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피나얀 2007. 6. 21. 20:10

 

출처-경향신문 2007-06-21 09:42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면 됐다. ‘나라 이름 대기’도, ‘수도 이름 대기’에서도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를 들이대면 어린이들은 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들었다. 나스카 땅 그림과 이스터섬의 모하이가 나오는 ‘소년중앙’에도 레이캬비크는 나오지 않았다. 레이캬비크는 사회과부도에만 나왔다. 빨고 있던 사탕 국물을 지도에 떨어뜨리며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라고 발음하면 입 속의 혀가 복잡하게 꼬였다.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그것은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지구가 아무리 둥글다 해도, 레이캬비크를 넘어 전진하는 배들은 수직의 절벽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그 때처럼 코가 빨갛게 짓무르도록 내려다본 비행기 유리창 너머의 아이슬란드는, 황당했다. 땅은 화산재로 때묻은 것처럼 얼룩덜룩했고, 산은 마법사의 모자처럼 끝이 휘어져 있었다. 케플라빅 국제공항에서 레이캬비크 시내까지 가는 동안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항 바닥에서 건져올린 것처럼 초록색 이끼로 덮인 땅에서는 이따금 김이 솟았다.
 
아이슬란드 도로교통의 허브, 레이캬비크 버스터미널엔 매표소와 피자를 파는 카페테리아만 있었다. 딱 가평 시외버스터미널만 했다. 여기가 아이슬란드 인구의 5분의 3, 12만명이 살을 붙이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다. 시내까지는 걸어서 20분. 물론 시내 전역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을 빼면 시내는 평범했다. 집들은 레고 모형에서 집어와 꽂아놓은 것 같았다. 시청이 있고, ‘호수(트요른)’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고, 시골 역사 같은 총리 공관이 있었다. 바이킹의 서사시가 ‘사가’ 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 1940년대에 지은 현대식 교회도 있었다. 표백이라도 한 듯 유난히 밝은 금발의 사람들은 유모차를 끌거나 팔짱을 끼고 거리를 누볐다. 8월인데도 쌀쌀했다. 공항에서 꺼내 입은 점퍼를 결국 아이슬란드를 떠날 때까지 벗지 못했다. 급기야 기념품 가게에서 점퍼 하나를 더 사서 껴입어야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아이슬란드의 첫 개척자, 잉골퍼 아날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874년. 그 까마득한 시대에 얼음 바다를 건너 올 사람은 바이킹밖에 없었다. 뭍이 나타나자 아날순은 바이킹 풍습대로 의자 손잡이를 집어 던졌고, 의자가 닿은 곳에 형제와 가족, 10여명의 노예가 정착했다. 거기가 바로 ‘김나는 만(Smoky Bay)’, 레이캬비크였다. 아날순의 동상은 여전히 의자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뭍을 만나면 배를 머리에 쓰고 전진했다는 바이킹의 후예들은 용감했다. ‘사가’에는 붉은 머리 에릭슨이 대서양을 건너 ‘빈랜드’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자들은 빈랜드를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보고 있다. 기록이 불충분해 ‘우길’ 수는 없지만,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다. 용감한 에릭슨은 지금도 홀그림 교회 앞에 동상으로 서 있다. ‘빈랜드’로 추정되는 미국에서 만들어 보낸 동상이다. 홀그림 교회의 종탑에 오르면 에릭슨이 항해한 대서양이 보인다.
 
홀그림 교회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 여행의 관문이다. 관광객들은 레이캬비크를 기점으로 ‘골든서클’ 투어를 한다. 갑자기 물줄기를 뿜어내는 간헐천 게이시르, 폭포 굴포스, 아이슬란드 의회가 태동한 싱비르를 둘러본다. 4륜구동 차량을 빌려 여름에만 길이 열리는 내륙을 가로지르고, 배낭을 짊어지고 일주일씩 하이킹을 하기도 한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엔 ‘블루라군’에 들러 몸을 푼다. 빙하 녹은 물과 바닷물을 근처 지열발전소의 지열로 데운 일종의 온천이다. 지열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실리카가 노천온천 곳곳에 비치돼 있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파이프와 공장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다.
 
‘블루라군’이란 이름 그대로 물 빛깔은 형광색에 가까운 하늘색이었다. 블루라군 홈페이지엔 블루라군을 너무 좋아해 여기서 결혼식까지 올렸다는 커플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었다. 이 초현실적인 물빛은 사진가도 매료시켰다. 하늘에서 본 지구를 찍는 프랑스 사진가 얀 베르트랑도 블루라군을 내려다보고 셔터를 눌렀다. 블루라군 주변 땅에선 계속 김이 올라왔다. 정말 ‘김나는 땅’이다.

 
레이캬비크의 ‘명동’, 아달스트래티 거리에 세워진 파이프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손을 갖다대니 따뜻했다. 사람들이 돌아간 광장에 주저앉았다. 여기가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1752년 지어진 포게틴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가이드북에도 나왔다. 당시만 해도 레이캬비크엔 겨우 300여명이 살았다. 다른 유럽 도시처럼 르네상스 양식도, 고딕 양식이랄 건물도 없었다.
 
땅에선 김이 올라오고, 이따금 화산이 폭발하고, 뿔 달린 고래가 해안가로 밀려오는 곳. 훗날 톨킨은 아이슬란드를 다녀와 ‘반지의 제왕’을 썼다. 지옥의 땅, 모르도르의 무대가 바로 아이슬란드다. 이 험악한 땅에 고립돼 살아온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언어는 12세기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도 그 중세의 언어로 노래부르는 것일까. CD플레이어에선 빗자루로 눈을 쓸 때처럼 사각거리는 비요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발을 뿌리며 몽환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 고개를 흔들고 CD를 꺼냈다. 태양이 분홍빛으로 내려앉는 지금은 밤 11시다.
 
▲여행정보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아일랜드는 영국 옆,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위에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영국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에서 아이슬란드 케플라빅 공항행 비행기가 출발한다. 코펜하겐·런던에서 약 3시간 걸린다. 저가항공인 아이슬란드 익스프레스(www.icelandexpress.com)가 가장 저렴하다. 일찍 예약할수록 할인 폭이 커진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려면 버스 패스인 링로드 패스를 구입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가이드북엔 ‘아이슬란드 렌터카는 브루나이의 술탄도 빌리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고 나와 있지만, 최저 사양으로 고르면 1일 8만원 정도에 빌릴 수 있다. 레이캬비크 시내만 둘러보려면 걷기만 해도 된다.
 
숙소는 유스호스텔 홈페이지(www.hostel.is)를 통해 예약하거나, 여행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소개받으면 된다. 대학 기숙사나 호스텔급 숙소가 1박 8만~12만원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6~9월에만 운영하는 숙소도 많다. 한끼 식사가 2만~3만원으로 물가가 높다. 체감하기로는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비싼 나라인 것 같다.

 
가이드북은 론리플래닛사의 ‘아이슬란드, 그린란드&패로 제도(Iceland, Greenland & Faroe Islands)’와 디스커버리의 ‘아이슬란드(Iceland)’가 나와 있다. 홈페이지나 여행 블로그를 통해 얻는 정보가 더 알차다. 아이슬란드 여행(www.visit.is), 레이캬비크 여행 홈페이지(www.tourinfo.is), 데스티네이션 아이슬란드(www.destination-iceland.com), 블루라군(www.bluelagoon.com) 등이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