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독립정신과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곳-충남 홍성

피나얀 2007. 6. 18. 20:25

 

출처-레이디경향 2007-06-18 15:36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에게 6월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에게 독립운동이나 한국전쟁은 피부에 와 닿지 않을 터. 그럴 때 찾아가 역사공부를 할 만한 공간이 있다.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운 이름 모를 의병들과 독립군 대장 백야 김좌진, 민족 33인의 대표 중 한 사람인 만해 한용운이 태어난 곳, 충남 홍성이다.
 


 
일본군을 물리치고 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다홍주성
 
홍성 여행의 시작은 군청 안으로 들어가 민원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시작된다. 군청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기와집과 너른 잔디밭 건너 작은 정자가 눈에 띄는 것. 이곳은 홍주목을 다스리던 목사가 머물던 공간이다. 기와집은 홍주목의 업무를 보던 동헌 ‘안회당’, 작은 정자는 목사들이 휴식을 취하던 ‘여하정’이다.동헌은 고종 7년(1870년) 홍주목사인 한응필이 건물을 고쳐 짓고, 대원군이 안회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노인을 편안히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하며 연소자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노자의 뜻을 담아 이름 지었다 전해진다.

동헌은 22칸의 목조기와 건물로 본채와 덧대어 지은 루가 하나의 몸체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동헌을 동헌이라 부르지 않고 안회당이란 건물 이름으로 부른 유일한 건물이기도 하다. 안회당 뒤뜰에 자리한 여하정은 작은 연못 안 사각형의 섬 위에 정자를 짓고 다리를 놓아 연결한 쉼터다. 고종 33년(1896년)에 홍주목사 이승우가 만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주위의 울창한 고목들이 너른 그늘을 드리워 햇살을 피해 쉬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안회당과 여하정 뒤로 높은 언덕처럼 보이는 게 홍주성곽이다.

원래 토성이던 것을 조선시대에 이르러 바깥쪽으로 돌을 쌓아올려 석성으로 만든 홍주성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성곽의 원래 길이는 약 1800m라 전해지지만 지금은 810m만 남아 있다. 성곽에는 조양문을 비롯해 4개의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이었던 조양문만이 시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아 있다. 원래 홍주성 안에는 관아건물만 35채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안회당과 여하정 외의 건물이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일제가 학교를 만들거나 관청을 만든다는 이유로 성내의 건물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홍주성의 파괴는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여 한일병합을 하려 할 무렵, 홍주사람들이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쫓아낸 때부터 시작됐다.

중화기로 무장하고 돌아와 다시 홍주성을 점령한 일제가 홍주성이 의병의 기지로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성문과 성안을 훼손시킨 것. 당시 홍주사람들이 일제에 맞서 조양문의 철거를 결사반대했기 때문에 지금껏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홍성군청 정문 옆에 자리한 홍주관아의 정문인 홍주아문은 한때 홍성군청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아(亞)자형 문의 가운데 문루에 ‘홍주아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870년 홍주목사였던 한응필이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다. 이 문의 현판도 대원군이 썼다고 전해진다. 홍주아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아문 중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녔으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집스레 지켜온 전통을 만나다갈산토기 옹기체험장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해온 숨쉬는 그릇, 옹기가 있다. 그 그릇에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을 담아 저장하고 숙성 발효시켜 우리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온 것.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전통 가마를 사용하지 않고 편리한 전기 가마나 가스 가마를 사용하는 옹기점들이 많아졌다. 한때는 광명단 유약을 사용해 만든 기는 몸에 해로운 것이라는 이미지를 주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한동안 옹기를 찾지 않았다. 수요자가 없으니 공급자들도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전통 가마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전국을 다 뒤져도 전통 가마 작업을 하는 옹기점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갈산토기도 그중의 하나이다.홍성군 갈산면 동성리에 자리한 갈산토기는 5대를 이어 옹기를 만들고 있는 옹기쟁이 집안이다. 고집스레 한길만 걸어온 금촌 방춘웅씨가 4대를 이어오고 있으며, 그의 아들딸이 5대째 옹기를 만들고 있다. 3년 전 갈산토기에도 위기가 왔었다. 오랜 세월 지켜온 가마터에 불이 난 것. 작업도구 하나 남김없이 모두 태운 이 불로 가마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이때 온 가족이 모여 앞으로도 계속 옹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회의했다. 고단한 세월을 보내온 가족들은 이참에 가마를 접자고도 했다. 하지만 방춘웅씨는 다시 한번 그의 고집을 세웠고, 그 고집을 가족들이 따르면서 지금의 갈산토기가 만들어졌다. 그들의 장인정신은 공간 곳곳에 묻어 있다.

