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요리】

다슬기 수제비 푸른 국물, 이게 진짜지

피나얀 2007. 6. 11. 19:59

 

출처-오마이뉴스 2007-06-10 12:14

 

 

 

 

ⓒ2007 김현

 

입맛 없는 계절이다. 풋풋한 봄나물 내음도 맛볼 수 없다. 현충일, 어디 산에라도 갈까 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집에서 종일 뒹굴뒹굴 하고 있으려니 아들 녀석이 자전거 타러 가자고 졸라댄다. 팔에 깁스를 한 딸아이도 답답한지 나가자고 한다. 딸아이는 팔이 아파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없어 아빠랑 가야 한다. 아빠는 운전하고 딸은 뒤에 타고 집 근방의 호수를 몇 바퀴 돌고나면 땀이 흥건하게 밴다.

두 녀석과 자전거를 타고 집에 들어와 샤워라도 하고 나니 좀 낫다. 아이들과 책읽기를 하고 낮잠을 한숨 잔다. 아이들은 자고 일어나더니 엄마에게 먹을 게 없냐고 한다. 아내는 먹을 게 없다고 하면서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타준다. 시골에서 가져온 미숫가루는 요즘 우리 집의 귀한 부식이다. 퇴근하고 출출할 때 미숫가루 한 잔 타먹으면 든든해진다.

▲ 냉동실에서 꺼내 녹인 다슬기. 미리 삶아 냉동시켜 놓아 먹는덴 아무런 문제가 없다.
ⓒ2007 김현
저녁때가 되자 아내나 아이들이나 나나 먹을거리를 찾는다. '뭐 맛있는 거 없어' 하고 묻지만 신통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그때 냉장고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먹던 딸아이가 무언가를 들고 '엄마, 이게 뭐야?' 하고 묻는다.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뜯어보았다. 아니 이게 뭔가. 다슬기가 아닌가.

"당신 뭐야. 이런 거 놔두면서 언제 먹으려고 안 줘?"
"어머, 이게 여기 있었네. 내가 깜빡했어."
"이거 잡은 지 일년도 더 됐겠다. 아휴 못 말려. 오늘 저녁은 이걸로 하자."
"알았어요. 내가 수제비 해줄게."

▲ 속살을 꺼내고 있다.
ⓒ2007 김현
이 다슬기는 작년 여름 남원 처제 집에 갔을 때 잡은 거다. 지난 여름, 동서와 난 지리산에서 남원시내로 흐르는 요천강 줄기에서 전등불 비추며 밤 11시가 될 때까지 다슬기를 잡았다. 허리도 아프고, 시린 물에 춥기도 했지만 하나하나 건져 올리는 다슬기 잡는 맛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잡은 다슬기가 한 바가지나 되었다. 그 중의 일부는 시골집에 갖다 주었고, 일부는 바로 탕을 해서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남은 다슬기를 아내는 살짝 데친 다음 냉동실에 넣어두었나 보았다. 그것을 일 년이 다 된 6월에 발견한 것이다.

 
ⓒ2007 김현
아내는 다슬기를 녹인 다음 아이들과 알맹이를 빼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모처럼 일거리가 생기자 달라붙어 신나한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
"안 돼. 덜 익은 거야. 나중에 수제비 하면 먹어."

아들 녀석이 다슬기 속을 빼면서 알맹이를 입에 넣으려하자 아내가 성급히 말린다. 사실 우리나라 어디에 가든지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엔 가면 다슬기를 볼 수 있다. 그 다슬기는 음식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약재로도 쓰인다. 한의학에서 다슬기는 간, 담 병의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살과 물은 신장에 좋고, 껍질은 간이나 담의 약효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어느 한의원에선 다슬기를 다른 한약제와 달여 주는데도 있다.

다슬기 속을 깐 다음 밀가루를 반죽한다. 아내가 반죽한 밀가루를 아이들이 주물럭대며 논다. 그러다 서로 갖겠다고 다툼까지 일어난다. 서로 자기가 물이 끓는 솥에 넣겠다는 것이다. 결국은 아내의 중재에 의해 3등분 했다.

▲ 수제비를 끓는 물에 넣고 있는 모습
ⓒ2007 김현
우리 집은 늘 그렇다. 팥 칼국수를 할 때도, 수제비를 할 때도 아이들 모두가 달려든다. 요리를 하는 게 아이들에겐 하나의 놀이다. 아내는 귀찮아하면서도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그러다보면 이상한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먹을 때 자기가 한 것을 발견하고 히득거리기도 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만든 것을 먹어보라고 한다. 의기양양하면서.

셋이 나란히 서서 밀가루를 떼어 솥에 넣는다. 솥에선 다슬기 국물과 함께 수제비가 팔팔 끓는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조마조마 한다. 혹 뜨거운 솥에 아이들이 델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푸른 국물을 내고...
ⓒ2007 김현
"자, 완성이다."
"엄마, 국물이 파래. 맛있겠다."
"국물이 진짜지. 이 국물 맛이 끝내주거든. 올 여름에 또 잡으러 가야겠다."
"이번에 우리도 함께 잡자. 응?"
"알았어."

6월 초입에 먹는 다슬기 수제비. 국물의 얼큰한 맛에 한 그릇을 먹고 또 한 그릇을 먹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다슬기 살과 국물 보다는 수제비를 더 좋아한다. 덕분에 다슬기는 대부분 내 차지가 됐다. 아이들이 남긴 다슬기 살을 국물을 후르륵 먹으며 속말로 중얼거린다.

'녀석들, 다슬기의 참맛을 아직 모르는구먼.'

 

 

 

ⓒ2007 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