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하늘 아래 가장 먼저 만나는 산사, 봉정암

피나얀 2006. 6. 24. 19:59

 

출처-[오마이뉴스 2006-06-24 11:42]

 

6월의 시작과 함께 우리 국토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싶듯, 내 나라 내 땅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소란한 사람 마을을 잠시 벗어나 자연에게 사는 법도 배우고요. 이 글은 사람살이에 적응 못하고 또 홀로 떠나는 여식을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어머니를 위해 길 위에서 쓰는 편지입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사람 도리, 자식 도리 하며 사는 평범한 딸이 되고 싶습니다. - <기자 주>

3일째 계속 되는 비를 뚫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휴식은 충분히 취했고 마냥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건 장대비 속을 걷는 일보다 더욱 곤욕처럼 느껴졌습니다. "비 오는데 산에 가겠냐"고 하시는 숙소 관리아저씨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한계령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굽이굽이 휘어진 도로를 따라 한계령 휴게소에 이르니 다행히 궂은 날씨는 한풀 꺾여 가랑비가 내렸지만 6월이란 계절이 무색할 만큼 서늘했습니다. 훅 끼쳐오는 소름에 화장실로 가서 가지고 온 옷들을 모두 겹쳐 입은 다음 설악산 대청봉을 향한 등정을 시작했습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는데 안내원이 "어느 쪽으로 하산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오를 생각만 하고 미처 내려올 생각은 안 했던 제가 어느 쪽이 좋으냐 물었더니 안내원은 "오색길로 내려와야 오늘 안에 내려올 수 있습니다"라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지요, 설악산 정상까지는 초행길인데다 동행할 이도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여정은 상상도 못한 채 대수롭지 않은 듯 발길을 옮겼습니다.

결정한 건 단 한 가지, 정상도 정상이지만 언젠가 한국의 절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서 '하늘 아래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산사'라고 소개되었던 봉정암에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설악의 전경들

 

▲ 한폭의 그림 같은 설악의 풍경 ⓒ2006 이명주
ⓒ2006 이명주
수많은 등산객들이 오래도록 밟고 밟아 난 길 외에는 사람에게 길들여진 적 없는 설악의 자연에 연신 사진기를 누르고, 탄성을 자아내면서 한참을 올랐습니다. 그 푸르름은 말할 것도 없고, 길이 높아질수록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들이 발 아래로 펼쳐졌습니다. 높은 산을 올라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깊고 고요한 산길을 오르고 올라, 나무들이 하늘을 열어줄 때쯤 만나는 광활한 자연 앞에서의 숨 막힘!

이때만큼은 고장 난 사진기가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사각 플레임 안에 만족스런 그림이 나타나질 않아 설악의 풍경을 가슴에 새기려는 듯, 가는 중간 중간 오래도록 서서 그것을 음미했습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요? 가랑비마저도 오래 전에 그쳤고 환한 햇살에 새들의 지저귐은 간드러지기만 한데 길은 끝이 없었습니다. 의기양양하던 기세는 온데 간데 없고 무거워진 다리는 종종 꺾이기까지 하고 목은 계속 타왔습니다. 어디쯤 보일 거라 생각한 약수터나 간이매점도 없고, 설상가상 전날 얼려둔 물통을 숙소에 두고 온 것을 알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흐르는 샘물을 음료수 삼아 하조대에서 출발하기 전 슈퍼에서 산 김밥 한 줄을 나무둥치에 앉아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자연샘물'은 달디 달았고, 자르지 않은 김밥인지라 우엉이 잘리지 않고 쑤욱 뽑혀져 나오는데도 마냥 꿀맛이라 우걱우걱 씹어 단숨에 먹었습니다. 배를 채우고 단 바람에 흥얼거리고 있으려니 다람쥐들이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긴 것처럼 곁에 모여들어 기웃거렸습니다. 지난번 울산바위 오를 때도 느꼈지만 설악산 다람쥐들은 마치, 어릴 적 동네에 찾아오던 엿장수처럼 사람을 만만히 여기는 듯합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봉정암'