눈길 가는 곳마다 보이는 다양한 표정의 옹기작품과 옹기로 지붕과 벽을 장식하고 있는 흙집들이다. 모두 가족들이 직접 구운 옹기를 이용해 직접 지은 집들이다. 어떤 집은 옹기를 벽돌처럼 쌓아 둥근 흙집을 만들기도 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전등갓부터 전선줄을 고정하는 작은 장식까지 모두 옹기로 만들어졌다. 이런 세심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체험장도 운영하고 있다.체험은 옹기를 빚는 데 사용되는 흙과 유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므로 흙을 정제하는 수비 과정과 소나무와 콩깍지를 태운 재로 유약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유약 만드는 과정을 돌아볼 때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많은 양의 유약이 만들어지는 곳이어서 웅덩이의 깊이가 꽤나 깊기 때문이다. 흙과 유약 만드는 과정을 돌아보고 나면 전통 가마를 볼 차례이다. 이곳에는 두 개의 가마가 있다. 옹기를 굽는 가마와 질그릇을 굽는 가마이다. 질그릇을 굽는 가마에는 가마 옆으로 뚫려 있는 구멍이 없다. 그만큼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다는 뜻이란다. 때문에 그릇의 색도 검게 나온다고. 옹기를 굽는 가마는 높이가 꽤 된다. 옹기는 대부분 작품의 크기가 크기 때문이다.

유치원생들은 서서 오갈 수 있을 정도이고, 어른들도 허리를 굽히고 오갈 수 있을 정도이다. 완성된 항아리가 어른 허리보다도 높이 오는 것들이 있으니 그 정도 높은 것은 당연할 터. 그럼에도 가마 안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옹기가마는 양옆으로 건빵 모양의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다. 그 위를 덮어주는 덮개의 모양이 재미있다. 4박 5일 불을 때 옹기를 구워내는 가마 안의 온도는 섭씨 1230도. 잘 구워진 옹기를 손으로 쳐보면 ‘챙~’ 하는 금속성 소리가 울려나온다. 옹기는 초벌 재벌 없이 한 번 구워 완성하는 것이 도자기와 다른 점이다.가마를 돌아보고 나면 주어진 흙을 얇게 밀어 돌돌 말아 올리는 옹기 만들기가 이어진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모양으로 작품을 만들면 가마에 구워 집으로 보내준다. 체험료는 1인당 7천원. 사전예약은 필수이다. 문의·체험 예약 041-633-1711,
www.galsantogi.com

민족의 독립을 꿈꾸다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백야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선사. 이 두 분의 공통점은 출생지가 홍성군이라는 것이다. 먼저 갈산토기에서 가까운 백야 김좌진 장군의 흔적부터 찾아가보자. 갈산토기에서 나와 홍성읍 방향으로 내려오다 갈산면 소재지의 갈산중고교에 들러볼 것. 이 학교는 김좌진 장군이 열일곱 살에 재산을 내놓아 호명학교를 세우고 신학문을 교육하던 곳으로 호명학교의 맥을 잇고 있다.

이곳에서 결성 방향으로 내려오면 왼쪽으로 김좌진 장군 생가와 사당이 자리하고 있는 생가지를 만난다.갈산면 행산리의 생가지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돌에 쓰인 장군의 마지막 말이다. 할 일이 많은 때에 죽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그 말에서 자신의 죽음보다 먼저 민족을 생각하는 장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비석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전시관이, 왼쪽으로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먼저 돌아볼 곳은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면 김좌진 장군의 흉상을 볼 수 있다. 흉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장군의 생애가 펼쳐진다.

왼쪽으로 가면 어린 시절 김좌진 장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열다섯 살에 집안에서 거느리고 있던 노비들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과 밭을 나누어주던 모습과 호명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만든 수학교재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 전시실에는 1917년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이 되어 활동하는 김좌진 장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20년 10월, 독립전투사상 최대의 승리인 청산리전투 모형도 볼 수 있다. 독립군의 활동상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김좌진 장군의 활약상을 알아볼 수 있다.전시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장군의 생가가 있다.

문밖의 마구간은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만들어놓은 공간. 대문 안쪽이 복원된 장군의 생가이다. 생가 터에는 안채와 사랑채, 곡식을 넣어두던 광이 있다. 장군의 서책이 놓인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다. 건물 끝부분의 툇마루를 한 칸 높여 누각처럼 만든 것이 특징이다. 장군이 독립자금을 모으다 일본군에게 쫓겨 숨어 있던 시절에 썼다는 주련도 눈여겨볼 것. 문의 041-634-6952김좌진 장군의 생가지를 돌아보고 그 앞길을 따라 결성으로 내려가면 결성면 성곡리에 자리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생가지에 도착해 오른쪽으로 가면 한용운 선사의 흉상이 반기는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민족시비공원이 나온다. 만해 한용운을 비롯한 민족시인 20인의 시와 어록을 자연석에 새겨 소나무 숲길을 따라 배치해놓은 공간이다.
천천히 시를 읽으며 산길을 걷다 보면 아담한 초가집 앞으로 길이 이어진다. 그곳이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이다.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이 달린 일자형의 초가집 방 안에는 만해 선생의 영정과 낡은 뒤주 한 개, 호롱불 하나가 방문자를 반긴다. 한쪽 귀퉁이가 깨진 막사발이 소반에 얹혀 있는 부엌에는 가마솥이 걸려 있고, 부엌 옆에는 장작을 쌓아둔 헛간이, 사랑방 옆에는 나무 둥치를 파내어 만든 나무 절구통과 맷돌 등이 보관되어 있다. 뒤쪽으로 우물과 조릿대 무성한 언덕이 있다. 이곳에서 만해는 여섯 살부터 한학을 배우기 시작해 아홉 살 무렵부터는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생가의 왼쪽으로 만해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다. 문의 041-642-6716

