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2006년 5월 30일(화) 10:58 [연합뉴스]
|
도시로 돌아오자마자 그곳이 그리워졌다. 정적과 평화로움이 깃든 그곳에서의 하루가 애달프게 가슴에 사무쳤다. 단 하룻밤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가슴에는 커다란 그리움이 자리 잡았다. 한적한 산사에서 마음을 비우자 그 텅 빈 공간은 미소로 채워졌다.
절로 가는 길에서는 상쾌한 풀냄새가 난다. 나무는 하늘을 가릴 듯 우거져 청량감을 주고, 새들은 청아한 소리로 싱그러움을 더한다. 가끔 지나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들의 소리는 마음마저 가볍게 한다.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산사로 향하는 길은 더 없이 가벼운 발걸음을 딛게 한다.
강화도의 연등국제선원(Lotus Lantern International Meditation Center)을 찾아가는 날은 뜻하지 않은 초여름 더위가 후끈하게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태양에 달궈진 아스팔트의 큰 길을 벗어나자 하늘을 가릴 듯한 초록의 터널이 나타나고, 선원까지 이어진 운치 있는 오솔길은 한결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개들이 짖어대는 농가 두어 채를 지나자, 오른쪽으로 정갈하게 손질된 선원의 뜰 뒤로 작고 소박한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서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회색빛 옷차림의 갈색, 빨간 색 머리칼의 외국인과 한국인 부부 한 쌍이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보살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연등국제선원은 한국 선(禪)을 수행할 외국인들을 위한 선원으로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고 있다. 이날은 캐나다인 2명과 미국인 2명, 아일랜드인 등 외국인 5명과 한국인 불교신자 부부 한 쌍이 참여했다. 외국인이 더 많다보니 일정은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합장과 절하는 시범을 지켜보고 있는 외국인들의 눈빛이 진지해 보인다. 처음 찾은 절에서의 행동양식이 신기한 모양이다. 법당에서의 예절과 예불방법, 생활수칙, 일정 등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니 4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날 인사동에서 템플스테이에 관한 홍보전단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어요. 템플스테이에 대해 조사한 후 참가하기로 결심했죠.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일 것 같았어요." 한 외국인 참가 여성의 참가 동기이다.
1시간 동안 산사 주변을 산책하며 휴식을 취한 참가자들이 고경선방에 모였다. 불교 교리와 참선(Meditation) 시간이다. 부처의 깨달음과 사성제(四聖諦)에 관한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분위기가 엄숙하다. 가끔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스쳐 지나기도 한다.
"참선을 위해서는 일단 바른 자세로 앉으세요. 눈을 감으면 졸리니까 눈을 반쯤 뜬 상태에서 앞쪽의 바닥을 응시하세요. 그리고 숫자를 세는 거예요. 숫자 세는 것을 잊거나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처음부터 다시 세도록 하세요. 저녁 공양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참선은 석공 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녁 메뉴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콩을 얹은 쌀밥에 두부김치와 오이소박이, 배추김치, 메밀묵, 된장국 등이 나왔다. 고기 한점 없는 찬이지만 인정 있어 보이는 보살 아주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어선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참가자들은 스님들처럼 발우에 음식을 담지 않고 접시에 각자 먹을 만큼만 담았다. 음식 맛이 정갈할 뿐만 아니라 감친다. 외국인들도 매운 김치를 척척 잘 먹는다. 모두 행복한 얼굴로 접시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경내에 울려 퍼지고 모두 대웅전에 모였다. 부처 앞에 선 스님들을 따라 절을 올린다. 예불 순서와 독경 등 모든 것이 낯설어 얼굴에는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지만 법요집을 앞에 펼쳐두고 '오분향예불문'과 '반야바라밀타심경' 등을 모두 열심히 따라한다.
예불이 끝나고 고경선방에서 참선이 이어졌다. 푹신한 방석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벽을 마주한 채 앉았다. 선원장 스님이 '딱' 죽비를 내리치자 순간 선방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고 진한 침묵은 끝 모르게 이어졌다.
마룻바닥의 한 점을 응시하고 숫자를 세어 나간다. 복잡한 도시의 삶이 침범해 들어온다. 처음부터 다시 숫자를 센다.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이 지나쳐간다. 또다시 실패다. 정적 속에서는 침 넘기는 소리, 몸을 움직이는 소리마저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자꾸만 졸음이 침범하고 곧게 뻗었던 등이 구부러지고 가부좌 튼 다리가 죄어온다.
죽비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20분 남짓 지난 시간이 겁(劫)처럼 길게 느껴졌다. 번뇌로 가득한 중생의 좌선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는 선방을 나서 경내를 걸어 다니며 참선을 행한다. 아무런 말없이 스님의 뒤를 따라 걸으며 수행을 하는 것이다. 안개 자욱한 경내는 서서히 어둠이 사위를 잠식하고 있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집중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어요. 비워내고자 할수록 다른 생각들이 생겨나 어지럽히고 결국 나를 완전히 비우는 일은 실패했죠. 책상다리로 앉아있는 것이 가장 고역이더군요." 선원장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에 외국인 여성은 그래도 마음의 평온을 경험한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즐거워했다.
