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육아】

은둔형 외톨이를 욕하지 마라

피나얀 2007. 5. 3. 21:02

 

출처-[뉴스메이커 2007-05-03 11:57]

 

혹시 우리아이가 은둔형 외톨이는 아닐까? 버지니아 참사 후 부모들의 걱정이 많아졌다.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사회분위기 탓. 우리사회 곳곳에 은둔하고 있는 외톨이들로서는 난데없는 날벼락. 하지만 이들 외톨이는 반(反) 사회적 성향이 아니다. 소외된 현대인의 한쪽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일 뿐. 이미 사회 전반에 대해 개인적인 상처를 안고 산다. 여기에 부정적 인식까지 더해진다면 이들을 두 번 죽이는 셈. “우리를 괴물 취급하지 마세요” 외톨이들의 조용한 항변이다.
 
* 사진은 기사 본문 중 특정사실과 관련없습니다.
대전에 사는 주부 강정미씨(45·가명)는 아이가 게임중독에 빠진 것 같아 요즘 걱정이 많다. 방학 중에는 학원도 안 가고 PC방에 죽치고 앉아 인터넷게임에 하루 종일 매달려 있었다. 사실 강씨로서는 아이가 컴퓨터로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게임을 못하게 말릴 경우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강씨와 몸싸움을 한다.
 
학교는 나가지만, 학교친구와 오가는 경우도 없다. 생각해 보니 아이가 학교나 학원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조승희 사건 후 강씨는 ‘혹시 우리 아들이 조씨가 겪었다는 외톨이 증후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 사건이 우리사회에 던진 파장은 무엇일까. 그 첫째는 범인이 한국계 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조승희와 관련된 것이라면 아무리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한국사회가 촉각을 세운 대목은 ‘이번 사건의 범인이 한국사람이라는 점에 대해 미국사회, 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우려와 달리, 스스로 ‘이민자의 나라’라고 주장해온 그들은 ‘공동체에 대한 타자의 위협’식으로 나가지 않았다. 물론 비록 어눌하지만 조씨가 미국 NBC에 발송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통해 쏟아낸 ‘분노’도 한몫했다. 한국 언론들은 “조씨가 언급한 ‘벤츠, 코냑, 금목걸이’ 또는 ‘가진 자’가 일부 교민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역시 우물안 개구리식 해석이었던 것으로 기울고 있다.
 
두 번째 파장도 있다. 언론들이 이번에 주목한 것은 조씨가 ‘외톨이’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외톨이’라는 단어에 증후군이나 신드롬이라는 말이 붙었다. 언론들은 이들을 방치했다간 “제2, 제3의 조승희가 나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조씨 사건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사회 곳곳에 은둔하고 있는 ‘외톨이’들로서는 난데없는 날벼락이었다.
 
외톨이 증후군 보도 위험수위 넘어
 
‘은둔형 외톨이의 휴식처’는 2005년 인터넷포털 ‘다음’에 개설된 카페다. 회원 수는 340여 명. 비교적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다. 지난 24일, 이 카페의 게시판에는 아침시간에 방영하는 한 주부대상 시사프로그램 방송 작가가 “인터뷰해주실 분을 찾는다”며 게시물을 올렸다. “과민반응을 하지 말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조승희 때문에 외톨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듯. 아침시간대에 자극적인 소재 다루는 방송 아닌가.”(필명 마인드) “또 이런 글이 올라왔네. 여기에 이런 글 올리면 상처받는 영혼이 많다는 걸 모르는지.”(필명 은둔자)
 
조씨 사건이 있기 전부터 외톨이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최근 언론들의 ‘외톨이 증후군’보도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사회성이 좋고 활발한 사람이 그런 범죄를 일으켰다고 ‘활발한 사람이 문제’라는 식으로 진단한다면 그게 말이 되겠어요? 조승희가 일으킨 범죄는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티 문제나 총기 문제 등이 복합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조씨가 정신증적 문제가 있어서 외톨이였던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거죠.”
 
동남신경정신과 여인중 박사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또는 ‘은둔형 외톨이’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2001년 이시형 박사,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와 강북삼성병원 등과 함께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같은 현상이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냈다. 그는 이와 관련된 국내 최초의 연구서 ‘은둔형 외톨이’(도서출판 지혜문화, 2005)를 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여 박사는 이번 조씨 사건 후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와 조승희 사건은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하기 때문에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아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 결과는 우려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나타났다.
 
