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영동① 소리가 무르익어 맛과 정취로 돋아나다

피나얀 2006. 9. 22. 19:31

 

출처-[연합르페르 2006-09-21 10:05]

 


가을빛 흔들리는 숲 속을 가야금 곡조에 귀 기울이며 거닌다고 상상해보자. 단풍잎 바스락거리는 오솔길 저편엔 와인이 놓인 탁자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깊고 아름다운 소리(樂)와 맛(味)과 정취(景).

 

혼자 누려도 좋을법한 이 삼위일체의 조합은 충북 영동이 베풀어놓은 진경이다. 영동은 난계 박연의 향리(鄕里)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와이너리가 위치한 포도 주산지다. 게다가 소백산맥에서 분기한 민주지산이 드넓게 포진하며 숲과 계곡을 거느려 휴양에도 더 없이 좋다.

 

樂_ 시공간의 벽을 허무는 소리공작소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도 구별 못하는 음치에겐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야금 뜯는 소리만 듣고서 그 울림통(공명판)이 어떤 나무인지 찾아내니 말이다. 난계국악기제작촌 조준석 대표의 얘기다. 그는 가야금 울림통이 나무를 통째로 켠 것인지, 아니면 쪽판 여러 개를 붙인 것인지도 구분해냈다.

 

"오동나무는 소리가 깊어요. 소나무, 잣나무는 소리가 깨끗하고요. 그리고 통판을 쓰면 소리가 잦아드는 느낌이 와요. 나무 중심부는 나이테 간격이 넓어서 소리가 처음엔 좋아도 조직이 물러서 갈수록 소리를 먹어요."

 

30년 가깝게 국악기를 만들어온 그는 가야금 소리가 완전히 무르익는데 족히 5년은 걸린다고 했다. 연주자의 손이 닿은 지 5년은 지나야 제대로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악기도 흠잡을 데 없는 소리를 내려면 김치나 와인처럼 숙성기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악기란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가 맑아지는 법인데, 요즘 사람들은 처음부터 청아한 소리를 원해요. 기다릴 줄 모르죠."

 

난계국악기제작촌은 영동군이 난계 박연의 음악혼을 잇는다는 취지로 2001년에 설립했다. 난계국악박물관과 나란히 위치한다. 현악기, 타악기공방에 전문업체가 입주해 전통 악기와 관광상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공방은 자동차 생산라인처럼 돌아갔다. 자연 상태에서 건조시킨 목재 위에 먹줄을 긋고 켜거나 잘랐다. 그것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대패로 다듬었다. 그리고 인두질과 사포질 등 몇 가지 과정을 더 거쳐 악기의 틀이 갖춰졌다. 벌거숭이 골격에 명주실 가닥을 꼬아 만든 현(絃), 안족(雁足)과 부들 따위를 덧붙여 모양이 완성됐다.

 

그리고 전문 연주자의 조율을 받아 새 악기가 태어났다. 여러 공정이 공방 여기저기서 동시에 이루어져 언뜻 보면 단시간에 악기 하나가 뚝딱하고 나오는 듯싶지만, 건조부터 조율까지 수년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처음 가야금에 줄을 올리는 날엔 저놈이 어떤 소리를 낼지 궁금해서 잠도 설치고 그래요. 아주 미쳐버리죠. 쇠줄을 쓰는 서양 악기가 인공의 소리라면, 명주로 현을 삼는 우리 악기는 자연의 소리에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들을수록 깊이가 느껴져요."

 

제작촌에서 매년 생산되는 악기는 가야금과 해금이 각각 800여 개, 거문고와 아쟁이 각각 100여 개씩이다. 그 외에 북, 장구, 대금 등 50여 가지의 국악기와 장식용 미니어처를 만든다. 몇 대를 물려도 될 만한 악기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제작촌 사람들의 일념이다.

 

물론 대를 이어 쓸 만한 악기를 만들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재료부터 좋아야 한다. 조 대표가 울림통부터 작은 부품에 이르기까지 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까닭이다. 그는 살아있는 나무를 베는 순간부터 악기의 운명이 정해진다고 했다.

