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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 나무에서 이렇게 예쁜 꽃이 필 줄이야!

피나얀 2007. 5. 4. 16:17

 

출처-[오마이뉴스 2007-05-04 13:56]

 

 

▲ 병아리꽃나무

 

ⓒ2007 국은정

 


이제 계절의 여왕, 5월이 시작되었다. 5월을 코앞에 두고도 일교차 탓에 외출할 때면 옷차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몇 번을 망설이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쌀쌀한 저녁 날씨 때문에 고민할 때, 엄살 한 번 피우지 않고 부단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부지런한 나무들이 있다.

며칠 사이 연둣빛 새 잎 사이에 꿈을 꾸는 듯이 소박한 빛깔의 꽃을 피운 나무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덜꿩나무, 팥배나무, 사과나무가 피운 꽃들은 유난히 더 눈길이 갔다. '꽃나무'라고 말하기엔 꽃의 비중이 열매에 비해 그렇게 크진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무에서 핀 그 꽃들은 '나무가 꾸고 있는 달콤한 꿈의 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꽃송이들은 나비가 잠시 그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는 것처럼 은은하고도 몽롱한 이미지를 자아낸다.

▲ 덜꿩나무에서 핀 꽃. 우산살 모양의 꽃받침 위에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모습.
ⓒ2007 국은정

여름을 가까이 둔 봄의 절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덜꿩나무와 팥배나무이다. 어린 시절 놀이터 대신 뛰어놀던 뒷동산에는 이 나무들의 꽃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동네 오빠들은 지금처럼 나무의 물이 한껏 오른 봄날, 가지를 잘라서 손가락 크기로 자른 다음, 껍질을 분리한 후, 수피의 한쪽 끝을 면도칼로 다듬어 피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피리는 한동안 동네 아이들의 재미난 장난감이 되어주곤 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를 흉내내기도 하면서……. 추억이 담긴 나무라서 그럴까?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 나무의 꽃은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팥배나무의 꽃을 1/3 크기로 축소시켜 놓으면 영락없이 덜꿩나무인 줄로 착각할 것이다. 여기에 가막살나무의 꽃까지 함께 피어 있다면 이들을 구별해내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우산살 모양의 꽃받침 위에 송이송이 하얗게 피어 있는 꽃의 모습은 맑은 하늘에 동동 떠 있는 뭉게구름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신선이 타고 다닐 것 같은 구름을 떠올리게도 한다. 나무들이 서로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탓은 아닐까?

▲ 팥배나무. 열매의 모양이 팥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2007 국은정

그러나 이 나무들의 닮은 점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꽃이 닮은 것만큼이나 그들의 열매 또한 아주 많이 닮았다. 꽃이 진 자리에서는 조롱조롱 새빨간 열매가 달리는데 덜꿩나무, 팥배나무, 가막살나무 모두 매우 닮은꼴이라 그 역시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나무의 꽃들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 적잖이 애를 먹어야 했다. 식물도감을 몇 번씩 검색하고 대조해본 다음에야 꽃의 크기, 모양, 잎의 생김새에 따라서 조금씩 그것들이 지닌 나름의 개성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사과나무 꽃은 봉숭아꽃이나 살구꽃과 닮았다. 요즘 나는 그 꽃들 가운데 사과나무 꽃의 매력에 점점 더 끌리고 있다. 향긋하고 먹음직한 사과 열매가 맺히기 전,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꽃이 필 때부터 나무에는 잎이 돋아나 있기 때문에 잎 속에 파묻혀 피어나는 꽃은 훨씬 더 은은한 느낌을 준다.

▲ 사과꽃. 갓 피어난 사과꽃은 분홍빛이 진하다.
ⓒ2007 국은정
▲ 사과꽃은 분홍빛이 점점 더 옅어진다.
ⓒ2007 국은정

무엇보다 사과꽃의 가장 큰 매력은 꽃의 빛깔 변화에 있다. 처음 꽃이 필 무렵엔 분홍빛이었다가 꽃이 활짝 피어날수록 점점 더 하얀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성장하면서 조금씩 수줍은 소녀티를 벗는 숙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과꽃이 지고 그 자리에서 맺히게 될 잘 익은 사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혀끝에 침이 고인다. 이렇게 모든 꽃들은 열매를 위해 존재한다. 열매를 위해 꽃들은 저마다 뽐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주 잠깐 세상에 다녀가는 것이다.

그래서 꽃의 낙화는 슬프고 처량하지만 나무의 한 생애를 위해 꽃은 기꺼이 그 희생을 받아들인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기꺼이 바치셨던 것처럼 모든 꽃이 정말로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사과꽃은 사과나무의 종자에 따라 꽃의 분홍빛이 진한 것과 하얀 빛이 진한 것이 있다고 한다.
ⓒ2007 국은정

이제 5월이 더 깊어지면 훨씬 더 많은 나무들은 꿈을 꾸는 모습으로 부지런히 꽃을 피워낼 것이다. 나무에서 핀 꽃들이 지고 나면 나무에는 보란 듯이 탐스러운 열매가 매달려 있겠지.

나무처럼, 나에게도 이 봄이 훗날의 결실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싱그러운 5월, 활짝 꽃을 피운 나무들을 보면서 나의 서른 해도 올곧게 나아갈 수 있기를!

 

▲ 활짝 만개한 사과꽃은 새하얀 빛깔이다.

 

ⓒ2007 국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