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6-08-1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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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 입은 행위예술가, 낸시 랭을 좋아하세요?”
이런 질문에 ‘예’라거나 최소한 ‘나쁘지 않다’고 답한다면 당신은 2030 여성, 혹은 그들의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너무 튄다거나 ‘예술을 판다’고 눈살을 찌푸린다면 당신은 최근 인터넷을 달군 된장녀 논쟁의 이면(K2 참조)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30 여성이 우리 사회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여성, 그러나 자신이 싫으면 기필코 거부하는 여성, 돈과 권력과 출세를 내놓고 당당하게 좇는 여성, 이를 위해 때로 권모술수와 잔꾀도 부릴 줄 아는 여성, 순수보다 속물에 마음이 끌리는 여성, 일과 연애도 좋지만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여성. 한마디로 그들은 ‘행복한 이기주의자’들이다. 어느 광고의 카피를 빌리자면 ‘난 소중하니까족’이다.
21세기판 신인류라고 할 만한 이들의 등장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들은 풍요로운 1980년대 전후로 태어나,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녔으며, IMF가 터지기 직전까지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윤택하던 부모 밑에서 충분히 누리면서 자란 세대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뉴욕이나 파리를 옆동네 도시로 알고 자라온 영상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의 출현은 2,000원짜리 라면을 먹으면서 4,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거나 취업준비생인 ‘주제’에 명품 구두와 핸드백을 탐내는 소비행태로 종종 구설수에 올랐다. 소문난 레스토랑의 명성을 꼭 확인해야 속이 풀리고 통장부터 성적 취향까지 꼼꼼히 따져본 뒤 남자를 고르는 일도 이들 세대의 특성이다. 주식이 후식보다 중요하란 법은 없으며 백수가 탐하지 말아야 할 상품목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사 이래 늘 약자의 자리를 지켜온 여성들에게 ‘나쁜 여자’가 되고 싶은 유혹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소수 비주류가 택했던 비극과 고난의 길이 요즘 2030 여성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러운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주변의 예측과 기대에 맞춰 행동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럼으로써 주변에 행복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 싶다.’ 이것이 행복한 이기주의자들의 지론이다.
하얏트호텔에 근무하는 김영화씨(29)는 집안에서 튀는 막내딸로 통한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과 일본에서 생활했던 그녀는 ㅅ여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3학년때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호텔에 관심이 있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호텔에서 공짜로 유리창을 닦는 인턴생활부터 시작해 자신의 적성을 확인했다.
딸의 유학결심을 들은 부모는 비싼 학비와 늦은 유학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반대했으나 결국 손을 들었다.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김씨는 귀국한 뒤 신라호텔을 거쳐 현재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단순히 일 잘하는 여자보다 똑똑한 여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는다.
배정현씨(33)는 쇼핑에 인생을 걸었다. 학창시절 자신을 소개할 기회가 생기면 “제 취미는 쇼핑이에요. 특기도 쇼핑이고요”라고 서슴없이 말했던 그는 명품 부럽지 않은 동대문 제품을 골라내는 감식안을 갖게 됐고 10년간의 잡지사 패션담당 기자생활을 거쳐 관심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everydayhappy.co.kr)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찾아 런던 뉴욕 홍콩 도쿄 상하이 등 전세계를 누볐던 그는 최근 ‘쇼핑 앤드 더 시티’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캐리(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가 섹스 컬럼을 쓰는 것처럼 저는 국내 최초의 쇼핑 컬럼니스트가 될 거예요.” 그녀가 그리는 미래다.
대학생 김선미씨(23·중앙대 문예창작과 4년)도 거침없는 2030의 전형이다. 대학 2학년때 LG IBM이 주최한 ‘잉카·아마존 대학생 탐사단’에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던 그는 여행을 다녀온 뒤 탱고와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라틴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탱고의 경우 프랑스 단기유학까지 고려할 정도인데 그렇다고 해서 전공을 등한시하는 건 아니다.
