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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가져가세요

피나얀 2007. 4. 23. 21:21

 

출처-2007년 4월 22일(일) 10:40 [오마이뉴스]

 

 

▲ 계곡가에 드리운 잎새가 봄빛처럼 푸르다

 

ⓒ2007 김선호

 

4월이 중반으로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꽃 소식이 들려온다. 이맘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곳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의 천마산, 팔현리 계곡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탓에 항상 등산객들로 붐비는 이 산이 숨겨놓은 비밀의 장소다.

불편한 교통 탓에 수년 전까지만 해도 오지로 불렸다는 곳이다. 그곳이 4월 이맘때면 들꽃의 천국을 이룬다. 능선과 능선 사이 협곡이 이룬 지형은 물줄기를 흘려보내 식물들이 살기 좋은 터를 빚어 놓았다. 자연스럽게 온갖 식물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번성해 갔을 것이다.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식물 개체의 분포도가 넓은 탓에 산은 차라리 꽃밭이라고 해야 맞을 듯싶은 팔현리 계곡을 일 년 만에 다시 찾았다.

▲ 팔현리 계곡의 제비꽃은 유난히 빛깔이 곱다
ⓒ2007 김선호
▲ 허리를 굽혀 바라보아요, 개별꽃
ⓒ2007 김선호
한때 오지였다는 그곳도 등산객들이 늘면서 개발의 바람을 타는 중인지 계곡 입구까지 식당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추세다. 때문에 계곡 하류 쪽은 오염된 더러운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꽃들이 터를 이루는 공간이 점점 좁아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불과 일 년이 흘렀을 뿐인데 등산로 들머리 주변의 변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지난해 피나물꽃이 군락을 이루어 피었던 곳인데 나무가 잘리고 터를 다지는 걸로 보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모양이다. 샛노랗게 피어나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던 피나무는 군락을 형성하는 대신 계곡가 여기저기에 포기를 이루어 피어 있었다.

▲ 족두리풀꽃의 고운 자태
ⓒ2007 김선호
▲ 우아하기로는 꿩의바람꽃이 제일
ⓒ2007 김선호
계곡을 지그재그 건너면 피나물꽃을 감상하려니 나도 좀 봐달란 듯 하얀 꽃이 한들거린다. '꿩의 바람꽃'이다. 하얀 자태가 우아하기까지 하다. 작년에 못 본 꽃이기에 반가움이 두 배다. 계곡 하류에 피어난 피나물의 노란 꽃에 이어 이번엔 하얀 꽃들의 행렬이다. 일정한 법칙이 있을 법한 이러한 꽃 빛의 변화는 뒤이어 나타난 점현호색의 푸른빛으로 나타났다.

산과 들 어디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현호색은 팔현리 계곡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꽃 중 하나다. 팔현리 계곡에서는 잎사귀에 하얀 점이 찍혀있는 '점현호색'을 많이 볼 수 있다.

▲ 얼레지가 꽃밭을 이루었으니 발밑을 조심해야지...
ⓒ2007 김선호
숲은 봄을 맞으러 나온 풀들로 빼곡하다. 그 사이사이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 걸음을 붙잡는다. 꿩의 바람꽃과 산현호색이 한창인 가운데 얼레지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산 중턱에 못 미친 지점에서다. 한두 개씩 얼굴을 내밀던 얼레지는 조금 더 깊숙이 산속으로 들어가니 아예 밭을 이루고 피어있다. 숲은 이제 얼레지 천국이다.

꿩의 바람꽃의 하얀색과 현호색의 푸른색을 섞으면 아마도 얼레지의 연보랏빛이 되지 않을까. 색감의 변화로 보여주는 숲의 질서가 장엄함을 빚어내는 순간이다.

꽃밭을 이룬 얼레지를 따라가다 숲길로 들어선 발걸음을 다시 아래쪽으로 돌아 계곡으로 향한다. 계곡 가의 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족두리풀의 고운 자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새 각시가 이마에 쓴 족두리가 그리 예쁠까 싶은 진한 보라색의 이 꽃은 부끄러워 이파리 속에 얼굴을 감추듯 피었다. 누군가 정교한 솜씨로 빚어놓은 작은 종을 연상케 하는 꽃이 어여쁘기 그지없다. 봄 숲을 거니는 일이 이렇게 '보물찾기'를 하는 일이다.

