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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마니아 구봉씨의 알뜰한 하루

피나얀 2006. 9. 13. 00:38

 

출처-[한겨레21 2006-09-12 08:03]

 


발품을 팔면 번듯한 작품을 올리는 무대에 쉬이 갈 수 있다는 걸 깨우치다… 초대권 전문 사이트로 공짜 구경, 프리뷰·낮 공연 등 저렴한 공연 활용

 

바다처럼 맑았던 구보를 떠올리는 구봉. 아무리 지난날을 더듬어도 매만질 만한 기억이 없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구봉이 지우개로 지우듯 함께 했던 하루하루를 털어낸 탓이다. 그러던 구봉이 구보의 흔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거리 공연게시판 포스터에서 구보를 봤기 때문이다. 생활인인 구보가 포스터에 등장할 리 없다. 구보와 함께 했던 연극이 연장공연에 들어간다는 포스터를 보니 구보와의 추억이 슬며시 삐져나온 것이다. 함께 맡았던 문화의 향내가 시나브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연극 하나, 콘서트 하나, 전람회 셋, 연주회 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달콤했던 무대. 하지만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달콤했던 무대. 하지만 구봉에게 무대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문화생활은 카드 할인이 기본인 6천원짜리 영화면 족했다.

 

뮤지컬 열풍이 몰아치면서 오리지널 팀이 내한하고 조승우의 인기가 치솟는다고 해도 구봉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비단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문화의 의미를 의심했다. 어쩌다 구보가 공연을 보자고 하면 “공연 한번 본다고 사람이 달라지냐”면서 면박을 주었다.

 

공연 나부랭이가 구보와의 추억을 잇는 끈이 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변변한 공연장조차 없는 도청 소재지에서 살았기에 문화생활을 일찌감치 단념했는지도 모른다. 발품만 팔면 번듯한 작품을 올리는 무대에 쉬이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던가.

 

‘아티안’ ‘오티알’ 등 초대권 전문 사이트 활발

 

공연장에 다가서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리가 가는 구봉이 무작정 다리품을 팔 수는 없었다. 우선 인터넷을 검색해 배움을 키우는 게 순서였다. 구봉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공연정보’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그러자 각종 사이트가 유성처럼 우수수 쏟아져내려 눈을 위아래로 삥글삥글 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곳에 눈길이 갔다.

 

‘아티안’ ‘오티알’ ‘아츠’ 등의 사이트였다. 문화 자료의 보고였다. 공연 일정과 공연평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게다가 공연을 거의 ‘공짜로’ 볼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배움이 깊어갔지만 무대는 가까이 오지 않아 타는 목마름만 느꼈던 구봉에게 초대권은 시원한 물줄기였다. 물론 어느 정도의 돈을 내야 했고, 남들보다 빨리 신청해야 했다.

 

처음엔 초대권으로 공연을 본다는 게 편하지 않았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초대권을 받은 것도 아니고 연극하는 친구가 관람권을 보내준 것도 아닌 탓이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말 때문에 처음으로 받은 초대권 앞에서 구봉은 망설여야 했다. 결국 공짜를 뿌리치지 못한 구봉은 용기를 내어 공연장의 한 귀퉁이에 있는 초대권 코너에 가서 죽은 듯한 목소리로 초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어디에서 오셨어요?”라고 했다. 이런 물음을 한국어로 들어본 적이 없는 구봉이 속으로 ‘I’m from Korea’라고 생각하며 머뭇거리자 공연 스태프는 “어느 사이트에서 오셨어요?”라고 다시 물었다. 초대권 코너에 긴 줄로 서 있는 관객과 초대권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묻는 스태프를 보자 구봉은 숙연해졌다.

 

갈수록 가볍고 달콤한 사랑에 물들어가는 대학로. 뮤지컬을 필두로 공연예술이 산업화 전 단계에 있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데 공연계 언저리를 배회하다 보니 초대권이 산업화의 싹을 자른다는 말이 귓가를 맴돌기도 했다. 구봉은 공짜에 매달리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돈을 건네어 표를 사기는커녕 사이트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공연 시작 전 30분에 초대권을 수령하면서 신분증 확인 작업을 한다는데 바로 이런 거였다. 초대권을 암거래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이란다. 간단한 절차를 밟자 초대권이 어느새 손안에 들어왔다. 공연 관계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싶었던 구봉은 프로그램(팸플릿)을 구입했다.


