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독일③ 뷔르츠부르크, 신이 너희를 행복케 하리라

피나얀 2006. 5. 5. 21:25

 


뷔르츠부르크의 밤은 길었다. 중세시대부터 주교의 직할지였던 이곳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후세의 자손들이 '암흑의 시기'라고 별명을 붙인 유럽의 중세는 종교의 권세 아래에서 위대하신 절대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때였다.

 

눈을 뜨고 세상을 주시할 수 있는, 신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고지(高地)에 사는 영주와 성직자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자유는 없었다. 욕구는 있었으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깜깜했고 우울했다.

 

뷔르츠부르크 최초의 주교인 킬리안(Killian)은 7세기 후반 원주민 켈트 족 어부들이 거주하던 마리엔베르크(Marienberg)에 성당을 세웠다. 13세기에는 성전의 사위를 방벽으로 둘러 요새화했다.

 

이 지역에 가톨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뷔르츠부르크 주교에게 부여된 영지는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평민들은 악의악식했다. 높은 세율과 고된 노동은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돼 독일에 불어 닥친 종교개혁의 광풍마저 뷔르츠부르크를 비켜갔다. 봉기한 농민들이 마인 강(Main)을 건너 마리엔베르크로 올라갔지만 기다리는 것은 참혹한 죽음뿐이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종교의 세력은 주교가 거처를 옮기면서 서서히 허물어졌다.

중세시대를 한참 지난 18세기 예술을 사랑한 주교 쇤보른(Schoenborn)은 당대의 천재 건축가였던 노이만(Neumann)에게 새로운 궁전의 신축을 요청했다. 주교가 낮은 땅에 임할 즈음 이미 시민들은 근대에 익숙해져 있었다.

 

젊음과 보수의 어울림

 

인구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대학생은 젊은 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엑스선을 발견한 뢴트겐을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한 이 대학의 명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90%에 이르는 절대 다수가 가톨릭을 믿고, 청교도 교회는 단 2개뿐인 보수적인 색채 역시 바뀌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행객이 뷔르츠부르크에서 눈도장을 찍어야 할 곳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주교가 살았던 최초의 성인 마리엔베르크, 훗날의 궁전 레지덴츠, 알테 마인 다리(Alte Mainbruecke)에서 시청을 관통해 역까지 이어지는 보행자 거리다.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자 가장 멀리 떨어진 마리엔베르크부터 들르기로 결정했다.

 


과거에는 무기고였던 프랑켄 지방박물관을 둘러보고 입구로 걸어갔다. 여느 요새처럼 입구는 터널이었으나 넓고 짧았다. 민중의 침입을 제외하면 스웨덴 군에게 한 번의 공격을 받았을 따름인 마리엔베르크는 2차 대전 중 미군의 기지로 쓰였다.

 

침략자에 대응하고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좁은 창문은 완전히 막혔고, 산책로는 위압적으로 좌시하고 있는 내성(內城)과 완전히 차단됐다. 마리엔베르크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여름에는 칼싸움을 재연하고 음악회가 벌어지거나 결혼식이 열린다고 했다.

 

성에서는 붉은색 삼각형 지붕들이 옹기종기 도열한 뷔르츠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교회를 제외하면 평평했다. 그마저도 시계가 있는 탑만 삐죽 올라가 있어서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로맨틱 가도의 출발점'이란 평판답게 낭만적인 풍광이 이곳저곳에서 배어나왔다. 갑자기 15층도 모자라 40층에 도전하고 있는 우리의 아파트들이 부끄러웠다. '건축'의 핵심은 사라지고, '가격'이란 껍데기만 남은 형국인 탓이다.

 

레지덴츠는 마리엔베르크에 비하면 작지만 세련된 느낌의 건물이다. 'ㄷ'자 모양의 내부에는 방 300여 개가 있고, 이중 20개는 온전히 주교를 위한 것이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의 아치형 천장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재료로 그린 거대한 프레스코가 있다.

 

화가 티에폴로(Tiepolo)는 대륙을 각기 다른 형상으로 신격화해 그림을 그렸고,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의 주거지’라고 칭송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레스코가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중에 적국인 미군이 지붕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산업시설이 없어서 대기가 유난히 깨끗한 뷔르츠부르크는 시티 투어에 ‘싱싱한 폐(Green Lung)’라는 생경한 호칭을 달아놓았다. 그만큼 맑은 자연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마르크트 광장(Markt Platz)에서 따뜻한 와인을 홀짝이며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차갑고 순수한 공기는 가슴을 씻고 머리를 세척한 뒤 여유로움과 안온함을 선사했다.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출처-[연합뉴스 2006-05-04 1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