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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 노래 못 해도 좋다, 양심은 가져다오

피나얀 2006. 3. 13. 19:35

[기고-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이효리 표절 논란을 보면서

어딜 가나 이효리다. 포털 사이트의 '가장 많이 본 뉴스'만 보고 있어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훤히 보일 정도다.

그녀가 2집 활동을 시작하면서 체중이 늘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부터 누가 이효리에 대해서 어떤 말을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뉴스가 되어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벗어날 수가 없다. 편의점에 담배를 살 때도 계산대에 <다크 엔젤(Dark Angel)> CD가 진열되어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대중문화의 주도권을 드라마와 영화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요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연예인 중 핫이슈 메이커는 이효리가 유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매스컴에서 그녀의 컴백소식이 앞다퉈 다뤄질 때부터였다. 의상 컨셉, 뮤직 비디오, 안무의 내용 등이 줄기차게 기사로 쏟아졌다. 하지만 음악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보통 주류 댄스 가수들의 컴백 소식에 한두 줄 쯤 들어가기 마련인, 예컨대 "이번 앨범은 해외에서 최신 유행하고 있는 크렁크 앤 비를 기반으로, 거기에 하우스 비트를 섞어 어번 사운드의 느낌을 가미한 그녀만의 음악" 같은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문장 하나 없었던 것이다.

표절이 아니라고? 모른다면 직무유기, 모른 척 하면 미필적 고의

물론, 일반적으로 이효리에게 바라는 게 뮤지션으로서의 자질은 아니다.

MC로서 보여주는 소탈한 성격과는 상반되는 무대에서의 카리스마, 당대의 남자 배우들을 압도하는 섹시한 도발, 최고의 안무가들과 스타일리스트들이 붙어 만들어내는 춤과 의상, 딱 대중들이 이효리에게 기대하는 매력이다. 그러니 '10 Minutes'를 들으며 숭고한 예술이 전해주는 감동을 받고 'Any motion'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사람도 없다.

하지만 도가 지나쳤다. 적어도 그녀가 가수로 컴백한 이상 형식적이든 뭐든 음악 이야기가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다크 엔젤>이 그저 활동을 위해 여기저기 뿌리는 명함에 불과하단 말인가.

하긴 이게 이효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3류 인터넷 연예통신사들이 포털 사이트를 뒤덮어버렸을 때부터였다.

가수를 다뤄도 가십, 배우를 다뤄도 가십, 심지어 아나운서를 다뤄도 가십 투성이인 그런 뉴스 비슷한 것들이 뉴스라는 이름을 달고 쏟아졌다. 가십보다 음악으로 승부하려는 가수들은 그나마 설 자리가 없어졌고 따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유효기간 하루도 안 되는 가십거리를 던져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새 앨범이 발매됐다는 사실조차 알릴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본말이 전도됐다. 이효리의 사례에서 보듯 명색이 '가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쓰지 않는 상황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러던 차였다. 돌연 그녀의 음악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표절 논란이다. 귀를 갖고 있다면 'Get Ya'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Do Something'를 노골적으로 모방했음을 알 수 밖에 없다.

이효리는 컴백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해 "나는 대중가수다, 어떤 음악이 대세라면 표절 시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그 음악을 할 것이다"라 말했다. 맞는 말이다. 실시간으로 빌보드 차트 1위곡을 들을 수 있는 세상에 트렌드를 좇는 건 전혀 비판할 일이 아니다.

다만 사운드나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만든(쉽게 말해 '영향을 받은') 노래와 노래 그 자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쉽게 말해 '베낀') 노래는 다르다.

'Get Ya'가 문제인건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타일의 댄스 팝이 아니라 'Do Something'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데 있다. 이건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표절이다. 다만 '원곡과 4소절 이상 똑같아야 한다'라는 규정만 교묘하게 피해갔을 뿐이다. 양심의 문제다.

양심없는 가수, 양심없는 기획사, 양심없는 방송사

 
ⓒ2006 DSP엔터테인먼트

'Get Ya'를 이효리가 만든 건 아니다. 1차적으로 작곡자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어쨌든 자신이 부를 노래다. 그녀가 'Do Something'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할 이효리로서는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댄스 팝의 대명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이기 때문이다. 만약 알았으면서도 묵인했다면 그건 미필적 고의가 된다. 어쨌든 책임을 피해가지 못한다.

'Get Ya'에서 드러나는 비양심은 단지 노래의 표절 논란뿐만 아니다. 1집 활동 당시 이효리의 스타일은 아무로 나미에랑 너무나 흡사했다. 이번에는 나카시마 미카다. 둘 다 대표적인 일본 여가수들이다.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없던 몇 년 전이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일본 연예인들의 최신 사진들을 검색할 수 있는 세상이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감시의 눈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여가수(라 불리기도 하는) 이효리는 과감히 그들의 스타일을 모방했다.

또 있다. 그녀의 뒤에서 함께 춤추는 백댄서들의 의상과 메이크업도 어디서 본 듯 하다. 역시 미국의 인기 가수 그웬 스테파니가 부른 'Harajuku Girl'의 뮤직 비디오를 보라. 그 백댄서들을 그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단순히 '트렌드를 좇는다'라는 이유로 용서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걸 기획하고 지휘하는 이효리의 소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노래가 표절 논란이 일거나 말거나 앞 다퉈 'Get Ya'를 틀어대기 바쁘고,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이효리를 섭외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방송국도 양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양심없는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된 원흉은 하나다. 독창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기를 얻고 돈만 벌면 뭐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이다. 독창적인 무엇을 시도했다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이미 검증된 음악 스타일과 안무로 안정적 성공을 지향하는 건 이제 주류 대중음악계의 일반적 풍토가 돼버렸다.

이효리는 고작 브리트니 스피어스·나카시마 미카의 아류인가

이효리를 비롯한 일련의 '비디오형 가수'들은 연예인일 뿐 뮤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하지만 비디오형 가수의 대표 주자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있다. 그녀가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던 힘은 마돈나를 그대로 따라했기 때문이 아니다. 당대의 프로듀서와 작곡가들이 모여 당대의 가장 세련된 사운드를 만들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만의 목소리로 노래했기 때문이다. '브리트니 룩'이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독창적인 룩을 선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음악이 예술적 가치를 지향할 필요는 없다. 잠깐 유행하고 사라지는 상업음악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독창성에 대한 고민마저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독창성없이 그야말로 트렌드만 좇는 걸 아류라고 한다.

어디에나 아류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뉴스 메이커인 이효리가 고작 브리트니 스피어스, 나카시마 미카, 그웬 스테파니의 아류라 생각하면 그저 쓴 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건 분명히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다.

하긴, 가수가 라이브를 한다는 게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이러다가는 국회의원이 정치를 하고 축구 선수가 축구를 한다는 사실도 뉴스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아, 국회의원이 정치를 하면 뉴스가 되긴 하지만 아무튼.

아이돌에게는 아이돌로서의 가치가, 뮤지션은 뮤지션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뮤지션에게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번지점프를 시키는 게 부당하듯, 아이돌에게 모든 노래를 라이브로 소화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할 선은 있다. 그것은 창작을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양심이고 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연예인이 갖춰야할 기본이다.

양심도 기본도 없는 가수, 따라서 가수라는 말을 쓰기 부끄러운 연예인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부디 그들이 최소한의 양심과 기본적인 자질을 갖고 활동하기 바란다. 큰 욕심이 아니다. 비록 황폐화된 가요계에서는 이런 욕심조차 너무 커보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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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3-13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