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도심 속 오아시스 '트라팔가'에서 만난 옛 영웅

피나얀 2007. 6. 28. 19:56

 

출처-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6-28 08:38

 


유럽 귀족의 교육여행 '그랜드 투어③ 영국'
 
 
지난 1, 2주에 걸쳐 이탈리아, 프랑스를 다녀왔으니 이제는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볼 차례. 이 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는 유럽 대륙에서 살짝 비켜서 있지만, 세계사적으로는 중심에 서있다. 오늘날 현대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바로 이 섬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팍스 브리타니카(영국에 의한 평화)란 이름으로 100년 이상 세계를 다스리기도 했다. 영광과 경이의 땅, 그 흔적을 찾아가보자.
 

대헌장이 태어난 러니미드 평원
 
인류역사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은 런던 교외의 러니미드 평원에서 태어났다. 영국 왕실의 거성인 윈저성 앞에서 택시를 타고 15분여 가면 나오는 러니미드는 한 무리 소떼만이 어슬렁거리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 관광객도 관리사무소도 없고 그저 작은 이정표 하나가 전부다.
 
이정표를 따라 10여분을 걸어 들어가면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작은 신전 하나가 덩그러니 서있다. 신전 가운데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TO COMMEMORATE MAGNA CARTA, SYMBOL OF FREEDOM UNDER LAW(법에 기초한 자유의 상징, 마그나카르타를 기념하며)’ 1215년 당시 영국왕 존(John·재위 1199~1216)은 신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군주였다.
 
왕이 되는 과정에서는 아버지(헨리2세)와 형(리처드 1세)을 수시로 배신했고 왕이 된 후로는 제멋대로 백성들의 재산을 수탈했기 때문이다. 참다 못한 귀족들과 런던 상인들은 무장을 한 채 존 왕을 이 곳 러니미드까지 끌고 나와 협박했다. ‘대헌장과 반란, 둘 중에 하나를 택해라!’ 위협에 굴복한 왕은 결국 대헌장에 사인했다.
 
아이들에게 약 800여 년 전 여름, 우리가 서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법에 의하지 않고 자유민의 권리와 재산을 빼앗거나 체포·구금할 수 없다’는 법치국가의 대원칙이 처음 등장했음을 들려주자. 대헌장의 정신이 미국 독립선언문과 헌법, 프랑스 인권선언을 거쳐 대한민국 헌법에까지 생생하게 살아있음도 함께.
 
● 틈새정보: 대헌장 기념비 바로 옆에 있는 케네디 대통령 기념비도 놓치지 말 것. 영국 정부는 인류의 자유와 정의에 끼친 케네디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1965년 이 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 적힌 전세계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단호한 취임사가 인상적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요람 국회의사당
 
지하철 웨스트민스터 역에서 내리면 어느 출구로 나가든 화려한 국회의사당과 마주치게 된다. 창공을 향해 우뚝 솟은 시계탑 빅벤과 빅토리아 타워가 좌우에 서있고 근위대처럼 도열한 작은 첨탑들과 수 십 폭 화첩을 펼쳐놓은 듯한 창들이 그 사이를 메우고 있다. 이 아름다운 건물은 1870년 고딕양식으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그 전의 건물 대부분은 1830년대의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그러나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다.
 
이 터가 의회 민주주의의 요람이란 것이 핵심이다. 에드워드 1세의 모범의회(1295년)를 시작으로 권리청원(1628년) 청교도혁명(1640~1660년), 명예혁명(1688년), 권리장전(1689년)이 모두 이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국정을 책임진다’는 사상이 이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자. 내부 투어도 가능하다.
 
● 틈새정보: 국회의사당 외벽에는 단 한 명의 동상만이 서있다. 엄숙한 표정으로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성경을 든 이 사내는 바로 올리버 크롬웰(Cromwell ·1599~1658). 폭군 찰스 1세에 맞서 청교도 혁명을 이뤄냈던 장본인이다. 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왕을 사형시킨 사람의 동상이라니!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록 왕일지라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면 우리는 칼로 맞설 것이다.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광장엔 영국 바다 지킨 넬슨 동상 있어
 
템즈강변의 국회의사당도 꼭 들러보자
 
성웅에게 바쳐진 광장 트라팔가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이라는 대도시 속에 존재하는 가장 멋진 오아시스다. 광장은 1841년 트라팔가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탁 트인 시야와 곳곳에 마련된 분수,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의 멋진 자태가 청량함을 자아낸다. 하이라이트는 광장 중심에 서 있는 칼럼기둥. 그 꼭대기에는 한 사내의 동상이 있는데 그로 인해 광장은 완성된다. 그의 이름은 넬슨(Nelson·1758~1805). 우리로 치면 성웅 이순신에 해당하는 영국의 국민영웅이다.
 
넬슨은 나폴레옹에 맞서 영국의 바다를 지켰다. 1805년 10월 21일 새벽 스페인 남부 트라팔가 해협에서 벌어진 프랑스와의 마지막 해전을 완벽한 승리로 이끈 것도 그다. 비록 넬슨은 그날 총에 맞아 전사했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는 아직까지도 조국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린다. 트라팔가 해전 이후 100년 동안 그 누구도 영국의 제해권에 도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넬슨은 ‘팍스 브리타니카’의 시작을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 틈새정보: 광장전면에 있는 내셔널갤러리 입구에서 칼럼 위의 넬슨 동상을 바라보자. 넬슨의 눈길이 멀리 국회의사당에 닿아있다. 그가 나폴레옹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대상이 바로 의회 민주주의임을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그 밖에…
 
국회의사당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웨스트민스터는 영국의 제1교회. 국민적 영웅들의 무덤이자 왕들이 대관식을 올리는 성당이다. 역대 영국 왕들의 무덤과 대관식 의자가 볼 만하다. 템즈 강변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런던의 명물 런던타워는 반역자를 가두고 처형시키는 곳.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볼린도 여기서 사형됐다. 헨리 8세는 간통을 인정하면 정상참작 해주겠다고 꼬셨지만 그녀는 딸의 미래를 위해 거절했다. 절대권력으로도 꺾지 못한 엄마의 사랑. 오히려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장소다.
 
런던의 동쪽 관문인 그리니치는 천문대로 유명하다. 천문대 한가운데에 세계 시간의 기준인 본초자오선(경도 0˚)이 지나가는 트랙이 놓여있다. 그 위는 항상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대영제국의 초석을 쌓은 엘리자베스 1세의 탄생지란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영박물관은 루브르와 쌍벽을 이루는 문명의 보고(寶庫).
 
이집트 상형문자 해석의 단초를 제공한 로제타석이 유명하다. 도서관 열람실은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한 곳. 열람실 입구 벽면의 명단에서 마르크스를 비롯 이 곳에서 공부한 지성들의 이름을 확인해 보자. 버킹엄궁전에서는 대영제국의 당당했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다. 옥스퍼드 대학 부근의 블렌하임 궁전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 수상이 태어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