드디어 대청봉 지점이 멀지 않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습니다. 허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너무 지친 탓이었을까요, 반가운 탓이었을까요? 이정표를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도 두 갈래 길 중 대청봉과 정반대 방향에 있는 귀때기청봉(해발 1.578m, 서북능선 최고봉)으로 들어서고 만 것입니다. 한낮 땡볕은 뜨겁기만 한데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길은 험준한 바위산이라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한참만에야 뒤에서 한 무리의 사람 기척이 들려 반가워하고 있는데 성큼성큼 바위산을 건너온 아저씨 한 분이 어딜 가는 길이냐 물어 "대청봉에 간다"고 했더니 "이럴 줄 알았다, 여긴 귀때기청봉 가는 길이니 어서 돌아서 가라"고 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들어선 귀때기청봉의 정상이 탐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자칫하다간 목적한 대청봉을 가기도 전에 해가 질 위험이 있어 온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참으로 무모하고 걱정스런 일을 저지른 것이지요? 그런데 그 와중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삶에서도 열성을 다해 갔지만 길을 잘못 택해 뒤돌아서야할 때가 있잖습니까? 그간 들인 노력이 아깝고도 허무해 틀린 길인지 알면서도 밀어붙이려는 마음이 생기기 십상이나 결국 깨달은 순간 돌아서는 것이 최선책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귀때기청봉을 내려와 대청봉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드디어 대청봉 바로 아래 캠프에 도달했습니다. 눈앞에 해발 1707m 설악의 정상이 보이는데 왠지 마음은 그 아래 봉정암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매번 뭔가에 정성을 들이다가 성과를 바로 앞에 두고도 쉬이 손을 놓아버리는 제 습성이 발동한 것일까요? 오기가 날 만도 한데 한 치 미련도 없이 길을 돌려 봉정암으로 내려갔습니다. 오래전 돌 하나, 흙 한 점 모조리 한 사람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수백, 수천 번을 지고 날라 만들었을,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봉정암의 모습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봉정암에서 평온함과 영검한 기운을 느끼다

대청봉을 뒤로 하고 봉정암을 향해 길을 돌리자 우측으로 보이는 설악의 능선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사람이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게 된 건 아마도 벅찬 자연에의 감탄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잘나 이름을 떨치고 돈도 버는 것 같지만 묵묵히 존재하는 자연에서 거저 얻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인심 좋은 부부 등산객이 건네준 물 한 통을 오래 전에 다 비우고 출발하고부터 처음으로 매점 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봉정암 가는 길 몇 십 미터 지점에 있는 그곳은 매점과 산장을 겸하여 긴 머리 하나로 질끈 묶은 청년과 그의 어머니인 듯한 여인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음료수 가격이 산 아래보다 거의 3~4배나 비쌌지만 초코파이와 비타민 음료 하나를 냉큼 사서 먹었습니다. 군복무 시절, 군인들이 왜 그리 초코파이를 동경하는지 그 심정이 이해되는 듯했습니다. 물도 물이지만 초콜릿이 발라져 있는 말랑한 그 빵이 어찌나 맛있던지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산을 내려가니, 마침내 거인의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듯한 기암괴석과 우거진 숲에 둘러싸인 봉정암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이 곳은 신라 시대인 643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는데 그 후 원효, 보조, 지눌 등 유명한 고승들이 머물며 수도 정진한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6·25 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되었고 한국 전쟁 당시에는 화재로 소실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봉정암은 아직도 산 밑에서 운반해온 발전기로 한정된 전력을 사용해 생활해야 하는, 세인의 관점에선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었지만, 이 곳에 하루 동안 머물면서 느낀 건 산 아래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평온함과 영검한 기운이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연이 닿으면 시간을 정하지 않고 산사에서 머물고 싶어졌습니다.

