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부여-공주 '화려한 백제의 봄'

피나얀 2007. 4. 18. 20:23

 

출처-[스포츠서울 2007-04-18 11:48]

 

‘금강의 봄. 다시 찾아온 백제의 봄’

태왕후는 주몽에게 이별을 고하고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그렇게 남쪽으로 떠났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주몽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역사는 계속되어 이후 비류·온조가 당도한 곳은 미추홀·위례성 등 한강유역이다. 여기서 나라를 연 백제가 475년 문주왕 1년 고구려에 도읍을 빼앗기고 남천하여 옮겨간 곳은 금강 유역의 웅진성. 바로 고마나루(곰나루·熊津)가 있는 지금의 공주다.
 
또 538년 성왕이 다시 금강을 따라 내려와 터를 잡은 곳은 사비성으로 지금의 부여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무령왕. 성왕 등 찬란한 후기 백제의 문화를 꽃 피울재. 섬세한 백제인들의 고고한 예술성을 닮은 듯 이 두 옛 도읍은 금강처럼 묵묵하지만 장엄한 봄맞이를 하고 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한 권을 사서 백제인이 걸었던 그 길로 떠날 채비를 해보자. 지난해 들어선 백제문화재현단지에다 백제왕궁(2010년 완공)마저 들어서면 융성했던 옛 영광을 되찾아 곧 ‘백제의 화려한 봄’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테니.


‘금강(錦江)에 살어리랏다-공주’

◇오! 금강

누군가 말했다. 금강에는 한이 흐른다고. 공주에서 부여로 굽이쳐 흐르는 금강을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인간과 국가. 가족의 탄생과 죽음 모두를 지켜보고 아무말 없이 묵묵히 흐르기만하는 그 대자연의 세월향이 느껴진다. 적군에 쫓겨 곰나루에 닿은 백제왕을 와락 안아준 이래 삼천궁녀가 뛰어내리고 오천결사대의 피가 흘러내리는 아픔을 함께 맛보았다. 찬란한 왕국의 부흥과 멸망을 동시에 지켜보고 더이상 서럽지 않으리라던 천년 세월이 지난 후에도 물줄기처럼 굽이친 세상사 때문에 눈물 많이 흘려보낸다.

일제에 의해 수탈물자가 바다로 흘러갈 때 수많은 피와 눈물도 함께 금강을 타고 흘렀고. 보국안민의 동학깃발이 횃불로 우금치에 섰을 때에도. 현대에 와서 한 유명한 저항시인이 금강변을 찾아와 ‘빛나던 눈동자’를 발견했을 때조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금처럼 조용히 흐르고만 있었을 게다.

이름처럼 비단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눈물 닦는 광목같기도 한 금강은 지금까지도 억겁의 시간 동안 변함없이 미숫가루처럼 고운 모래를 곰나루 앞에 펼쳐다 놓고 있다. 어쩌면 강은 오랜 세월을 지키고 선 ‘큰바위 얼굴’의 표정을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공산성과 계룡산

공산성(사적 제12호)은 원래 웅진백제시대 때 지금 공주시 곰나루 주변 금강변에 세워진 고대토성인데. 조선조 때 석조하여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10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물결치듯 강변을 따라 길게(2.7㎞) 축성된 장대한 성벽이 아름다운데다 잔잔한 강물에 비친 모습이 조명에 비치는 밤이면 더욱 장관을 이룬다.

진남루와 공북루 등 2개 문과 웅진시대에 지어진 왕궁지. 백제식 연못 등 고대사적이 남아 있어 원래 눈으로 보이는 경치보다 더 많은 정취를 선사한다. 개나리 가득 피어오른 쌍수정과 공북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금강 창벽의 절경이 특히 아름답다. 밤에는 야경이 아름다워 복원된 금서루와 백제큰다리에는 금강교와 함께 공산성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이들로 붐빈다.

공주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
계룡산에서 도를 닦은…”이란 수식으로 유명한 계룡산이 있다. 닭벼슬을 쓴 용을 닮아 경외감을 주는 계룡산(천황봉 845m)은 풍수지리상 4대 명산으로 꼽힌다. 벚꽃이 한창인 계룡산에 오르면 푸르게 물들어가는 동학계곡을 거닐어볼 수 있다. ‘춘(春)마곡 추(秋)갑사’라 불릴만큼 정취가 빼어난 마곡사와 갑사계곡은 결코 빼먹을 수 없는 공주관광의 백미다.

