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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차인표가 보내온 감자

피나얀 2006. 3. 25. 20:37

 


지난달 말,우리집에 투박하게 생긴 상자 하나가 배달됐다. 보낸 사람은 차인표,신애라였다.

'설도 한참 지나고 생일도 아닌데…'하며 상자를 열었다.

감자였다. 상자 안에 차인표가 쓴 글이 있었다. 글은 친필을 복사한 것이었다.

친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라 복사된 편지를 보며 난 속으로 "짜아식,이거 대체 몇 장을 복사했을까? 또 예쁜 짓하는구먼. 큰돈 안 들이고 묘하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동시에 이미지 관리도 제대로 하네"하며 글을 읽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자신의 어머니가 소일거리로 경기도에서 농사를 짓는데,강원도에 사는 한 농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셨다고 한다. 그 강원도 농부는 무공해로 감자농사를 지었는데,팔리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자를 조금 사서 자신의 부부가 아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내용이었다. 감자상자 안에는 강원도에 사는 그 농부의 농장주소가 적혀 있었다.감자는 정말 맛있었다.

난 감사를 표할 겸 차인표에게 전화를 했다. 좋은 선물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상자 안에 있는 주소로 연락하면 계속 주문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인표의 대답은 '네…'하면서도 걱정이 묻어 있었다. 감자를 주문할 때 차인표라고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형도 밝히지 말고 주문하라는 거였다.그것은 얼굴도 모르는 농부에 대한,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배려였다.

 

강원도 산골에 갑자기 감자를 주문하는 이가 연예인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농부가 당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지 매년 이렇게 주문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후배지만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를 보고 '역시 동생 하나는 제대로 뒀구나'하는 생각에 흐뭇했다.

지금까지 난 차인표와 영화 '목포는 항구다'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그리고 지금 촬영하고 있는 '한반도'까지,매년 한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 기분이다. 어찌보면 조재현과 차인표는 정말 안 어울리는 커플이다. 그도 그럴 것이 키 크고 잘생긴 바른생활표 남자와,평범하면서도 극악한 캐릭터의 연기와 자유로운 생활방식 등으로 표현되는 나는,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물과 기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내가 친구처럼,형제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은 인기도 아니고 종교가 같아서도 아니고 취미가 같아서도 아니다.그 사람의 좋은 점이 좋아서이다.

어느날 차인표와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난 솔직히 차인표의 장점과 단점을 얘기해 주며 잔인할 정도로 직언을 해 주었다. 직언의 내용은 그 후 차인표가 공개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거론해도 괜찮을 듯싶다.'A라는 배우와,B라는 배우는 연기를 하면 50점 먹고 들어가지만,넌 50점 손해 보고 들어가는 배우다. 그러기에 넌 그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난 지금도 내 얘기를 듣는 차인표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화가 나고,자존심도 상할 수 있는 충고를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얘기를 다 듣고는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준 사람은 형밖에 없었다'며 되레 고마워했다.

배우의 길은 수많은 길이 있다. 훌륭한 배우의 길,올바른 배우의 길,연기만 하는 배우의 길,공인의식을 가진 배우의 길. 여러가지 길 하나하나에도 그 가지는 엄청 많다.

난 여러 길 가운데 인간적 배우의 길이 있다면 그 길로 가고 싶다. 배우로서 연기는 필수고,그 이전에 인간적인,사람의 냄새가 나고 나서,그 다음에 연기가 있어야 된다고 본다.

차인표가 가는 배우의 길은 나와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냄새가 나는 배우의 길에 대해서는 공감하리라고 확신한다.조금 다른 얘기지만,내가 가장 경멸하는 연예인은 돈만을 좇아가는,부의 상징과 함께하려는 도구로 연기를 선택하는 연예인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이 제벌 2세와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질 않는다.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인간적인,사람냄새 나는 만남을 이뤘는가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은 동정의 가치가 없고,같은 직업인으로서 수치심마저 들 수밖에 없다.

감자로 시작한 이야기가 조금은 빗나갔지만,강원도 산골 농부의 고통을 알고,위보다는 아래를 내려다 보게 한 후배의 바른 삶이 나는 물론이고 다른 연예인들,그리고 이 글을 읽은 모든 이에게 자그마한 감자처럼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배우/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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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부산일보 2006-03-25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