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6-08-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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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이 가까워지면서 나타난 구름과 구름 그림자 |
ⓒ2006 배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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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기스칸 공항 |
ⓒ2006 배지영 |
구름은 표정이 풍부했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 아래에서 소도, 양도, 염소도, 사람들도 평온해 보였다. 짧은 이 평온 뒤에 가혹한 집중 가뭄 '강'과 강추위 '쪼드'가 닥치기도 한다는 것, 그러면 초원이 동물들의 시체로 가득 찬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었다.
칭기즈칸의 아들이면서 몽골세계제국을 세운 어거데이(오고타이) 칸의 수도 카라코룸을 지나고, 그의 여름 궁전이 있는 차강숨까지 갔다. 몽골 땅에서는 드물게 온천물이 나오는 곳이다. 사막에서 뒹굴고, 말도 타며 놀았던, 아이와 조카에게 며칠 만에 만난 따뜻한 물이라고 유혹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나도 애써 모범을 보일 필요가 없어서 씻지 않고 그냥 놀았다.
여름 궁전이라고 해도 어떤 특별함은 없었다.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달리면, 숨어있던 메뚜기 떼가 한꺼번에 놀라 뛰어오르는 소리가 프로펠러 소리 같았다. 바람과 햇볕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떠 보니 초원 위로 구름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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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강숨, 몽골세계제국 어거데이 칸의 여름 별장 |
ⓒ2006 배지영 |
그 때 우리 머리 위로 늘 구름 그림자가 지나다녔다. 길에서 한없이 해찰하다 보면 배고프고, 머리통은 뜨거웠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귀신이 산다는 작은 재 하나만 넘어가면 동네인데도,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구름 그림자를 기다렸다. 막 떠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리듯이 우리 앞으로 온 구름 그림자를 따라서 달렸다.
구름 그림자는 언제나 우리 보다 재빨랐다. 다시 나무 그늘에 앉아 다음 구름 그림자를 기다릴 때에 땀에 전 우리한테서는 개미 '똥구멍'에서 나는 쉰내가 났다. 20여년도 더 지난 일인데 갑자기 또렷하게 생각났다. 어린 우리들이 달릴 때면, 신작로에 일던 먼지 냄새까지도 생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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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보,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면서 돌을 던지고 마음 속 바람을 말한다 |
ⓒ2006 배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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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 말, 사람 |
ⓒ2006 배지영 |
볼 일을 본다고, 집에서처럼 책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늘을 보았다. 내 머리 위로 바짝 내려온 구름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는가? 나는 차에 올라타지 않고 달렸다. 저절로 큰 웃음소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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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절로 달려보게 만드는 길 |
ⓒ2006 배지영 |
떠나오기 전에는 가끔 나한테서 10년 된 우리 집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가 났다. 덫에 걸린 들짐승이 내지르는 신음 소리 같아서 외면할 수 없던 소리. '언제쯤이면 이 밥벌이를 안 하고도 살 수 있나' 비통해하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나였나? 얼굴에 자막 처리를 하고 상담을 받는 다른 아줌마 얘기 같았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놀 수 있다는 것은 완전한 자유였다. 가슴 뻐근한 감동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백만 스물두 가지'쯤 되는 일상의 지겨움과 부닥친대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몽골은, 몽골의 구름은, 그 아래를 걷고 거닐고 달리는 기분은, 완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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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배지영 |
덧붙이는 글
8월 중순에 다녀왔습니다.
![](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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