저녁 9시. 선원은 달빛 하나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 빠졌다. 바깥 세상은 휘황한 네온사인 아래 빛을 발하고 있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눈망울 초롱초롱할 시간이지만 명상을 통한 마음의 평정 때문인지 부지불식간에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갑작스레 귀청을 울리는 종소리에 잠을 깼다. 시각은 아직도 사위가 캄캄한 새벽 3시 30분. 졸린 눈을 비비며 4시 예불에 참가하고, 새벽 참선을 시작한다. 전날 좌선을 한차례 경험했던 탓인지 졸음은 달아났고 한결 평온한 마음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전날보다 긴 시간이었지만 다리 아픈 것만 빼면 훨씬 좋은 명상의 시간이었다.
1시간 정도의 휴식 후 누룽지로 아침식사를 하고 산책길에 나섰다. 선원 주변의 산책로는 아침 햇살을 받아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다. 아침잠을 깬 새들도 여기저기에서 지저귀며 한결 기분을 좋게 해준다. 템플스테이와 명상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걷는 1시간은 명상으로 비워진 가슴을 즐거움으로 채워주고 있었다.
풀 뽑기 울력을 끝내고 고경선방에서 다도가 진행된다. 다관과 숙우, 차호, 찻잔, 차시, 개반 등 다구의 명칭을 익히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가 되어 한국의 차 맛을 느낀다.
"절에 무언가를 배우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그 안에 미소만 담아가시면 됩니다." 백안의 외국인들의 얼굴에도, 부부의 얼굴에도 부처의 미소와도 같은 온화한 웃음이 퍼지고 있었다.
▶찾아가는 길
김포로 가는 48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초지대교 푯말에서 좌회전 신호 받은 후 356번 지방도로를 타고 전등사, 대곳 방향으로 간다. 356번 도로 끝지점 4거리에서 맨 우측 차선으로 직진 하면 84번 지방도로 서울ㆍ강화 방면으로 향하게 된다. 불은면 도로 표지판에서 600m 전방의 '국제선원' 이정표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강화 연등국제선원 연락처 : 032-937-7033, www.lotuslantern.net
▶템플스테이 참가 요금 : 1박 2일 5만 원, 2박 3일 8만 원
Tip : Temple Stay Guide
템플스테이는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사찰에 머물며 사찰 고유의 문화와 수행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신적 휴식을 통해 '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남녀노소, 종교도 구별하지 않는다.
산사 체험은 예불, 참선, 다도, 발우공양, 산책 등을 기본 프로그램으로 하고 사찰에 따라 탁본, 선체조, 연등 만들기, 사물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새벽예불을 위해 새벽 4시 전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 고역이지만 몸의 휴식과 마음의 고요함을 찾으려는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대부분 주말에만 운영하고 있지만 일부 사찰에서는 평일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참가 및 문의
템플스테이는 강화 연등국제선원, 경주 골굴사, 공주 마곡사, 부산 홍법사, 해남 미황사 등 전국 43개 사찰에서 운영하고 있다. 기본 프로그램이 있지만 최근에는 이혼자를 위한 수련회(마곡사), 장애인을 위한 수련회(월정사) 등 특별한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사찰에 따라 어린이가 참가할 수 없는 곳도 있으므로 잘 확인해보고 참가하도록 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사무국(02-732-9927)에 문의하거나 홈페이지(www.templestay.com)를 통해 사찰 선택은 물론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기본 일정 운영프로그램(1박 2일)
첫째날
13시 입재식(접수 및 방 배정, 사찰 안내)
16시 기본예절(사찰예절 및 주의사항 안내)
17시 저녁공양/휴식
18시 저녁예불
19시 자유시간/사찰프로그램(참선, 다도, 전통 등 만들기 등)
21시 취침시간
둘째날
04시 기상/새벽예불
05시 참선
06시 아침공양
07시 자유시간(산책)
10시 사찰프로그램(다도, 사물놀이 등)
12시 발우공양
13시 회향식
![](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피나얀™♡【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보다 더 바다같은 그곳,부담없이 떠나자 (0) | 2006.05.31 |
---|---|
무주 덕유산 철쭉여행...중봉 아래 덕유평전 최고 절경 자랑 (0) | 2006.05.31 |
해외 트레킹, 걸어서 저 하늘까지 (0) | 2006.05.30 |
눈부시도록 푸른 녹차밭으로 “여행을 떠나요” (0) | 2006.05.30 |
산과 계곡찾아 신나는 트래킹… (0) | 2006.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