봉정암의 맑은 기운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

 

▲ 가을의 봉정암 모습 ⓒ2006 이명주
ⓒ2006 이명주
대충 경내를 둘러보고 나니 저녁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불도, 음식도 귀한 곳에 봉정암 찾은 모든 이들에게 미역국과 오이무침 곁들인 밥이 나왔습니다. 그릇도 귀한지라 미역국에 밥을 말고 오이무침까지 섞어 숟가락 하나로 후루룩 떠먹는 형상이었지만 국 한 모금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엔 자신이 사용한 그릇과 수저를 네 단계로 나누어진 세척대에서 깔끔하게 씻어 다시 다음 사람을 위해 제자리에 갖다놓았습니다. 절에서 공양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밥 먹고 물 쓰는 법을 절에서 하듯 교육하면 참으로 이로울 듯합니다. 하루를 묵고 갈 터라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을까 하고 한 스님에게 부탁드렸더니 전기가 너무 귀해서 사정을 봐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말을 해놓고도 생각이 부족했다 싶어 영 겸연쩍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큰스님의 강연시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보름이라 저번 낙산사에서처럼 봉정암에도 각지의 불자들이 단체로 찾아와 스님의 법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번 오기도 힘든 곳이니, 스님 말씀 한 자라도 더 듣기 위해 절 마당도 개의치 않고 오밀조밀 모여 앉은 신도들 사이에 조용히 섞여 앉았습니다. 구수하고 재미있게 풀어가는 큰 스님의 법문에 사람들은 연신 큰 소리로 웃어대고 '관세음보살'을 외쳤습니다.

밤이 되자 철야기도 하는 사람은 법당에 모이고, 만만치 않았던 여정에 녹초가 된 사람들은 배정된 방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저는 봉정암 맑은 기운 탓인지, 산 아래서 지고 온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몸은 피곤한데 정신만은 말짱해 밤새 숙소와 법당을 오고갔습니다.

밤 10시에 일제히 소등했다가 새벽 다섯 시, 아침을 깨우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사찰 전체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아침 공양 메뉴 역시 어제와 같은 미역국과 오이무침이었습니다. 입이 까칠하여 전날과는 달리, 영 밥이 넘어가질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이틀간의 설악산 등정을 마치다

아침 공양이 끝나자 점심으로 주먹밥을 나눠받고 단체로 온 방문객들은 하산할 준비를 하는 사이, 저는 대청봉을 향했습니다. 언제든 다시 못 오랴만, 또 한번 온 길을 다시 기약하기 힘든 것이 사람 일이니 한 번은 보고가야 할 듯해서였습니다. 내려올 때는 금세 내려왔다 싶었던 길을 다시 올라가려니 만만치 않았습니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오르려니 간사스레 '어제 둘러보고 올 걸' 싶기도 하고, '그냥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났지만 그 사이 대청봉 정상을 찍었습니다.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뿌듯함이 한점 더해졌습니다. 본래는 대청봉에 올랐다가 다시 봉정암으로 내려가 하루 정도 더 머물 마음이었으나 당최 같은 길을 또 걸으려니 싫증도 나고, 꾀도 나서 오색길을 택해 하산했습니다.

내려가는 게 더 수월하다는 생각에 가볍게 시작한 하산길이지만 오색길은 올라오는 것은 엄두도 안 날만큼 험했습니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돌계단, 나무계단이 사람을 더욱 지치게 했습니다. 오전 9시에 시작한 하산길이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이틀간의 설악산 등정을 끝내고 저는 지금 주문진 해수욕장 근처에 와 있습니다. 바다가 눈 앞에 펼쳐져 있지만 몸도 머리 속도 젖은 소금 주머니 같고 어떤 것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 계획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지쳐 있습니다. 이만 말을 멈춰야겠습니다. 기력이 회복되면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그래도 참으로 뿌듯한 산행이었습니다! 또 씩씩한 마음으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휴식에 전념하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시 오라는 뜻이었을까요? 고장난 사진기로나마 고이 간직하고 싶어 가득 담아온 사진들이 한순간 날아가버렸습니다. 어떤 완벽한 그림도, 사진도, 글도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따올 순 없을 듯하니 꼭 한번 제가 걸은 그 길을 걷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