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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땡볕에 가뭄까지... 이 일을 우짜쓰꼬"

피나얀 2006. 8. 16. 21:45

 

출처-[오마이뉴스 2006-08-13 11:42]  

 

▲ 폭염에 땡볕이 내리쬐는 들녘은 분주하다. 노인은 깨밭에서 풀을 뽑아 바지게로 져나른다.
ⓒ2006 조찬현

전남 여수 화양면 서촌리 석교마을.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땡볕이 내리쬐는 들녘은 분주하다. 노인은 깨밭에서 풀을 뽑아 바지게로 져나른다. 석교마을에 사는 김종선(76) 어르신이다. 벼농사와 고구마, 참깨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논으로, 밭으로... 일손 바쁜 농촌

밀짚모자와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부부가 경운기를 타고 일터로 간다. 조밭에는 할머니 두 분이 풀을 매고 있다. 벼논에는 경운기를 이용해 긴 줄을 끌고 다니며 농약을 치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 마스크를 하고 벼논을 오가는 농부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건너 산 아래 마을길에는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간다. 아주머니가 마중을 나온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삐뚤삐뚤한 돌담을 담쟁이가 뒤덮고 있다. 마을길의 담장과 지붕에도 담쟁이가 뒤덮고 있다.

▲ 검게 그을린 처마와 돌담장에 무당거미가 거미줄 위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2006 조찬현

▲ 아주까리는 연약한 몸으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2006 조찬현

길가 집에는 바람벽 흙속의 나무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다. 검게 그을린 처마와 돌담장에 무당거미가 거미줄 위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담장 아래 더위에 지친 강아지풀은 고개를 숙인 채 바람에 제멋대로 흔들린다.

아주까리는 연약한 몸으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호박꽃도 더위에 지쳤는지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 텃밭 옆에는 연분홍 메꽃이 피었다. 이따금씩 메꽃은 길손에게 손짓을 한다. 석교마을 정류장에는 시내버스가 정차해 있다. 언제 올지 모를 그 누군가를 마냥 기다리고 있다.

▲ 텃밭 옆에는 연분홍 메꽃이 피었다. 이따금씩 메꽃은 길손에게 손짓을 한다.
ⓒ2006 조찬현

▲ 참깨는 듬성듬성하다. 하얀 깨꽃 사이로 꿀벌이 오가며 결실을 돕는다.
ⓒ2006 조찬현

▲ 녹두 열매는 까맣게 익어가고 있다.
ⓒ2006 조찬현

성장기에 비가 잦아 유독 비를 싫어하는 작물인 참깨는 듬성듬성하다. 하얀 깨꽃 사이로 꿀벌이 오가며 결실을 돕는다. 크고 작은 들쭉날쭉한 깨밭을 바람이 휘젓고 지나간다. 참깨는 깨춤을 춘다. 깻잎 이파리 뒤에는 무당벌레가 붙어 있다.

녹두는 길쭉길쭉 열매를 맺었다. 가장자리에 녹두꽃이 한 송이 앙증맞게 남아 있다. 녹두 열매는 까맣게 익어가고 있다. 석교마을은 완두콩과 약재로 쓰이는 황금을 많이 재배한다. 황금의 보라색 꽃이 피었다.

마음도, 밭뙈기도,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고 타들어가

▲ 황금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할머니.
ⓒ2006 조찬현

황금 밭에서 풀을 매던 박공자(66)씨는 황금에 대해서 세세히 묻자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리며 푸념하기 시작한다. 황금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약용식물로 한방에서 뿌리를 해열·이뇨·지사및 소염제로 사용한다.

"약초나 아니나, 다 죽어 불고 드문드문해. 올해 장마에 이렇게 많이 죽어 불고 만날 잡초만 무성해. 이제는 땡볕에 가뭄까지... 이 일을 우짜쓰꼬. 일곱 마지기나 심었는데, 얼마나 되겠어. 잘해야 2백 정도나 하려나..."

"황금 가격이 얼마나 돼요?"
"근에 매였제. kg에 5천 원씩만 해도 괜찮고... 작년에 5천 원씩 했어. 올해는 좋을 줄 알았더니만 장마에 가뭄에 싹 죽어 불고 이래갔고 어떡하겠어. 우리 밭도 아니고 남의 밭인데. 묵힌 밭을 땅이 아까워갖고 내가 빌렸어. 그냥 해묵으라고 하는데 남의 밭을 어떻게 그냥 한다고, 다믄 얼마라도 줘야지."

"황금이 가뭄에 다 말라서 어떡해요?"
"그래도, 아직 뿌리는 좋은디."
"생김새가 참깨 꽃과 비슷하네요?"
"깨꽃보다 안 이뻐요. 아이고~! 그나저나 비나 좀 왔으면 좋겠소. 이런 것이 커야 될 거 아니요. 땅이 말라 논 깨 보타갖고 다 죽어 부러. 잔 것은 겁나 죽어 분 것이 쌔 부렀어. 놈들은 물을 줘 겁나 좋다는디... 여기는 지하수가 없어 물을 줄 때가 없어."

▲ 황금 밭에서 풀을 매는 할머니.
ⓒ2006 조찬현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쩍쩍 갈라진 밭뙈기 마냥 마음이 타들어간다. 할머니는 황금 밭을 오가며 지심을 매고 있다.

"뽑아도 나오고 말도 못 하요. 밭을 열 번째 맨당께요. 약초가 드문께 잡초가 더 많단 말이요. 지심이... 이렇게 조그맣게 나가지고 물을 못 먹은께 벌벌벌하니 다 죽어 부러."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할머니의 마음도 약초인 황금도 타들어간다. 밭이 쩍쩍 갈라졌다.

"어쩔꺼요. 이제 안 되면 수돗물이라도 줘야지. 이거 보씨요. 호맹이(호미)가 안 들어가 부러. 밭 매는 것 보씨요. 톡톡 조사야지. 이렇게 긁어도 잘 안 들어가."

밭을 긁는 할머니의 호미에서 쇳소리가 난다.

▲ 황금의 보라색 꽃이 피었다.
ⓒ2006 조찬현

황금은 자주색의 꽃이 피었다 지면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훑어 내려 보면 납작해요. 씨가 한 개가 있는 것도 있고 두 개가 있는 것도 있어요. 씨는 까매요. 싸래기 맨키로(처럼) 똥글똥글하니 그래요."

황금은 씨를 받아 이듬해 봄에 밭에 뿌린다. 경운기로 밭을 갈아 고랑을 만들고 씨 뿌린 뒤 소를 몰아 써레질을 한다. 젊은 사람들은 갈퀴로 긁어 씨앗을 덮는다고 한다. 작황이 안 좋아서 내년에는 씨를 구입해서 뿌려야 되겠다며 할머니는 안타까워 한다.

기층의 불안으로 소나기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유독 여수 지역은 소나기가 피해간다. 한바탕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쩍쩍 갈라진 밭과 타들어가는 할머니의 가슴을 흠뻑 적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