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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
보통 '한을 푼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위로받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국 시청률 40%대를 유지하며 안방극장 제왕으로 자리잡은 KBS 2TV 수목극 '장밋빛 인생'의 인기 요인을 이런 '한풀이 특성'과 연관지어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맹순이(최진실)의 한풀이가 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고, 그 과정에는 이 땅의 모든 '전업 주부'의 한과 '조강지처'의 한이 깊이 있게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드라마의 한풀이에는 '희생하는 어머니'를 요구하며 정작 자신은 희생하기를 원치 않는 자식들의 죄의식도 함께 덧붙여진다.
대중예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층의 한풀이겸 위로의 수단으로 효과적이며, 또한 그렇기에 잘 팔린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장밋빛 인생'에서 최진실이 혼을 불어넣은 '맹순이'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도 힘들며 최근의 TV 드라마 주류로 등장하는 여성층에서도 밀려난 캐릭터이다.
요즘 TV 드라마 속 아내들은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이러지 말라'고 매달리기 보다는 이혼하고 새 출발하는 캐릭터가 대세를 이룬다.
지식인 남편의 속물성에 질린 아내가 이후 갈등을 거듭하다가 끝내 이혼으로 결말을 맺은 '아줌마' 이후 바람피는 남편을 붙잡는 아내는 '왜 그러고 살어. 멍청하게'라고 빈축을 사기 일쑤이다. 나아가 아예 아내가 또다른 애인을 두는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또 최근에는 직업여성들이 늘어나며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드라마도 전업주부 대신 직장과 가정을 동시에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대개 이들 드라마에선 전문직을 가진 주부들이 세련된 미시족으로 등장해 가정과 직장에서 나름의 역할을 꾸려나가며, 일부 캐릭터는 '내가 일하니까 가사도 똑같이 나누라'며 반란(?)을 도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업주부 시청자들은 'TV 속에 존재하는 잘난 슈퍼우먼'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라며 거리감을 두기 마련이다.
'드라마는 심리적 이웃'일 뿐 그 이웃안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 없다는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빈틈을 '장밋빛 인생'은 적절하게 치고 나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전문직을 갖고 폼나게 일하지 못해도, 혹은 돈이 많아서 남편 외의 다른 애인을 거느리지 못해도,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희생하며 나를 돌보지 못하고 '아줌마'가 된 사실이 잘못인가?
그런데 왜 정작 남편은 '당신같은 여자는 매력 없다'며 새로운 여자에게 시선을 돌리고, 시가와 친가 어느 곳에도 나를 편들어 주는 사람은 없는가?
이 드라마는 이런 전업주부들의 맺힌 한에 대해 적절하게 답해 준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그저 숭고하게 희생했을 뿐이다"고.
'한풀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간 뻔뻔하다 못해 무심한 남편이 이제 초라한 모습으로 맹순이를 바라보며, 맹순이는 눈물 흘리며 화를 내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꾹꾹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낸다.
속 썩이던 친가 식구들도, 야멸차던 시가 식구들도 이제 쩔쩔매며 맹순이의 처지를 슬퍼한다.
맹순이가 무너지기 전까지 그 위에 올라타 '무너져라, 무너져라'고 발을 구르던 사람들이 이제 후회하고 뉘우치며 '떠나지 말라'고 매달린다. 또 그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이제 맹순이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인정하고 위로한다. 역시 조강지처 밖에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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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밋빛 인생'에서 한풀이의 시작은 비극의 시작이다. 정확하게는 이 땅에서 희생을 강요받던 전업주부의 한풀이가 그가 죽음으로서 완성된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이다.
'주위에서 나를 인정받고 위로받기 위해서' 맹순이는 죽을 병에 걸려야 하고, 아프고 뒹굴어야 한다. IMF 시대 어깨가 처진 우리의 아버지들을 다루었던 소설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린 후 그제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설정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한풀이'는 용서와 화해의 긍정적 측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반성과 비판의 기능을 상실하는 맹점도 있다.
결국 '남자들은 조강지처에 돌아오니 참고 살아라'는 오랜 통념이 '정말 그럴까?'라는 현실에 대한 직시 없이 그대로 수용되고,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다.
'자신의 삶을 희생한 채 가족을 위해서만 사는 주부'는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그 내면의 '그러니까 당신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이기심을 영악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살아날 수 있는 '맹순이'는 참고 견디기만 한 우리시대 어머니들에게 달아주는 한 송이 카네이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카네이션이 '희생은 아름답고 그러니까 계속 희생해 달라'는, 스스로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무의식적인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물어 보고 싶다.
맹순이가 정말 받고 싶었던 것은 죽을 때가 되서야 받는 위로나 인정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삶과는 별도로 맹순이 자기 자신의 삶이 아니었을지, 그리고 그런 '맹순이만의 삶'이 방폐된 것은 누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맹순이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맹순이의 죽음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며 모두를 울리는 드라마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아파하는가, 눈물 흘리는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작가의 동물적인 감각과 배우들의 일체화된 연기는 드라마 작품적으로 수작이다.
다만 현실에 대한 일정한 체념과 신파, 한풀이가 접점된 이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의 문제이다.
시청자 스스로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이 드라마는 신파가 될 수도 있고, 혹은 현실의 반성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석현혜 기자 actio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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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이뉴스24 2005-10-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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