 

"나무도 아무 때나 베지 않아요. 나무가 동면에 들어가기 직전인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자를 수 있어요. 봄이 와서 나무에 물이 오르면 조직이 물러져 쓸 수가 없어요. 베기 전에 두드려보면 대강 어떤 소리를 낼 것인지도 알 수 있어요. 딱따구리가 파먹은 데가 있으면 그 나무는 썩었다고 보면 틀림없고요."


그는 앞으로 10년 동안 쓸 재료를 구해 놓았다고 했다. 실제로 오동나무 널판 수천 장이 통풍 잘 되는 창고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건물 외벽을 따라서도 그만큼의 널판이 도열하듯 세워져 있었다. 수십 장씩 포개놓아 눈과 비를 맞추며 자연풍에 말리는 중이었다. 가야금 울림통으로 쓰일 널판은 5년간 건조시키는데, 뒤틀려 쪼개지거나 썩는 것을 제외하면 절반가량만 살아남았다.

 

"30년 가깝게 가야금을 만들어보니 명기(名器)가 나올 확률은 3천 대에 1-2대입디다. 3년에 1대 꼴이죠. 울림통하고 명주실, 안족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나옵니다. 그런 건 팔지 않아요. 제가 갖고 있거나 국악계 대가들한테 드리죠."

 

제작촌이 매진하는 또 하나의 사업은 국악기 개량과 복원이다. 제작촌은 그동안 다양한 화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가야금과 거문고 현의 수를 늘리고, 음량을 키우기 위해 울림통을 확대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를 통해 15, 18, 20, 25현 가야금과 11, 14현 거문고를 선보였다.

 

고(古)악기 복원사업은 '잠자는 소리를 깨우는 작업'으로 비유됐다. 10년 전, 조 대표는 몸통이 사라지고 현을 거는 부분만 남은 양이두(羊耳頭) 발굴 뉴스를 보고 이튿날 현장으로 달려갔다. 출토된 양이두는 몇 년 후 8현금으로 복원됐고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시연회를 가졌다.

 

소리란 형체가 없기에 시공간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웠고, 상상력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일부 조각만 남은 마한시대 악기의 떨림까지 부활시켰다. 제작촌에선 무르익은 소리, 다가올 소리뿐 아니라 흙 속에서 혼곤히 잠자던 고대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043-742-7288, www.nangyekukak.or.kr

 

 

▶난계국악박물관

 

영동은 난계 박연(1378-1458)이 나고 묻힌 곳이다. 고구려 왕산악, 신라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박연은 조선조 세종 때 국악의 이론과 연주법을 정비했다. 당시 음악은 지금처럼 도락의 수단이 아니라 통치이념의 구현을 위한 도구였다. 백성을 순화시키고 미풍양속을 지켜나가는 방편이었다.

 

난계국악박물관은 난계실, 국악실, 체험실 등으로 구성된다. 난계실에선 박연의 생애와 업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의 일대기와 영정을 재현한 전시물을 중심으로 연표, 연주모형, 국악기 제작과정 등 국악의 맥을 살필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난계가 국악사에 끼친 영향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당시 제대로 조율되지 않는 악기들의 불협화음을 해결하기 위해 난계가 창안해낸 12율관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난계는 죽관(竹管), 구리관 등으로 만든 12율관으로 음의 높낮이를 규정해 조선조 음체계의 기본음을 세웠다. 죽관의 길이는 자(尺)의 기준이 되고, 그 속에 채워지는 기장의 양은 부피와 무게의 척도가 되었으니 음악은 일상사의 표준이었던 셈이다.

 

국악실은 전통 국악기들이 현악기, 타악기, 관악기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정악연주 때 입었던 의상도 소개된다. 체험실은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국악기 90여 개를 비치해 놓아 관람객들이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다. 마음의 정화와 정신의 고양을 위한 공감각적 체험이 가능하다. 월요일 휴관. 043-742-8843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국도 영동IC→영동읍→4번 국도(옥천 방향)→심천면 고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