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08-3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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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춘천 가는 기차를 탈 게 뭐람! 강변에 둘러앉아 '나 어떡해'를 부르던 '박하사탕'의 영호와 순임도 아니면서……. 청량리역을 떠난 지 한 시간 남짓 됐을까. 간이역에 내려 호젓한 강가를 거니는 연인들. 허리를 굽혀 하얀 들꽃을 얼굴에 대보고, 청춘처럼 반짝이는 조약돌을 줍기도 하고……. 단언컨대 첫사랑의 아픔을 지닌 이는 춘천행 기차를 타지 말지니, 수백 배 아름답게 증폭된 첫사랑의 기억이 밀려와 지금의 사랑을 삼킬지도 모를 일이다.
물안개에 중독된 도시
춘천 가는 길은 단조롭고 심심하다. 굽이굽이 북한강 물길을 따라 놓인 경춘선과 46번 국도. 산 아니면 물뿐인 차창 밖 풍경은 지나치게 단선적이어서 오히려 머릿속을 상념으로 채운다. 어느 낯선 도시에서 예의 나처럼 늙어갈 첫사랑, 빛나던 청춘을 일상의 이끼 아래 묻은 친구들, 지금은 빛바랜 그러나 한 때 순연(純然)했던 꿈들……. 가객(歌客) 정태춘의 노랫말처럼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싶은 마음이 밀려든다.
서울을 벗어나 한 시간 정도 경춘가도를 달리면 강원도의 어귀인 경강대교다.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를 건너면 멀리 의암댐이 보인다. 춘천은 위로부터 놓인 댐의 이름을 딴 소양호, 춘천호, 의암호 이렇게 3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호반의 도시다. 물이 많다 보니 연중 절반은 도시가 안개로 덮인다.
일교차가 크고 습도가 높은 날이면 발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안개가 짙다. 아스라이 피어오른 물안개는 춘천 사람들에겐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다. 도시 전역에 깔린 '백색의 점령군' 때문에 운전자들은 곤욕을 치른다. 또 기관지가 약한 이들은 하루 종일 콜록거린다. 하지만 여행객들에겐 더 없는 낭만이며 애틋한 그리움을 부른다.
사랑아,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나는 아직도 안개중독자로 공지천을 떠돌고 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어디쯤 지난 날 그대에게 엽서를 보내던/ 우체국이 매몰되어 있을까/ 길 없는 허공에서 일어나 길 없는 허공에서 스러지는 안개처럼/ 그토록 아파한 나날들도 손금 속에 각인되지 않은 채로 소멸한다/ 결국 춘천에서는 방황만이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다.(이외수의 '안개중독자')
물안개는 이외수의 노래처럼 충분히 매력적이다.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올라 사랑이 시작되던 옛날의 기억을 잡아끈다. 춘천에서 물안개가 피는 시각은 그날의 일기에 따라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다양하다. 분지인 탓에 다른 지역보다 어스름이 일찍 내려앉아 저녁보다 아침시간이 감상하기에 여유가 있다.
의암호나 공지천은 시내와 가까워 안개를 감상하기에 좋다. 하지만 제대로 물안개를 보고 싶다면 소양댐 아래 세월교를 찾아가야 한다. 동양 최대의 사력댐이 발전용수를 내려보내면 세월교는 금세 물안개에 휩싸인다.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드넓게 펼쳐진 안개의 강 앞에 서면 열정과 탄식이 뒤섞인 추억들이 부딪히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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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의 물기 어린 눈빛
춘천이 풋풋함과 아련함의 도시로 남은 데는 102보충대의 영향이 크다. 이외수가 '고슴도치섬'이라고 이름 붙여준 위도 옆에 자리 잡은 입영센터에선 매주 화요일마다 가슴 먹먹한 생이별이 반복된다. 목덜미가 다 드러나게 머리를 깎아 올린 청춘들이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의 헤어짐에 목이 메어온다. 보충대에 입소한 장정들은 나흘간 신체검사와 물품지급을 받고 강원도내 각 사단 신병교육대로 보내진다.
헤어지는 아쉬움이야 다를 리 없지만 그래도 춘천 보충대는 논산이나 의정부에 비해 삭막함이 덜하다. 아들을,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돌아서는 슬픔을 보듬고 위로해주는 풍경들이 경춘선 곳곳에 숨어있다. 한 세대 전 시골 풍경을 간직한 간이역들이 상실감으로 인해 쉬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마음을 위무한다.
영화 '편지'의 배경지인 경강역은 북한강이 크게 굽이도는 춘성대교 아래 수줍은 듯 자리한다. 열차가 하루 10여 차례 쉬었다 간다. 1980-90년대 대학가 MT의 대명사였던 강촌역은 구곡폭포까지 이어진 자전거 전용도로가 매력이다. TV드라마 '간이역'의 촬영지인 신남역은 작가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에 있다. 동백꽃, 봄봄 등 김유정의 소설 대부분이 이곳에서 구상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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