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6-10-20 11:06]
경북 내륙에 자리잡은 청송(靑松)은 예부터 깊고 궁벽한 골짜기로 알려진 지역이다. 청송이란 이름부터가 그런 냄새를 짙게 풍긴다. 사방이 거미줄처럼 도로가 깔렸어도 아직도 청송은 좀처럼 마음을 내어서 들르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곳이다. 청정 공기와 맑은 물을 자랑하는, 무공해 고장으로 떠나보자. 아름다운 풍광과 콧속 깊숙이 느껴지는 맑고 신선한 공기가 긴 여행의 피곤함을 말끔히 씻어준다.
자연의 솜씨에 감탄 또 감탄
청송 땅에도 장가계의 절경에 버금가는 비경이 숨어 있다. 물속에 잠긴 왕버들의 단풍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아니 세 치 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지닌 주산지(注山池)가 바로 그 곳이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호젓한 비포장길을 800m 정도 걸어 들어가 만난 주산지는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물속에서 뿌리박고 사는 수백 년 수령의 왕버드나무 30수가 우리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채로운 풍경을 그려낸다.
호수에 밑둥치가 잠긴 왕버드나무는 가지가 축축 늘어진 여느 버드나무와 달리 하늘을 향해 꼿꼿이 가지를 뻗치고 있다. 연녹의 이끼옷을 입은 고목의 울퉁불퉁한 줄기는 물그림자로 수면에 고스란히 비친다. 주산지는 왕버들뿐만 아니라 청명한 하늘과 비껴드는 햇살, 각종 활엽수와 기암 등을 오롯이 품고 있다. 저수지 수면은 또 하나의 닮은꼴 세상이다.
줄기와 가지가 영험하다면 뿌리는 기괴하다. 가는 실타래 같은 것이 얽히고 설켜 빚어낸 자연의 솜씨에 감탄 또 감탄이다. 물속에 뿌리를 몇 백년씩이나 박고 있어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점점 신비롭고,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전망대에 이르니 주산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참 동안 못 속에 아랫도리가 잠긴 왕버드나무와 그 그림자를 지켜본다. 산 그림자가 아스라이 내려앉고, 사위가 어둑해지자 묘한 적막감과 평온함이 밀려온다. 잠시나마 시간을 잊고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명당자리다.
속세를 떠난 듯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하얀 물안개를 가슴에 담으려면 해가 뜨기 전에 주산지에 도착해야 한다. 새벽에 카메라만 들고 주산지에 가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밤 하늘과 수많은 별을 담고 있던 주산지는 어슴푸레 날이 밝을 즈음부터 서서히 변해갔다.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비경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물안개가 아스라이 깔린 주산지의 새벽녘 풍경은 그야말로 몽환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주산지는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신비스럽다 . 눈을 뗄 겨를이 없는 풍경은 속세의 잡념마저 날려버린다.
수면은 도화지가 되어 가을의 빛을 고스란히 풀어낸다. 수면 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은 오색단풍과 아름드리 왕버들단풍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별천지가 따로 없다.
당일 트레킹 코스로 안성맞춤
조선 후기의 문인이었던 홍여방은 “청송의 산세는 기복이 있어서 용이 날아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웅크린 것도 같으며, 냇물은 서리고 돌아 마치 가려하다가 다시 오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처럼 정성껏 빚은 솜씨인 듯 주왕산은 봉우리 하나 하나와 계곡이 어울려 경이로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국립공원인 주왕산의 들머리는 대전사(大典寺)다. 절골과 월외천 계곡 코스도 있지만 주왕산을 찾는 탐방객의 90% 정도가 이 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주왕산의 비경이 대전사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쯤의 계곡에 한데 모여 있고, 구두 신은 여자도 오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길도 순탄해서 가벼운 걸음만으로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봉우리들이 병풍을 친 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래서 주왕산 일대는 예부터 '석병산(石屛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일주문도 사천왕도 보이지 않는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남아 있는 건물의 양식으로 볼 때는 조선 중기를 넘지 못한 건물이 주를 이룬다. 천년사찰 뒤로는 주왕산의 대명사로 불리는 기암이 마치 산의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고 그 자태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대전사를 빠져 나오면 비경의 숲길이 열린다. 주방천 계류와 폭포, 소, 담 그리고 죽순처럼 솟아 오른 암봉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같은 절경을 빚어낸다. 주방천변의 맑은 물에 반하다보면 큰 바위에 조그만 자갈들이 수북이 쌓인 아들바위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뒤로 돌아서서 다리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 호기심에서 누구나 한번씩 돌을 던지고 지나간다.
아들바위를 지나 10분 가량 걸으면 자하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400m쯤 올라가면 통일신라 때 창건했다는 주왕암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파란 하늘이 아득히 내다보이는 좁은 바위틈 길을 따라 30m쯤 들어가면 주왕이 숨어 있다가 숨졌다는 주왕굴에 닿게 된다. 주왕산은 산 초입의 기암에서 무장굴, 연화굴, 백련암, 대전사까지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자하교를 다시 나와 북동쪽 계곡길로 들어서면 망월대와 급수대가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으로 압도해온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이곳을 빠져 나오자마자 곧바로 청학과 백학이 다정하게 살았다는 학소대와 성난 거인의 얼굴을 닮은 시루봉이 눈을 가로 막는다.
학소대 앞 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학소교를 건너면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돌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바위벽을 넘어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전혀 딴 세상이다. 하늘에 구멍을 뚫은 듯 치솟은 병풍바위가 시야를 막는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석벽 사이의 협곡 속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힘찬 물줄기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제1폭포다. 사방이 수직절벽에 싸여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가운데 폭포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린다.
선녀탕과 구룡소를 돌아나온 계곡물이 새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돌허리를 타고 힘차게 쏟아져 내려 자그마한 소를 이루고 그 앞에 깨끗한 모래밭과 자갈밭을 형성하여 아름다움을 더한다. 주왕산의 절경을 보면 무릉도원을 찾은 신선처럼 시 한 수가 절로 나온다.
제1폭포를 지나면 소박한 여성미를 느낄 수 있는 표주박 형상의 제2폭포와 규모가 웅장해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제3폭포, 그리고 생활폐수와 오수 등이 계곡을 오염시켜 결국 철거 중인 내원동으로 이어진다.
이제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전기 없는 마을' 내원동에서 가메봉을 거쳐 절골로 내려서면 주왕산 2대 기암지대를 모두 탐승할 수 있지만, 대부분 제3폭포나 내원동에서 발길을 되돌린다.
등산객 대부분이 주방천 쪽으로 몰리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절골은 좁은 협곡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절벽과 그 사이로 돌아 흐르는 청류, 그리고 절벽에 아슬하게 걸린 소나무와 단풍이 가히 절경 중에 절경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주왕산의 단풍은 바위벽에 붙어 있는 돌단풍이 압권이다.
단풍은 병풍바위, 시루바위, 장군암, 급수대, 학소대 등의 기암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나무가 설악산 못지않게 아름답다. 단풍구경을 겸한 당일 트레킹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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