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6-08-07 10:35]
난 날씨에 무척 둔감한 편이다.
더운 여름날 "더워, 더워"를 남발하지도 않고
추운 겨울이라고 해서 "추워서 죽겠어"라며 징징대지도 않는다. 그저 땀이 나면 '여름이니 덥구나', 소름이 돋으면 '겨울이니 춥구나'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곤 한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곰도, 곰도, 저런 곰은 없을 것'이라며 혀를 차지만
덥다고 운다 하여 여름이 내 눈치를 볼 것도 아닌데 에너지를 쏟아가며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그저 더운 날엔 밖에 안 나가고 방
안에서 병아리 숨을 쉬면서 냉커피나 묵묵히 마시는 게 최고라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곰다운 성격도 가끔은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다.
너무 더워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 옥탑방의 바깥 풍경들. |
ⓒ2006 박봄이 |
아무튼 가격이 좀 맞고 구조까지 마음에 든다면 최상이지만 어디 사람 사는 게 내 맘대로 떡 주무르듯 되느냐 말이다. 보통, 가격이 맞으면 집의 구조나 위치 등과 관련해서는 반은 포기하고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처음 살아봤던 반지하. 반지하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반지하라는 동양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주택구조에 살다보면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에서도 여름이라는 계절이 얼마나 살인적인지 몸소 체험하게 된다. 이름하여 '체험, 찜통 현장'.
'반지하'는 대부분 다세대 주택이고 주택가 밀집 지역에 있는 탓에 환기뿐만 아니라 바람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전에도 '사는이야기'로 쓴 적이 있지만 옆집에는 조폭, 밤에는 귀신, 여름에는 수해, 이 환상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반지하방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밤에는 옆집 조폭들의 계속 되는 싸움질로 방문을 열어놓고 살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떻게 아리따운 여인 혼자 산다는 건 알았는지(우호호~) 새벽마다 파리떼를 가장한 도둑들이 "아가씨, 물 좀 줘", "잠깐만 문 열어봐요"라며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신청하는 일들이 벌어져 안 그래도 더운 여름에 짜증이 복받쳐 오르곤 했었다. 창문만이라도 열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창문도 건물 안의 복도로 나 있어 그럴 수도 없는 막막한 상황.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방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숨만 할딱할딱 쉬어가며 눅눅한 바람을 머금은 선풍기만 돌려댔다. 샤워, 하루에 최소 5번.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샤워를 하고 몸을 닦을라치면 다시 흐르는 땀. 더워서 울어본 자가 있던가. 난 그때 처음으로 더워서 울어봤다. 낮에는 잠깐 잠깐 문을 열어뒀으나 더운 여름 날, 들어오는 건 지나가던 길 잃은 파리뿐이고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반지하 내 방까지 들어올 바람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탈진, 급기야 아이스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서 있던 나는 갑자기 몸을 가눌 수 없는 현기증과 구토가 밀려와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까맣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알았다.
귀신 바람도 있고 옆집 조폭도 있고 도저히 이곳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어디든 좋다, 반지하만 아니면 된다!
옥탑방으로 각종 벌레가 날아들다
▲ 자그마한 평상, 밤에 누워 하늘을 보노라면…. 별은 없다. |
ⓒ2006 박봄이 |
막상 이사를 하고 살아보니 옥탑방, 이곳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무슨 놈의 벌레는 각양각색 종류별로 기어들어와 주시는지 손바닥만한 나방이 마치 참새처럼 푸드덕 날아 들어올 때나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른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천장에서 저벅저벅 산책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곳이 나의 집인지, 그들의 서식처에 내가 세들어 사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 뿐이랴, 옥탑이 '덥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한여름 대낮의 옥탑은 마치 태양열을 저장하는 저장소처럼 햇빛의 엑기스를 뽑아 담아 놓은 곳인 듯했다. 반지하에서는 햇빛이 안 들어오더니 옥탑은 눈이 부실 정도로 햇빛도 쨍쨍하게 들어왔다. 옥상에 나가 앉아 있으면 '아… 이렇게 한 시간만 앉아 있으면 내가 수육이 되겠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덥다는 표현보다 뜨겁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
옥상 위에 올라와 있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대는 더운 바람은 옥상을 더더욱 달궈놓았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열대야는 급기야 나를 옥상 바닥에 나와 자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모기장도 준비되지 않은 채 실행한 한여름의 옥상 수면은 온 몸에 수십 군데의 모기바늘 자국만을 남겨놓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참 다행이었던 것은 반지하에는 없는 그것, 바로 바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방안은 '오부지게' 더웠지만 창문과 방문을 열어놓으면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오아시스의 물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지옥과 같은 여름이 지나고 겨울. 물론 이 겨울이라는 계절도 옥탑방에서는 버티기 힘든 계절이다. 칼바람은 그대로 창문 사이사이로 저미고 들어오고 바람이 세지면 창문을 우당탕 두드려댔다. 그런 바람의 공격에 나는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 '덜덜덜' 떠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젊었을 때 이 정도는 뭐, 나는 '옥탑방 곰탱이'니까~
▲ 옥탑에서 바라본 거리풍경. |
ⓒ2006 박봄이 |
바람 한 점 없는 한낮이면 선풍기도 '쿨럭'대며 더운 바람만을 내뿜어놓고 미안한 듯 고개를 돌리고 만다. 또 우리집 식구들인 복댕, 삼식, 용녀(한 놈 더 들어왔다)는 바닥에 널브러져 '나 좀 살려주쇼' 포즈로 '헥헥'거리느라 혀가 바닥에 닿을 지경이다.
하지만 옥탑방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곳에서 사는 감정도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다. 만약 다시 이사를 갈 때 '예쁜 옥탑방 있는데 한번 보실라우?' 묻는다면 난 거절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여름과 겨울에 또 이 전쟁을 치러야 하겠지만 개 세 마리와 처마 밑에 앉아 여름비를 바라본다거나, 옥상 청소를 하며 치는 물장난, 그리고 이 여름이 지나가고 찾아오는 가을 즈음의 시원함과 높은 하늘 등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뼈마디가 시리고 더위에 혈압이 올라 쓰러질 정도가 아니라면 젊었을 때 이 정도 더위는 경험해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더위에 약하신 분, 추위에 약하신 분, 옥탑방에서 한번 살아보시라. 1년만 살아보면 그 어떤 계절도 여유있게 버텨낼 수 있는 '인간 곰탱이'가 될 것이니 말이다.
'♡PINAYARN™♡ 【TODAY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DAY 스크랩】우리가 모르는 ‘된장녀’의 진실 (0) | 2006.08.10 |
---|---|
【TODAY 스크랩】‘행복해지는 10가지 방법’ (0) | 2006.08.07 |
【TODAY 스크랩】‘뒤척이는 열대야’ 해마다 늘어난다 (0) | 2006.08.06 |
【TODAY 스크랩】직장이 지긋지긋하다면.... 소시민을 위한 대처법 10가지 (0) | 2006.08.04 |
【TODAY 스크랩】소득공제 때문에 카드 긁는다고요? (0) | 200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