현역 방송작가 밑에서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뛰어난 사극 전문작가가 되는 게 김씨의 꿈. “내가 가진 여건 안에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그는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도 내 꿈을 위한 하나의 도전”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원하는 바가 뚜렷한,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주변의 기대와 시선에 맞춰 행동했던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의식적 반항이 이전 386세대 여성들의 특성이라면 2030 세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에 대한 자의식마저 느끼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발칙하리만치 새로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베스트셀러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2년동안 35만부가 팔린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남인숙·랜덤하우스코리아)나 지난 4월 출간돼 넉달만에 15만명의 독자를 끌어모은 ‘여자생활백서’(안은영·해냄) 같은 책은 욕망에 충실하라고, 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고, 때로는 나쁜 여자가 되는 것도 망설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20대에 속물이 되어야 30대에 고단하지 않다’ ‘불행한 사람만이 인생을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좋은 물에서 놀아야 좋은 고기를 만난다’ ‘미모는 인생의 마스터 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돈, 일찍 알수록 인생이 쉬워진다’ ‘백마 탄 왕자를 그냥 떠나보내지 말라’(‘여자의 모든 인생은…’ 중), ‘놀았다고 티내지 말라’ ‘촌스러운 걸 순수하다고 착각하지 말라’ ‘명품 못 산다고 짝퉁은 사지 말라’ ‘여자를 얽매는 언니문화에서 벗어나라’ ‘필요할 때는 철저히 정치적으로 굴어라’ ‘행복한 인생을 위해 자기최면을 걸어라’(‘여자생활백서’ 중).
자칫 오해하기 쉬운 이 책들의 가르침은 젊은 시절의 어설픈 이상주의나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저자 남인숙씨(시인)는 “나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욕망에 솔직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권유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안은영씨(‘메트로’ 기자)도 “성 연애 가족관계 직장생활 등 여성의 모든 일상에서 주저함과 터부가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결코 가볍게 살지는 않기를 바란다”고 집필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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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2030 여성들이 태어난 배경에는 경제적 여유, 세계화 바람, 가족관계의 평등화, 자아에 대한 의식변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핵심은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너는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라”고 격려하는 어머니들이 뒤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선미씨는 “엄마가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늘 격려해 주셨다”고 말했고, 안은영씨도 “책을 쓰는 내내 생활은 그렇지 않지만 사고는 나보다 더 자유로운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들의 어머니 세대는 욕망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원망을 키우면서도, 적극적으로 저항해보지 못했다.
또래 남성들이 군대에 다녀오고 가장이 되기 위한 준비를 위해 기성의 잣대에 더욱 얽매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딸들은 엄마의 바람대로 보다 자유롭게 키워졌으며 많은 경우 관용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해외여행의 경험을 통해 단순 소비가 아닌 취향에 눈을 뜨고 더욱 열린 사고를 갖게 된다.
요즘도 배낭을 짊어지고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가는 젊은이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많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외국문화와 상품에 익숙한 코스모폴리탄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의 기획자인 정보배씨는 “착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벗어나라는 주장에 대해 처음에는 많은 남성들이 거센 항의를 해왔다”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건강한 이기주의자’가 자칫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날 경우 된장녀로 매도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30 여성의 전형을 찾는 건 불가능하지만 굳이 들라면 낸시 랭이 어떨까”라고 반문한다.
낸시 랭(28)은 여러 면에서 ‘나쁜 여자의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간다. 2003년 초대받지 않은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해 란제리 차림으로 퍼포먼스를 한 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였다. 필리핀 국제고 재학시절, 박혜령이란 이름을 낸시 랭으로 바꾼 이유는 비주얼과 타이포그래피, 국제성을 감안해서였다.
미술작업 외에 패션브랜드의 아트디렉터, 초고속통신망 광고모델과 음악채널 MC로까지 활약하는 그에게 예술의 지나친 상업화라는 비판도 쏟아지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행복한 나르시스트라는 사실이다.
정박미경씨(전 이프 편집장)는 “행복한 이기주의라는 감성은 중산층뿐 아니라 특수·빈민층까지 포함해 젊은 여성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졌다”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하게, 씩씩하게, 독립적으로 살려는 것은 더이상 거스르기 힘든 이 시대 여성들의 공통 화두”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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