‘온천지에 찬란한 백제의 봄-부여’

◇충절의 꽃비 내리는 백마강


“이 강이 백마강입니까. 금강입니까?” 낙화암 아래 닿은 배에서 내리며 기자가 조심스레 던진 우문에 백마강 늙은 사공은 “종종 그런 질문 던지는 이가 많다”며 “금강이기도 하고 백마강이기도 하다”는 현답을 즉시 내놓았다. 본시 금강인데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전설이 있어 부여에서만 백마강이라 부른단다.

소풍 온 초등학생들이 좁은 길을 선점한
낙화암 오르는 길에서 잠시 쉬자니. 갑자기 황산벌 오천결사대와 낙화암 삼천궁녀. 합이 팔천의 충절과 절개가 떠오른다. 1500여년 전 멸망하던 날 사비성은 지붕까지 불타는데 무섭도록 외로운 산길을 쫓겨가던 궁녀들의 숨가쁜 심장은 얼마나 터질 듯 했을까? 아찔한 이곳에서 죽음을 향해 선채 잠시 망설이진 않았을까? 희미한 역사 상식 몇 대목을 거슬러 되새기며 너무도 많은 생각을 한 탓일까? 머릿속은 복잡한데 멀리 굽이치는 매정한 강은 그들의 몸과 피를 삼키고도 아무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봄은 다시 낙화암 한서린 벽에 깃들고. 하루에 5000여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백화정을 찾아 어디로 쓸려갔는지 모르는 그들의 혼을 기린다. 고란사 약수를 마시고 내려오던 길. 삼천궁녀가 떨어진 그 낙화암 절벽에는 꽃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되살아나는 도읍. 부여

경주·개성 등 옛 도읍지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 국가가 도읍으로 정했던 곳은 역시 산세가 다르다. 부여 부소산(110m)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물에서 솟아난 산세가 수려하다.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왕궁인 사비성의 일부 성으로 비록 나라의 멸망을 지켜본 비운의 성이지만. 백마강을 끼고 반달 모양으로 옛 영화를 고스란히 감싸안은듯한 정취가 느껴질 만큼 위용과 기품이 서려있다.

산성을 오르다보면 여느 산과는 달리 발길 닿는 곳마다 옛 유적이 놓여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는 산행이 즐겁다. 구드레 나루터에서부터 어른 걸음으로 1시간 가량 걸리지만 고란사로 내려와 배를 타면 오는 길은 10분도 채 안 걸릴 뿐 아니라 멀어지는 낙화암을 백마강 강물 위에서 바라보기 좋다.

백제가 멸망하던 날 7일 밤낮으로 불탔다는 군창터 사비성에서부터 고란사까지 2㎞에 이르는 길에 옛 궁궐터. 수혈 적거지. 반월루. 사자루. 낙화암. 백화정. 고란사가 차례로 이어진다. 백마강을 따라선 물길이 좋다. 수북정으로 이르는 유람선 코스는 백제교 다리 밑에 펼쳐진 넓다란 유채꽃밭을 지나 부여 중심가를 단박에 둘러볼 수 있다.
공주-부여 여행정보
 
<공주 둘러볼 곳>

무료버스를 이용해 관광가이드와 함께 도는 공주시티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공산성에서 출발. 영상홍보관∼무령왕릉∼국립공주박물관∼(1코스 박동진 판소리전수관·충남 산림박물관)∼(2코스 계룡산도예촌·자연사박물관)∼웅진성 수문병교대식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공주시티투어=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무료. 단. 입장료와 체험비는 관광객 부담. (041)856-7700 ●구석기시대의 생활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3000여점의 유물이 있는 석장리박물관=입장료 1500원. (041)840-2491 ●무령왕릉·공산성=공주시 사적지관리소 (041)856-0331∼3

<부여 둘러볼 곳>

서동요로 유명한 백제 무왕(武王)의 출생 설화가 전해지는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사비성 별궁의 연못으로 아름다운 고대조경기술을 자랑한다. 여름이면 수련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백제교 주변에는 유채꽃이 가득 피어난 둔치. 경치좋은 수북정과 신동엽시비가 있다.

백마강 일대 부소산성 맞은 편에 위치한 약 100만평 규모·7개 섹션의 백제역사재현단지(총 7개 섹션)는 첨단영상기법과 유물전시 등을 통해 고대왕국의 찬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소산성(고란사·낙화암) 입장료 2000원. 구드레∼낙화암 유람선 승선료(왕복 5000원). 문의 부여군 문화관광과 (041)830-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