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패션】

통통한 게 죄야? 큰옷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피나얀 2006. 3. 24. 00:29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때, 스트레스 탓에 살이 갑자기 쪄서 마치 이탈리아의 어느 오페라 가수 같은 모습이 돼 고생했던 적이 있다. 체중이 늘어남과 동시에 나는 어둡고 습기 찬 곳을 찾아 꿈틀대며 기어들어가는 지렁이처럼 내 모습을 커다란 옷 속으로 숨기기 시작했다.

고도비만까지는 아니었어도 통통해진 모습이 털이 뜯긴 닭처럼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옷 입기를 좋아하면서도 감자 자루 같은 커다란 옷만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자이너 지춘희가 예의 그 우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이 더 좋지 않을까? 커다란 옷을 입는다고 날씬해 보이지는 않아. 뚱뚱해질수록 더 예쁘게 입어야 사람도 산뜻해 보이지.” 그의 말은 번갯불처럼 내 머리에 꽂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옷 입는 스타일에 따라 나 자신도 소극적으로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살이 쪘다 해도 자신을 가꾸려고 하는 사람은 당당하고 스타일이 있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영국 런던에서 한 광고와 매장 진열대를 보고 나서다. ‘액세서라이즈(Accessorize)’라는 영국의 한 액세서리 브랜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을 싼 값에 파는 곳이다. 귀고리, 목걸이, 가방, 모자 등 품목도 가지가지다. 최근 유행하는 디자인부터 매우 여성스러운 분위기까지 여러 가지 디자인을 선보인다.

 

보통 브랜드의 광고 모델들은 가뭄 탓에 마른 나귀처럼 뼈가 앙상할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 액세서라이즈 봄 캠페인의 광고 모델은 켈리 오스본(Kelly Osbourne, 오지 오스본의 딸이자 악동 가수로 유명하다)이다.

 

통통한 그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를 복고풍으로 올려 온갖 액세서리로 치장했다. 신선했다. 그가 아무리 욕을 많이 하고 악동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많은 여성들은 그의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끼며 자신이 저렇게 화려하게 해도 좋다는 위안을 얻는다.

 

내 시선을 끈 다른 한 곳은 미스 셀프리지(Miss Selfridge)이다. 톱숍(Top Shop)과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중저가 브랜드인 이곳은 유행의 흐름을 파악해서 영국의 대중들에게 맞게 재해석해 판다. 그런데 이곳 매장 진열이 재미있다. 보통 슈퍼 모델을 연상시키는 몸매 좋은 마네킹을 내세운 다른 매장과 달리 이곳은 같은 옷을 체형이 다른 마네킹 두개에 입혀 진열해 놓는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스키니 팬츠(다리에 달라붙는 80년대 스타일의 바지로 국내에도 서서히 열풍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를 멋지게 연출해 날씬한 마네킹과 통통한 마네킹 두개에 입혀 놨다.

 

다양한 체형을 지닌 여성들은 주저하지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열해 놓은 그대로 사서 당당하게 매장을 나선다. 통통한 사람들도 두려움 없이 유행하는 옷을 입어보고 사니까 매출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고도의 비만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날씬한 여성만이 아름답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꾸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다.

 

 

 

 

 

서은영/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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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2006-03-23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