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6-0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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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야경을 선보이며 새롭게 태어나는 시드니 |
시드니(Sydney)에 도착한 날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영업이 끝나 문을 닫은 상점들이 왜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있는지, 컴퓨터와 서류만 남은 빌딩의 사무실이 왜 새벽녘까지 전등을 켜고 있는지를…. 어느 순간 갑자기 사람들이 증발해버려 도시가 텅 빈 듯했다.
"야경 때문이어요. 도심의 숍과 빌딩은 대부분 밤에도 불을 켜 놓아요. 관광객을 위한 배려죠. 물론 전기료는 주 정부에서 내주는 조건이고요. 석탄자원이 많아 전기는 충분하니까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늦은 밤 시드니의 대형쇼핑센터인 '퀸 빅토리아 빌딩(QVB)'을 거닐며 대낮처럼 환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지(Aussie)들은 태생적으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실제로 그럴 만한 게 18세기 호주 개척자들은 수만 km 떨어진 영국에 가족과 친구를 두고 온 이들이었다. 유형지에 끌려와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르는 고향, 걷고 또 걸어도 끝없는 해안과 사막뿐인 땅에서 사람만큼 그리운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를 향한 희망 공존
여행은 결국 이방인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아무리 태연한 척 하려해도 낯선 곳에서는 표가 나는 법이다. 도심에선 잠깐 한 눈이라도 팔면 방향감각을 잃는다. 복잡한 쇼핑센터나 클럽에선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시드니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0여 개 국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뒤섞인 도시라 하나의 색채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처럼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공존한다. 얼마든지 취향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주위에 불안과 불편만 끼치지 않는다면 남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인지 동성 간 결혼이 법으로 보장되고, 유흥가인 킹스크로스의 펍(Pub)에선 건장한 체격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게이 종업원이 주문을 받는다.
시드니 시내 곳곳에 설치된 관광안내소의 브로슈어를 보면 그네들의 정체성이 엿보인다. 자랑거리가 무엇이건 남반구(Southern Hemisphere) 최대 또는 최고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북반구에서 내려온 이민자들의 후예이지만 유럽이나 미국과는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는 얘기다.
"사람들도 좋고 날씨도 좋아요. 지금이 겨울인데 별로 춥지 않잖아요. 나라별로 음식도 무궁무진하고, 돈만 많이 번다면 살기에 참 좋은 곳이어요." 오페라하우스를 찾아가는 길에 잡아탄 택시 기사는 중국 쓰촨성 출신의 이민자였다. 가끔 택시요금 안 내고 도망가는 애버리진 때문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시드니에서 살 계획이라고 했다.
애버리진 원주민을 제외한 토박이 호주인, 제임스 쿡 선장 이후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초기 이주민 후예들의 사고방식은 '촌스러움'으로 대표된다. 융통성이 없어 보일 정도로 우직하고 순박하다.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길에 떨어진 물건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습관화돼 고속도로에 차가 고장 나 서있으면 누군가 곧바로 멈춘다.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이 호주를 가리켜 '촌동네'로 부르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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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The Rocks), 시드니의 고향
허니문이나 패키지로 시드니를 찾는 이들의 일정은 대동소이하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동물원에서 코알라 한번 안아보고, 양털 깎기와 소젖 짜기를 관람하는 선이다.
그리고 귀국할 때는 부메랑 모양의 책갈피와 프로폴리스 치약,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메리노 양모이불과 로열젤리를 박스로 들고 간다. 운이 좋은 신혼부부 같으면 해질녘 디너 크루즈에 올라 시드니의 눈부신 야경에 빠져볼 수도 있다.
내륙 안까지 깊게 만(灣)이 형성된 시드니의 유려한 해안선을 거닐며 아침 산책을 즐긴다면 더 운이 좋은 경우다. 모두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기 위한 일정이지만 조금만 눈을 돌린다면 시드니의 진면목을 보고 갈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사람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하버브리지 인근의 록스 지역은 시드니를 방문하면 한번쯤 둘러볼 만한 곳이다. 초기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오래된 석조건물과 골목 사이로 갤러리, 카페, 펍(Pub) 등이 몰려 있다.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벼룩시장이 열린다. 길게 늘어선 천막 아래로 200여 개의 난전이 펼쳐지는데, 애버리진 문양이 새겨진 부메랑과 안경 케이스부터 유칼립투스 오일까지 판매되는 물건은 수천 가지다. 19세기 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들의 악행에 대항했던 네드 켈리(Ned Kelly)의 철제갑옷 모형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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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달링 하버 |
록스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매력은 펍이다. 시드니는 펍 문화가 아주 일반화돼 있다. 금요일 저녁에 펍이 아닌 집에 있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취급받을 정도다. 해질녘이 되면 록스 거리 양쪽에 자리 잡은 맥주홀에서 시드니 사람들의 '생활의 발견'이 가능하다.
나이, 피부색, 직업 관계없이 누구나 투이스, 기네스 등 맥주잔을 들고 왁자지껄한 대화를 나눈다. 밴드의 라이브 공연이라도 있는 날에는 리비도가 한층 더 상승된다.
록스 바로 옆에는 6개의 선착장을 갖춘 서큘러 키(circular quay)가 있다. 18세기 영국 이민 선단이 상륙해 호주의 현대사를 연 곳이다. 대중교통 수단인 페리(ferry) 터미널과 전철에 해당하는 시티레일(City Rail)이 맞붙어 있다.
캡틴 쿡 크루즈, 시드니 시내와 교외를 순환하는 익스플로러(Explorer) 투어버스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하버브리지, 오페라하우스, 왕립식물원, 시드니타워, 달링하버, 시드니수족관, 마틴플레이스 등 웬만한 명소는 걸어서 15분 이내다. 호주의 역사가 개막된 곳에서 시드니 여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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