●여행정보1 주변 볼거리

● 홍성민속박물관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 언덕에 자리한 홍성민속박물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으로 4백여 종 1천6백40여 점의 민속품을 전시하고 있다. 관장인 소정식씨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물건들로 지레, 물레, 절구, 농가구 등 품목도 다양하다. 아기들이 태어나면서 자른 태를 넣는 태항아리, 노인들이 머리맡에 놓고 침을 뱉는 타구, 박의 한쪽을 깨어 만든 씨앗바가지, 술을 빚어 숙성시킨 뒤 좋은 것만 골라내는 버들 용수 등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다. 입구에는 엄마 아빠의 추억이 담긴 옛날 교과서도 전시돼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이며, 관람료는 어른 5천원, 어린이 3천원이다. 연중무휴. 문의 041-632-4660

● 광천장 광천역사 앞에서 시작되는 광천장은 광천김과 젓갈이 거래되는 상설시장이다. 예전엔 매 4, 9일에 열리는 오일장터였으나 광천의 특산물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 상설시장화한 것이다. 아직도 오일장이 열리는 4, 9일에 광천장을 찾으면 정겨운 시장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바닷물이 닿지 않는 광천이 지금처럼 젓갈시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예부터 내려오는 토굴 젓갈 숙성 방법 때문. 광천에서 보령 방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옹암리가 나온다. 이곳의 토굴들은 바위로 이루어져 연중 섭씨 13도 내외를 유지한다. 직접 토굴 안으로 들어가 숙성되고 있는 젓갈들을 볼 수 있다.

● 그림이 있는 정원 광천읍 매현리에 자리한 그림이 있는 정원은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 만들어낸 수목원이다. 대학 2학년 때 사고를 당해 지체장애 1급의 중증 장애인이 된 아들을 위해 창 밖에 나무 두 그루를 심어준 것이 수목원의 시작. 그 후 10여 년이 지나면서 3만여 평의 수목원은 아들이 주로 그리는 소나무와 다양한 나무, 야생화로 가득한 정원으로 변화했다. 그동안 구족화가가 된 아들의 작품도 수목원 한쪽에 자리 잡았다. 아들이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 ‘더 갤러리’가 바로 그곳이다.

그림이 있는 정원의 길은 흙을 그대로 밟고 다닐 수 있는 다른 수목원과 달리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모두 길이 포장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들이 정원으로 나와 다니며 직접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도록 한 아버지의 배려다. 수목원 입구 매표소에는 이곳을 찾는 장애인들에게 대여하는 휠체어도 준비돼 있다.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일몰시까지이며, 입장료는 어른 5천원, 청소년 3천원, 8세 미만 어린이는 2천원이다. 문의 041-641-1477,
www.gallerygarden.co.kr
 


2 맛집홍성의 먹을거리는 한우와 생선이 주류를 이룬다. 조양문 인근의 한우일번지(041-634-6744 )는 홍성에서도 이름난 고깃집으로 쇠고기 육회와 모둠구이(각 2만5천원)가 전문이다. 홍성군청 앞에 자리한 삼미식당(041-631-1434)은 생태찌개(1만원)와 홍어매운탕(1만원)을 잘한다. 28년 전통의 남당항 백산횟집(041-643-5219)은 싱싱한 계절회가 맛있다.
 


3 잠잘 곳홍성읍 오관리에 자리한 홍성온천 물의 주성분은 천연 알카리성 중탄산나트륨으로 신경통과 혈압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온천 내에 24시간 찜질방도 있다. 숙박은 2006년 9월에 재단장해 문을 연 온천파크에서 할 수 있다. 온천파크의 객실 수는 총 58개이며, 부엌과 방, 거실로 이루어진 가족실이 6개 있다. 온천파크의 숙박료는 가족실이 7만원, 일반 객실이 3만~3만5천원이다. 문의·예약 041-633-6666(온천), 7777(온천파크), www.hongseongspa.co.kr
 


4 찾아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를 나와 홍성군청 방향으로 진입하는 29번 국도를 따라가면 홍성군청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