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영혼의 땅’ 과테말라서 길을 찾다

피나얀 2007. 7. 12. 20:45

 

출처-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7-07-12 04:33

 


한 시대를 풍미한 혁명가도 이토록 적요(寂寥)한 호수 앞에서 세상사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혁명가의 가슴 속 끓고 있던 마그마는 8만 5000년 전 화산 붕괴로 생겨난 칼데라 호수가 펼쳐놓은 갖가지 파노라마에 얽혀들어 급격히 식어들었을 것이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67)가 혁명의 꿈을 접을까 생각했다는 그 호수,‘멋진 신세계’의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격찬한 아티틀란 호수를 다녀왔다.
 
과테말라시티에서 북동진, 이곳 아티틀란 호수의 관문 격인 파나하첼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굽이굽이 고갯길은 아찔하기까지 했고 뜬금없는 교통 정체로 멈춰서 있다보면 치킨버스(마을버스쯤 되는데 그야말로 ‘닭장차’)들의 매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과테말라시티에서 150㎞ 떨어졌지만 왕복 4차로 확장이 한창이어서 3시간 넘게 걸렸다.
 
모든 것이 아늑한 아티틀란 호수
 
그러나 긴 여정의 피로는 파나하첼 언덕에서 급한 내리막으로 조심조심 내려오면서 아찔한 황홀감으로 바뀌었다. 멀리 볼칸 톨리만과 볼칸 산페드로가 화산 활동으로 방금 뿜어져 나온 것 같은 구름떼들을 얹고 있었고 유려한 산자락을 따라 푸른빛의 호수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 때 볼칸 톨리만 뒤에 숨어 있던 볼칸 아티틀란이 조용히 손을 흔들어댔다.
 
둘레만 150㎞에 이르는 호수 주위 산자락에 12개 인디오 마을이 듬성듬성 박혀 있다. 어느 곳이나 배를 대면 자그마한 마야족 어린이들과 그보다 크지 않은 키에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여인네들이 태피스트리(직물) 등을 잔뜩 둘러메고 다가온다. 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재잘거림에 시간을 맡겨본다.

어느 골목, 꾸리고 강한 내음이 풍겨오면 마리화나를 떠올려 봄직하다. 이곳은 1960년대 이후 전세계 히피족들이 값싼 위안을 얻기 위해 몰려든 도피처. 핍진한 세상 시름을 한 모금의 연기에 날려버리는 이들은 20달러에 담배 한 갑 정도의 마리화나를 얻는다.
 
그러고보니 파나하첼의 레스토랑들에 넋을 잃고 앉아 있던 초로의 히피들 얼굴이 떠오른다. 여기 구름은 하늘에 떠있는 게 아니라 해발 3000m대의 화산 자락에 둘러처져 있다. 구름이 가까운 곳, 어쩌면 마리화나족들의 위안과 혁명가의 투기(投棄) 모두 저 구름과 호수에서 연유하는지 모른다.
 

 
식민과 참사의 고통 아로새기며 빛나는 안티과
 
과테말라 시티에서 동남쪽으로 달리면 금방이라도 용암과 마그마를 토해낼 것 같은 볼칸 데 아구아(물의 화산)의 위용과 마주친다. 그 아랫녘 조용히 깃든 안티구아는 스페인의 300년 식민통치 수도였던 곳.1776년 이 화산 폭발로 도시는 순식간에 잿더미에 묻혔다.
 
볼칸 드 아구아의 건너편을 오르면 십자가 언덕이 나온다. 격자 무늬로 들어선 새 시가지에서 뿜어나오는 파스텔톤 색조가 200년 전의 참사와 교차돼 더욱 빛난다. 사람의 문명은 끈질긴 것. 로마시대 포장도로처럼 돌을 깐 골목을 기웃거리면 여기저기 당시의 흔적들이 카메라를 유혹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는 갖가지 박물관, 카푸치나스 수도원, 라틴댄스 교습소, 아틀리에, 옥(玉)공장, 스페인풍 호텔, 화산 폭발때 무너진 라 메르세드 교회 등등으로 200년의 시공간이 뒤섞인다.
 
이밖에 일본 작가 이시다 유스케가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고 다소 극단적으로 추천한 티칼의 마야유적을 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될 것이다.
 

과테말라 Tips
 
관광 명소마다 값싸고 수준 높은 스페인 어학원들이 즐비하다. 하루 5시간씩 5일 수업에 7일간 재워주고 세끼 먹여주며 250달러(약 23만원) 정도 받는다. 아티틀란 호수나 안티과에 일주일씩 머무르며 스페인어를 익혀 남미 각국으로 흩어지는 배낭족들이 늘고 있다.
 
직항이 없어 대부분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미국 항공사를 이용, 과테말라시티로 들어간다. 도로도 좋지 않고 무장강도를 만날 수도 있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패키지 상품을 권장한다.
 
과테말라시티 투어(3시간)에 22달러, 안티과 투어(4시간)에 30달러, 마야족 재래시장으로 유명한 치치카스테낭고와 아티틀란 호수를 돌아보는 투어(점심 제공,11시간)에 40달러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치안이 안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해가 진 뒤 거리에 나가지 않고 현금이 많은 비즈니스맨처럼 꾸미고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
 
‘과테코리아(www.guatekorea.com)’에서 1986년부터 이민이 시작돼 벌써 1만명을 넘긴 교민, 유학생들로부터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