나름대로 유종의 예를 갖추기 위해 집에 돌아오면 자못 심각하게 연극평을 써서 사이트에 올렸다. 좋지 않으면 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고, 좋으면 좋은 대로 느낌을 적었다. 구봉이 느낀 점만 제대로 쓰면 연극인들을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몰 마우스’(small mouth) 마케팅이라고 할까. 구봉의 공연평은 실제로 인터파크나 티켓링크 등에 실려 공연을 소개하는 글이 되기도 했다.

 

그 대가로 다시 공짜 티켓을 손에 쥐었다. 싼값으로 자유이용권을 사서 공연이라는 놀이기구를 실컷 타다 보니 어느새 질리는 순간이 왔다. 다른 놀이기구(공연)를 타도 새롭지 않았다. 그저 그랬다. 마음도 불편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맞았다. 공짜로 무언가를 얻었더니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사랑티켓으로 7천원 할인, 극단 회원 가입도

 

공연계가 유료 관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무료로 앉아 있는 것이 껄끄러웠고, 메인 페이지에 배너 광고를 싣는 광고비마저 부족해 초대권으로 홍보하는 공연 관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아 미안했다. 공연 수입이 배우들 개런티와 연관돼 있어서 초대권을 남발할 경우 배우들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적어진다는 말을 언제까지 못 들은 척해야 할까.

 

초대권 애호가인 구봉,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가벼운 주머니가 원망스러워졌다. 급기야 이다컴퍼니·모아·사다리 등 6개 공연 단체가 공연계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초대권을 남발하지 않기로 선언하자, 초대권을 쥐고 극장에 들어가는 발걸음에 천근만근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연극을 끊을 수는 없었다. 공연이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조금 덜 내고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방법은 많았다. 본공연의 리허설 격인 프리뷰 공연은 30~5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볼 수 있고, 주로 주부를 대상으로 낮에 무대를 여는 ‘마티네’(Matinee) 공연도 저렴했다.

 

이런 티켓을 ‘오픈’하는(구입할 수 있는) 날짜를 알기 위해서는 인터파크나 티켓링크는 물론 각종 공연 사이트에 자주 접속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했다. R석 중간에 홀로 남은 좌석은 C석으로 팔기도 했다. 구봉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C석에서 단돈 3만5천원에 볼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지원하는 ‘사랑티켓’도 유용했다. 방법은 책을 살 때 문화상품권을 내고 모자란 금액은 현금으로 채우는 것과 동일했다. 공연 티켓을 살 때 사랑티켓을 내고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내면 됐다. 예전에는 5천원을 지원해줬지만 현재는 7천원을 지원해주고 있어 할인 폭이 커졌다.

 

구봉은 혜택을 받기 위해 우선 사랑티켓(www.sati.or.kr)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덕분에 구봉은 본래 티켓 값이 2만원인 공연을 보는 데 단돈 3천원이 들었다. 프리뷰 공연으로 50% 할인받아 1만원을 내려 했는데 사랑티켓이 7천원을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공연 관람료가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싸니 배고픈 구봉이도 충분히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극단회원으로 가입하는 방법도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극단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티켓 할인 이벤트는 물론 프리뷰 공연 티켓 오픈을 하고 있었다. 극장회원이 되는 것도 괜찮았다. LG아트센터나 국립극장은 물론 동숭아트센터 같은 소규모 극장도 회원들에게 30%정도 할인해주고 있었다.

 

크레디아 같은 대형 기획사도 비슷한 혜택이 있는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구봉은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공연 정보를 얻기도 한다. 공연을 함께 보러 가거나 감상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공연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그것도 아주 싸게. 그러니 돈이 없어서 공연을 못 보겠다는 푸념은 정보력이 부족한 자신을 못났다고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가난한 구봉은 공연장으로 향한다.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