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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10-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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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배령의 단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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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 10년 전 떠난 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햇살 하나만으로도 풍만함이 느껴지는 추석 오후.
저는 지금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에 앉아 있습니다. 지난 여름 야생화가 영화롭게 피었던 이 곳에는 물기없는 가을 바람만 가득합니다.
지금 곰배령 숲 곳곳에서는 붉은 단풍이 한여름밤 불꽃놀이처럼 터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푸른색 도화지에 붉은 물감을
떨어뜨린 듯 합니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공존. 온통 붉은빛을 띠는 절정의 가을 숲보다, 절정으로 치닫기 직전에 잠시 나타나는 이런
절묘한 공존이 더욱 마음에 듭니다.
막내 없는 차례상, 혹시 섭섭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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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곰배령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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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깊고도 높은 곰배령에 들어온 지
나흘째입니다. 혹시 오늘 아침 차례상에서 막내아들이자 아버지의 마지막 '인생 파트너'가 보이지 않아 섭섭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제가 명절의 차례마저 회피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족과 차례없이 맞이한 명절이 제게도 조금 어색합니다.
사실 서른살이 넘으면서부터 명절은 부담스런 날이 됐습니다. "결혼은 언제 할래"부터 시작해 "머리 더 빠지기 전에 장가가야지"로
끝나는 친척들의 질문 공세는 곤혹스럽습니다. 그리고 형수님들은 부엌에서 종일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남자들은 거실에서 꼼짝 않는, 명절이 되면
더욱 강력해지는 '보수적 풍경'도 반갑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산골에서 아버지와 둘이 살며 맞이했던 어린 시절의 명절은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 새벽이면 아버지는 고물 오토바이 뒷좌석에 저를 태우고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을 신나게
달리셨지요. 오토바이가 읍내(지금의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 닿으면 우리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수원 큰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여정'은 제게 큰 설렘이었습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아버지 등에 기대어 맡았던 새벽 공기의 알싸한 맛은 참으로 기묘했습니다. 그리고
수원까지의 길은 타잔처럼 살던 제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길이었습니다.
난 아버지와 둘이 사는 키작은 산골 소년
그러나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친척 어른들의 돈을 빨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집안의 막내인 것도 모자라 엄마없이 산골에서 아버지와 둘이 사는 키작은 산골 소년. 저에게 돈이 몰린 것은
당연했습니다.
저는 어른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꾸벅 인사하고 돈을 빠짐없이 챙겼습니다. 영악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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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배령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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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 그러나 그 돈의 주인은 저녁이 되면 아버지로 바뀌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미소를 짓고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어린이가 이렇게 큰돈을 가지고 있으면 큰일 난다.
아버지가 관리했다가 너 크면 다시 돌려줄게."
그 때는 아마 섭섭한 마음이 컸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그 돈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척 어른들은 그 돈이 아버지 주머니로 들어갈 것을 알고 저에게 준 것이란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됐습니다. 어린아이에게 흰 봉투에 돈을 담아 주는 모습은 지금 떠올려봐도 어색합니다. 그만큼 아버지와 저는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받았던 질문 "결혼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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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배령의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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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그리고 명절이면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던 저와 달리, 아버지는 많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란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됩니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차례를 지내고 모든 친척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면 아버지는 꼭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새 장가 들 생각 없냐?" "요즘 만나는 여자 없어?" "언제까지
산골에서 그렇게 살 거야?"
아버지는 그 때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고, 언제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때 코알라 새끼처럼 아버지 옆에 붙어있던 저는 "어, 우리 아버지 만나는 여자 많은데…"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답니다. 하하하. 사실 그 시절 아버지가 만나던 여자 많지 않았습니까. (그 비결 저에게 전수해주지 않고 떠난 점, 솔직히 가끔
아쉽습니다.)
지금 제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절을 달갑지 않게 한다면, 그 시절 아버지도 이혼 경력 때문에 적지 않게
난감했을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상 가족'의 테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당혹스런 날인 듯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사는 세상이니, 명절을 즐기는 풍경 또한 여러 빛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명절 때마다 친척들은 염려했지만, 아버지와
저는 나름의 방식으로 명절을 즐겁게 마무리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적지 않은 돈을 차지할 수 있어 기뻐하셨고, 저는 명절 때마다 멀리 여행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달리면, 달이 따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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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배령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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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 그러나 제가 무엇보다 아름답게 기억하는 명절 풍경은 따로 있습니다. 큰집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캄캄한
밤길.
아버지는 고물 오토바이에 저를 태우고 울퉁불퉁하던 비포장 길을 질주해 산골 집으로 향했지요. 저는 차가운 밤 공기 탓에
아버지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옆으로 돌려 당신의 등에 기댔습니다.
그 때마다 옆으로 돌린 저의 눈에는 청계산 능선 위에 걸린
보름달이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계속 질주하고 있는데, 달이 따라오는 듯 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라고 소리쳤지요. 아버지는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은 채 얼굴을 휙 돌려 잠시 달을 바라보시더니 "달이 너 좋아하나 보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도 달이 휘영청 뜬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고물 오토바이, 비포장 길, 나를 따라온다고 믿었던 달, 그리고 아버지 등에
얼굴을 묻었을 때 맡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냄새. 이 모든 것은 아버지가 제게 준 추석 선물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시월의
곰배령을 선물합니다
어젯밤(5일) 곰배령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그 달빛에 의지해 후배와 산책을 했습니다. 그
때 후배가 달을 바라보고 저에게 말하더군요. "선배, 달이 움직이는 것 같아." 아버지의 추석 선물을 다시 음미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차례상에 제가 보이지 않아 많이 섭섭하시겠지만, 이해바랍니다.
절을 올리지 못했지만 아버지에게 시월 곰배령
단풍과 아침가리 숲길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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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아침가리 숲 터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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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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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가리 가는 길에 피어난 구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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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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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배령 꽃님이네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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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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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사에서 아침가리로 넘어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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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박상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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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가리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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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마이뉴스
박상규 | |
![](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