은둔형 외톨이라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자기긍정 시각을 갖도록 이끌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 지난해 열린 한·일 외톨이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야외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동남 신경정신과 제공>
그는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계기로 하나의 유행처럼 ‘히키코모리’ 문제를 언론들이 돌아보는데, ‘은둔형 외톨이’에서는 조승희와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밥에 독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며 밥을 안 먹는 사람을 거식증으로 진단할 수 없는 것처럼 정신증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를 난사한 조씨의 경우도 정신병이면 정신병이지, ‘과거 그가 외톨이라서’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신병리와 이상심리학 전문가들의 지적은 대체로 일치한다. 여의도성모병원의 채정호 교수는 “상식적으로 은둔형 외톨이라는 정의 자체가 외부와 접촉을 끊고 칩거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과 교수는 “조씨의 경우에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은 정신병, 더 구체적으로 말해 편집증이자 망상장애라는 점”이라며 “보통 히키코모리라고 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으며 그들을 괴물 취급하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 최소한의 사회적 접촉 없이 3개월 이상 집 안에 머물러 있고 ▲ 진학, 취업 등의 사회 참여활동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고 있으며 ▲ 친구가 하나밖에 없거나 한 명도 없고 ▲ 자신의 은둔상태에 대해 불안감이나 초조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를 칭하는 것으로 정의한다.(청소년위원회,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방안’, 2005) 여기서 ‘정신병적 장애 또는 중증 이상의 정신지체가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 간단히 말해 은둔형 외톨이는 정신병이 아닌 것이다.
 
물론 보통 훈련받은 전문가가 아니면 은둔형 외톨이와 ‘병’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상담을 통한 감별이다. “방송보도 등을 통해 ‘은둔형 외톨이’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혹시 우리 아이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가’ 하고 문의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실제로 찾아가 상담해 보면 입원치료나 약물치료가 필요한 정신분열증인 경우도 있다”고 홍지영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밝힌다.
 
그들의 에너지 발산할 통로 열어줘야
 
은둔형 외톨이가 범죄성향 또는 공격성향이 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최근까지 연구에서 그런 성향이 없을 뿐 아니라 일반인보다 도덕적 규범성이 강하다는 견해가 다수다. 실제 만나보면 은둔형 외톨이들은 반사회적 성향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톨이가 된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개념 구분 없이 섞어 쓰는 언론”이라고 여 박사는 주장한다. 그는 조씨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로 전혀 다른 유형인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부정적 ‘낙인(stigma)’이 나타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과거 일본에서 언론이나 매체들이 ‘히키코모리’의 충격적인 면을 파고들면서 이들을 마치 ‘잠재적 예비범죄군’처럼 간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왠지 기분 나쁘고 음침한 이미지, 혐오스런 대상으로 인식하는 거죠. 사실 이들은 소외된 현대인의 한쪽 끝에 있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미 사회 전반에 대해 개인적인 상처를 안고 있는데, 부정적 인식까지 더해진다면 시쳇말로 두 번 죽이는 셈입니다.”
 
상식적으로, 조증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신증적 징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일반적인 통념의 외톨이다. 그렇다고 그 반대의 논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외톨이 증후군의 사례로 언급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타쿠’ 또는 ‘(인터넷)폐인’과 같은 개념은 지금은 오히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마니아 또는 생산성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의미의 맥락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언론들이 외톨이 증후군의 사례로 제시한 ‘아싸(아웃사이더) 족’ 역시 DC인사이드 게시판 등에서 비슷한 성향의 네티즌이 스스로를 지칭해 만들어낸 신조어다.
 
이 역시 앞으로 맥락적 의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미디어전문가 박준표 씨(연세대 청년문화원)는 “자신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는 통로나 채널, 한국적 안전망이 너무 없는 상태에서 이른바 ‘외톨이’를 문제로 보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라며 “결국 ‘외톨이’를 잠재적 문제로 보는 사회적 시선, 누구도 그들의 에너지를 생산적 기획으로 연결시켜 보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