계곡 쪽으로 바위괭이눈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하게 만난 족두리풀이 발길을 쉬 놓아주지 않는다. 7부 능선에 가까워 오니 협곡이 깊어지면서 계곡의 폭 또한 깊고 좁아진다. 그 즈음에서 유난히 이끼가 푸른 바위를 살피면 바위괭이눈을 만나게 마련이다.

잎인지 꽃인지 애매한 바위괭이눈은 습기를 좋아하나 보다. 물이 흘러내리는 바위틈도 마다 않고 핀다. 또 물가 주변 돌 틈에 자리를 잡고 피어난다. 마치 '고양이눈과 같다' 하여 괭이눈이라는 이름이 생뚱맞을 정도로 예쁘다.

7부 능선을 넘으니 산길이 다소 완만해지며 주변은 아예 얼레지 밭으로 변했다. 이제부터 깊은 산골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듯이 얼레지꽃 사이로 미치광이풀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독초에 해당되는 이 꽃도 그 이름과 외양에 비해 진자주색의 예쁜 꽃을 피웠다.

여유가 필수 조건인 꽃 산행은 산책 다름 아니다. 신선놀음이라고 해야 맞을까? 이 세상을 다 가진대도 이렇게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 얼음을 뚫고 꽃을 피워서 얼음새꽃, 낙엽을 뚫고 피면?
ⓒ2007 김선호
얼레지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다 복수초를 만난 지점은 돌핀샘을 얼마 못 미쳐서다. '얼음새꽃'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복수초는 눈을 뚫고 핀 자태로 자주 소개되는 꽃이다. 때문에 눈이 없는 상태에서 핀 복수초는 자칫 다른 꽃으로 착각하게 한다. 낙엽 틈을 뚫고 피어난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꽃, 복수초를 만난 기쁨이 특별했다.

▲ 돌핀샘에서 목을 축이고 가세요
ⓒ2007 김선호
돌 틈으로 물이 흘러들어 샘을 만들었으니, 물맛 좋기로 유명한 '돌핀샘'이다. 산을 올라 잠시 숨을 고르기 좋은 장소여서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샘물 한 모금 들이켜고 그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비탈진 바위길을 타야 한다. 그곳에서 정상까지 1킬로 남짓의 거리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꽃을 보기 위해 이곳을 오른다면 돌핀샘에서 하산해도 상관없지만 정상을 넘어야 볼 수 있는 또 다른 꽃이 있기 때문이다.

▲ 정상을 넘어서 만나게 되는 노랑제비꽃이 군락을 이루었다
ⓒ2007 김선호
신기하게도 정상 근처 바위에 군락을 이루고 피어난 노랑제비꽃. 푸른 것들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유독 샛노랗게 피어난 노랑제비꽃이 장관을 이룬다. 정상부근의 노랑제비꽃 군락까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을 순수한 숲의 정령들을 만나고 하산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볍다.

이제 꽃의 행렬은 끝났겠거니 싶었는데 올라온 계곡을 우회해서 내려다가 바위 틈바구니 분지에 핀 딱, 세 송이의 처녀치마는 또 얼마나 황홀하던지.

꽃길을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곡을 우회해서 돌아가다 만난 작은 지류 양옆으로 꽃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 현호색과 얼레지가 밭을 이룬 들꽃길이다. 그 사이로 올라오면서 보지 못했던 괭이밥이 널따란 군락을 이루어 피었다.

산 중턱을 넘으니 갓 피어난 나뭇잎으로 숲이 푸르게 물들어 가고 있다. 누가 그랬을까, 다래나무를 잘라 놓았는데 수액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다래나무가 흘려보내는 수액을 먹고 갈증을 푸는 일도 즐겁다.

▲ 다래나무 수액으로 목을 축이는 아이
ⓒ2007 김선호
쌉싸르한 수액이 마실 만했던지 아들 녀석이 다 먹고 난 플라스틱 과자통에 다래물을 받는다. 생일선물이라며 다래 수액을 건네는 아이가 밉지 않다. 꽃피는 봄 산에서 받은 이 특별한 생일선물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으리라.

따로 꽃다발이 필요했을까, 산에 지천으로 피어난 꽃들이야말로 축하의 꽃다발로 적합했으니 이 봄, 팔현리 계곡의 봄은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나만의 여행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