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봉긋 솟은 고분 사이로 애달픈 가야금 소리 들리는 듯

피나얀 2006. 8. 31. 20:58

 

출처-[조선일보 2006-08-31 10:18]

 

 

 

▲ 1500여년 전 늦여름에도 지금처럼 선들바람이 불어앴을까. 지산동 고분군 답사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의 미스터리를 찾는 시간여행이다.

경북 고령(高靈)은 왕조 16대 520년을 이어오다 562년(신라 진흥왕 23) 신라에 병합된 대가야(大加耶)의 도읍지다. 산릉을 부드럽게 장식한 200여기의 고분들, 그 고분에서 발굴된 수많은 문화재들, 우륵이 가얏고를 만들고 탔던 정정골. 그 외에도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양전동 암각화,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이 350여년간 가꾸어온 개실마을 등, 곳곳이 문화유적지인 곳이다.


 

“맴~, 맴~”

매미 울음소리가 정겹다. 매미 소리가 차분히 가라앉은 것이 더위가 한풀 꺾인 것인가. 아직은 덥다. 뙤약볕 아래 주산(主山·310.3m) 산자락으로 접어들자마자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흘러내리고, 얼굴은 땀에 번뜩인다. 그래도 숲길로 들어서자 시원스런 것을 보면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소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능선에 올라서자 주산 정상을 향해 치켜오른 능선에 고분들이 낙타 등처럼 봉긋 봉긋 솟아 있다.

 

무릇 고분 하면 산기슭이나 평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거늘 대가야의 고분들은 능선 등줄기 위에 얹혀 있다.


 

“조금이라도 더 하늘 가까이 다가서려는 신앙심에서 나온 문화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순장(殉葬)은 계세(繼世)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생각되고요.” 대가야박물관 문화해설사인 김소정씨의 설명이다.


 

 

 

▲ 솟을대문에서 본 점필재 종택.

산을 오르기 앞서 대가야박물관 왕릉전시관 안으로 들어설 때 묘한 느낌이 들었다. 고분 안은 분명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사자(死者)의 세계’였던 것이다. 지산동 44호분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는 왕릉전시관은 주인공의 자리인 으뜸돌방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32기의 순장 돌덧널(石槨)이 배치돼 있었다.

 

 


8살짜리 여자아이부터 노인, 시녀에서 호위무사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36명이 순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몇 시신의 두개골에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 순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일 게다.

 

▶대가야박물관 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일반 2000원, 청소년·어린이 1500원. www.daegaya.net, (054)950-6071~3

 

44호분을 지나 능선마루로 올라서자 작은 봉우리 같은 고분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옆으로는 고령읍내가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어쩌면 대가야의 왕들은 하늘과 맞닿고자 하는 권력자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고령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마음에 죽어서도 이 산릉에 올라서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79호분을 거쳐 숲으로 들어서기 전 휑하니 바람이 몰아친다. 1500여년 전에도 주산 산릉에서 불어대던 바람은 이렇듯 시원한 느낌을 주었을까.

 

 

 

 

 


 


수림 울창한 숲길 따라 주산 정상에 올라섰다 대가야궁성지로 내려서자 점심 시간. 읍내의 ‘대통대맛집’(054-956-3012)은 고령산(産) 전골냄비 한가운데 짤막한 대나무 토막을 담가놓은 다음 쇠고기 외에 갖가지 해산물과 야채를 끓여낸, 담백한 주산왕대 샤브샤브(중 2만5000원·대 4만원)와 즉석대나무오곡밥정식(1인분 7000원·2인부터 주문가능)이 유명하다. 정식은 15분쯤 시간이 걸리므로 미리 전화 주문하는 게 좋다.

 

읍내에서 약 10분 거리인 쌍림면 ‘우정갈비식당’(054-955-1351)은 막장을 푼 구수한 국물에 돼지고기와 야채를 데쳐 먹는 우륵된장샤브샤브(1인분 7000원·2인부터 주문가능)로 인기 있다.

 

고령을 찾았는데 우륵박물관(054-950-6789)과 양전동암각화(보물 제605호)를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우륵박물관은 읍내에서 10분 거리인 정정골에 있다. 우륵이 가야금을 창제하고 연주했다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 ‘정정’ 역시 우륵이 타는 가야금 소리가 맑고 정정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박물관 옆에 있는 우륵국악기연구소(054-955-4228)에서는 가야금 제작과정을 견학할 수 있다. 무료입장.

 

우륵박물관을 빠져 나와 양전동암각화로 향하는 사이 묘한 환각에 빠진다. 주산에서 들었던 매미소리, 여치소리, 새소리 대신 애달픈 소리가 들려왔다. 대가야를 그리워하며 우륵이 뜯는 가야금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