물골 노부부가 집을 비운 뒤 집을 제대로 지켜주는 것이 있었는데 지난번 물골을 찾았을 때에도 보지 못했던 새 식구인 거위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놈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든지 밭일을 하는데 영 협조를 안 해 줍니다.

"와, 멍멍이들보다 거위가 확실하게 집을 지키네. 거의 소음 수준이다."

그런데 얼마 후 올라가보니 거위가 알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울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보는 거위 알이 신기했습니다. 잔칫집에서 돌아오신 할머니가 거위 알을 꺼내는데도 조용하기만 한 거위들, 주인을 아는 모양입니다.

물골 노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에 집을 지켜주는 것들은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산야에 피어나는 작은 들풀들은 물론이요,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 하늘과 바람과 모든 것들이 그 작은 집을 지켜주는 것이지요.

작은 웅덩이에 올챙이들이 바글바글합니다. 그들도 물골 작은 집을 지키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물골에도 봄이 왔습니다. 진달래, 제비꽃, 처녀치마, 산괭이눈도 화들짝 피었고 원추리싹과 쑥, 봄나물들이 여기저기서 삐죽거리며 올라와 물골을 연록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습니다. 노부부가 뿌려놓은 더덕 순이 예쁘게 올라와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물골 노부부의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들, 멀리 타지에 나가있는 자식들 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 올챙이들이 바글바글,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2007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