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AYARN™♡ 【이성(연애)】

내 남편이 꼴보기 싫어질 때

피나얀 2006. 6. 13. 21:17

출처-[한겨레21 2006-06-13 08:06]

 

 


자식들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되는 ‘빈 둥지기’ 빨라지고 길어져… 여성 노인의 변화에 남성 노인들이 따라가지 못하면 위기 찾아와

 

#1. 노인복지관에서 여성 노인 20명이 모여 ‘좋은 시어머니 되기’를 함께 공부하는 시간. 마침 수업 전주에 ‘부부의 날’이 있었기에 아들·며느리에 앞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기로 했다.

 

‘부부의 날’은 5월21일인데,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고, 공휴일은 아니지만 2004년부터 법정 기념일로 제정됐다.

 

남편이 밉고 싫을 때를 먼저 꼽아보기로 했다. 마치 준비해온 것처럼 이야기가 쏟아져나온다. “아직도 ‘물 떠와라, 재떨이 가져와라’ 심부름 시킬 때, 조금 아픈 것 가지고 아기처럼 엄살 부릴 때, 어디 나갈 데도 없는지 매일 집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 자식들이 못마땅해도 직접 말하지 못하고 괜히 마누라만 들볶을 때, 아직도 힘 있는 척 허세 부리고 큰소리칠 때, 마누라 돌아다니는 것 못마땅해하고 자꾸 간섭할 때….”

 

반대로 남편이 사랑스러울 때는 언제인지 물어보니,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며 다들 깔깔 웃으신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이 애틋하거나 고마울 때는 언제더냐”고 물음을 바꾸었다. “내가 아플 때 물도 떠다주고 걱정해주지. 자식들 앞에서 내 역성 들어줄 때, 집안일 거들어줄 때, 내 말 무시하지 않고 잘 들어줄 때, 체격이 아주 좋았던 양반인데 몸피가 줄어들고 어깨가 축 처진 것을 보면 애틋하지….”

 

어리석은 할머니 시리즈

 

#2. 남성 노인들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며칠 뒤 또 다른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의 자원봉사활동 교육이 있었는데, 마침 교사 출신 남성 노인들이 모이셨기에 이때다 싶어 아내가 밉고 싫을 때와 애틋하고 고마울 때를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여성 어르신들과 달리 쑥스러워하며 선뜻 말하려 하지 않아서, 수업 시작할 때 늘 함께 부르는 노래도 하고 짝을 이뤄 게임도 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고 나서야 겨우 몇 말씀 들을 수 있었다.

 

“혼자서 맘껏 놀다가 늦게 들어올 때, 퉁명스럽게 쏘아붙일 때, 자식들 앞에서 무시할 때, 잔소리할 때, 찬밥 대충 차려줄 때, 아픈데도 무관심할 때, 아이들과 한편이 돼서 내 의견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때, 말도 안 붙이고 쌀쌀맞게 굴 때….”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꼬박 옆에서 간호해줬을 때, 자식들 앞에서 나 먼저 챙겨줄 때, 돈도 잘 벌어다주지 못했는데 가정 잘 꾸려준 것, 오래도록 시부모 섬기느라 고생한 것, 아이들 잘 길러준 거 생각하면 무조건 고맙지….”

 


노인복지관 여성 어르신들 사이에서 ‘어리석은 할머니 시리즈’가 한창 유행했다. 어리석은 할머니는 원래 일찌감치 재산 물려주고 자식한테 용돈 타 쓰는 할머니, 나이 들어 집 평수 늘리는 할머니, 몸매 생각하지 않고 옷 욕심 내는 할머니, 사소한 일에 목숨 걸다가 친구들과 의 상하는 할머니, 손자·손녀 봐주는 할머니였는데 언제부턴가 한 가지가 더 붙었다.

 

놀다가 영감 밥 챙겨준다고 달려가는 할머니! 친구들과 놀다가도 식사 시간만 되면 “영감 밥 차려줘야 한다”고 달려가는 친구가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이제 여성 노인들도 변하고 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여성 노인의 변화에 남성 노인들, 즉 그 배우자들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녀가 다 집을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되는 것을 ‘빈 둥지기’(empty nest period)라고 하는데, 출산 자녀 수가 줄어들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빈 둥지기가 빨라지고 길어졌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부부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의 18.7%를 차지한다는 통계에서 보듯이 ‘황혼 이혼’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노년 부부가 새로운 상황과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특히 남성 노인 쪽의 적응과 유연성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평등하게 늙어가기

서로의 취향 존중하고 활동은 ‘따로 또 같이’
 

1. 대화하기

 

원래부터 말이 안 통했다고, 새삼스럽게 할 말도 없다고, 꼭 말로 표현해야 아느냐고 하면서 말을 안 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입을 닫게 된다. 대화 없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 수도,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도 없다. 물론 대화에 앞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기울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서로의 취향 존중하기

 

젊었을 때는 아내가 남편의 취향에 맞추거나 무조건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취향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상대방의 취향과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3. 활동은 ‘따로 또 같이’

 


아무리 부부라도 각자가 좋아하는 활동이 다를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배려하고, 마음 맞는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바로 ‘따로 또 같이’다. 질병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모를까,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든가 매사에 기대어 사는 것은 성숙한 부부관계로 볼 수 없다.

 

4. 집안일 나눠하기

 

집안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노년의 부부관계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설거지, 세탁기 돌리기, 빨래 정리하기, 청소, 쓰레기 버리기, 장보기 등 작아 보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집안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나눠서 하자. 처음에는 아내를 위해서 시작했지만, 아내와 사별하게 되자 그것이 결국 자신의 홀로서기를 위한 바탕이 되었음을 깨달았다는 남성 노인도 있다.

 

5.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감사하기

 

노년 부부가 서로에게 갖는 감정 가운데 가장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측은지심,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인생길을 같이 걸어온 동지애를 유지하려면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6. 부부의 사랑에도 공짜는 없다

 

좋지 않았던 부부 사이가 나이 들었다고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는 법은 없다. 먹고사느라고, 아이들 기르느라고 소진된 사랑의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이 역시 공짜로는 안 되며, 다시 한 번 관심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한 노력, 즉 ‘감정의 노동’ 없이는 관계가 좋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