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요리】

한강을 건너면 어묵값이 뛴다

피나얀 2006. 3. 18. 22:28

 

 

▲ 길거리음식의 스테디셀러 떡볶이와 어묵.
ⓒ2006 홍성식

"1970년대 섬진강을 기준으로 서쪽(호남)으론 통닭집이, 동쪽(영남)으론 돼지갈비집이 많았다. 80년대 들어서서는 전라도 쪽에도 돼지갈비집이 흔해졌는데, 그 시기 경상도엔 횟집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는 당시 두 지역 외식문화의 경향을 알려주는 동시에 영호남간 경제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희곡론을 강의하던 교수에게 들은 위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30년 이상 경상도 출신 군인들이 정권을 독점했던 탓에 야기된 '영호남의 경제적 불평등'은 서민들의 음식문화마저 왜곡시켰다.

알다시피 통닭보단 돼지갈비가 비싸고, 생선회는 그보다 더 비싸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지역의 경제적 위치를 알게 해주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아파트 가격에서부터 사교육비, 문화향유 비용, 여기에 자장면값까지 차이를 보이는 서울 강남과 강북.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먹는 떡볶이와 어묵, 순대 등의 길거리음식에도 두 지역간 차이가 존재할까?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일까?

이 궁금증과 함께 길거리음식의 추세를 알아보기 위해 이틀에 걸쳐 먹을거리 노점이 밀집한 종로와 신촌, 강남역 인근을 돌아봤다.

[강북] 종로 1가에선 '김떡순', 종묘공원에선 돼지껍데기 안주... 모두 3천원

 

▲ 종로3가에 밀집한 극장들 앞엔 오징와 쥐포 등을 파는 노점이 많다.
ⓒ2006 홍성식
서울극장·단성사·피카디리 등 극장과 파고다·종묘공원 등이 위치한 종로3가 일대는 강북 '길거리음식의 메카'다.

서울극장 앞에만도 오징어와 쥐포, 고구마튀김과 군밤 등 영화보며 먹기 좋은 간식을 파는 노점이 10여 개에 이른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번데기와 뻥튀기를 파는 곳도 있어 옛날 추억을 부른다. 하지만 극장이 외부에서 사온 음식물의 장내 반입을 허락치 않아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극장 앞이 구워먹는 건어물 위주의 메뉴라면 길 건너 왼쪽, 즉 종로1가 방향으로 늘어선 노점에선 세트메뉴 길거리음식을 맛볼 수 있다. '김떡순' '전오만' 등의 글씨를 써붙인 노점에선 김밥·떡볶이·순대(김떡순) 혹은 김치전·오뎅(어묵)·만두(전오만) 등을 묶어 3천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길거리음식의 스테디셀러인 떡볶이·오뎅·순대 외에 독특한 메뉴도 적지 않은데, 뾰족한 이쑤시개로 파먹는 삶은 고둥과 버무린 고기와 야채를 번철에 구운 떡갈비꼬치, 와인에 숙성시켰다는 불닭꼬치 등도 입이 심심한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중 유독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속칭 '문어풀빵'으로 불리는 다코야끼를 파는 노점. 문어 등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간 묽은 밀가루반죽을 파와 양파, 양배추 등의 야채와 함께 둥글고 오목한 철판 위에서 구워내 가쓰오부시(가다랭이 가루)를 올려먹는 다코야끼는 "길거리음식 중엔 비교적 신메뉴"라는 게 30대 중반 주인의 설명이다. 가격은 8개 3천원. 이 정도 양이면 남자도 배가 든든해진다.

60대 이상 노인들의 왕래가 많은 종묘공원 주위 노점들. 길 하나 건너지만 그곳의 메뉴는 젊은 세대가 몰리는 극장가와는 또 다르다.

저물녘이면 펼쳐지는 공원 앞 포장마차에선 돼지껍데기와 닭모래집 등을 고추장 양념에 볶아서 판다. 1접시에 3천원인 돼지껍데기볶음을 안주로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이 소주잔을 돌리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잖은 노인들의 스트레스 해소공간이 된 그 곳에선 따끈한 국수와 우동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도 있다.

 

▲ 철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다코야끼.
ⓒ2006 홍성식
신촌에서는 생선초밥도 길에서 먹는다... 튀긴 아이스크림도 등장

대학밀집 지역인 지하철 신촌역 인근에도 다양한 먹을거리를 선보이는 노점이 많다. 특히 이화여대 일대는 독특한 아이템의 길거리음식이 많기로 소문난 곳.

그곳에선 고급음식으로 인식되던 생선초밥은 물론, 생과일 사탕과 튀겨먹는 아이스크림 등 신기한 음식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생선초밥 노점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엔 영등포역과 광화문 등지에도 비슷한 형태의 노점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신촌 현대백화점 주위에서 발견한 포장마차에서 맛본 연두색 호떡도 인상적이었다. 녹차분말을 반죽에 섞었다는 이 호떡의 가격은 하나에 500원. 주인 아주머니가 "왜, 요새 웰빙 웰빙하잖아, 녹차가 몸에 좋다고 해서 한번 넣어봤더니 사람들이 좋아하네"라며 웃는다.

강남과 강북 공히 유동인구가 많고 위치가 좋은 지점에 차린 노점은 매출액도 만만찮다. 300~400만원 이상의 수입의 올리는 노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아이템이 특이하거나 '맛있다'는 입소문이 난 곳은 한달 1천만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는 게 노점상들의 귀띔이다.

[강남] 한강을 건너면 어묵값이 뛴다... 다른 메뉴는 비슷비슷

 

▲ 강남역 부근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는 맛바.
ⓒ2006 홍성식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 신촌에서 1개에 5백원짜리 어묵을 먹고 한남대교를 건너 강남역에 도착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중 10대와 20대의 비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포장마차에 들어가 신촌에서 먹은 것과 똑같은 어묵 2개를 먹었다. 하지만 가격은 개당 2백원이 비쌌다. 강을 건너니 어묵 값이 2백원 뛴 것이다.

어묵 외에 다른 메뉴도 강북보다 비싼지 확인하기 위해 몇 군데 노점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떡볶이와 순대, 튀김 등의 가격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코야끼를 파는 포장마차가 강남역 인근에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이것의 가격과 맛도 전날 맛본 종로의 그것과 유사했다.

그 곳에서 발견한 독특한 메뉴는 튀긴 어묵의 겉에 깻잎, 베이컨, 치즈, 햄 등을 두른 '맛바'. 보통의 핫바보단 감칠맛이 더했다. 가격은 1개 1천원. 음식의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묻는 기자에게 주인이 "이거 해보시려면 저기로 연락하세요"라며 전화번호가 적힌 천막을 가리킨다. 그런 걸 보면 아마 맛바는 체인점 형태의 노점인 모양이다.

강남역 인근의 노점과 강북·종로3가 일대 노점이 보인 가장 큰 차이는 세트메뉴의 유무. 두 지역 모두 4~5종류의 길거리음식이 한 노점에서 함께 판매되고 있었지만, 강남 노점에선 '김떡순' 등의 세트메뉴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단일품목의 가격차이는 없었다.

이틀간 거리에서의 '맛있는 취재'를 마치고 얻은 결론은 강남과 강북의 길거리음식엔 아직 양극화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것. 서민들의 먹을거리에선 실현되고있는 이 소박한 평등이 사회의 다른 분야에까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면 생뚱맞고 과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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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3-18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