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네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 염분 부족하면, 병 유발
가능성
식염(食鹽)이라고도 한다. 화학명은 염화나트륨 NaCl이다. 조미 ·염장 등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는 외에 소다(탄산나트륨), 그 밖의 공업 방면에서 대량으로 사용된다. 천연으로는 암염(岩鹽)이 다량 산출되며, 함호(鹹湖) ·염정(鹽井)
등에는 용해하여 존재한다.
또 바닷물에는 3% 가까운 염분이 함유되어 있다. 암염은 굴삭하거나 물을 주입하여 녹여서 염수로 퍼올려
그대로 또는 끓여서 재제염(再製鹽)으로 채취하는데, 외국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다.
함호인 경우는 함수를 천일 결정시켜 채염하는데
이것은 그레이트솔트호(미국), 맥레오드호 ·레프로이호(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볼 수 있다. 바닷물을 원료로 하는 경우에는 천일제염법에 의하여
채염하며,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연안, 홍해 ·지중해 연안, 북아메리카 ·멕시코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에서 볼 수 있다.
인간에게 소금은 생존상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소금을 얻기 위한 노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 원시시대에는
인간은 조수(鳥獸)나 물고기를 잡아 굶주림을 채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초식동물은 식물 속에 함유된 미량의 염분을 몸 속에서 농축하여 가지고
있으며,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그 염분을 소금의 보급원으로 삼았다. 다시 그것을 인간이 먹는다는 순환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게 되고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 동물을 쫓지 않고 농사지어 만든 식물을 양식으로 섭취하게 되자, 생리적
요구를 충족할 만한 소금을 보급하는 일이 어렵게 되고, 또한 식물 속에 함유된 칼륨을 많이 섭취하게 되었기 때문에 균형상 소금을 더욱더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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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하여 인간은 따로 소금을 만들어 이것을 식품으로 할 필요가 생겼다. 그 결과 이미
선사시대에 소금이 산출되는 해안 ·염호나 암염이 있는 장소는 교역(交易)의 중심이 되고, 산간에 사는 수렵민이나 내륙의 농경민은 그들이 잡은
짐승이나 농산물을 소금과 교환하기 위하여 소금 산지에 모이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소금을 얻기 위한 교역로가
발달하였다. 그 중심지 가운데에는 소금을 만드는 집을 뜻하는 독일어의 할레(Halle) ·할슈타트(Hallstatt)나 영어의
위치(-wich)가 붙은 드로이트위치(Droitwich) ·낸트위치(Nantwich) 등의 지명으로 현재도 남아 있다.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도 소금과 관련된 지명이다. 로마시대에는 소금이 관리나 군인에게 봉급으로 지불된 일이 있다. 봉급을
뜻하는 영어의 샐러리(salary)는 현물급여(現物給與)를 뜻하는 라틴어 살라리움에서 유래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들
때에 시체를 소금물에 담갔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를 비옥하게 하기 위하여 소금을 비료로 사용하였다. 또 그들은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소금을
신에게 바치고, 신에게 바치는 짐승의 고기는 짜게 하였다. 이런 풍습은 그리스 사람이나 로마 사람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소금이 물건의 부패를
방지하고, 물건을 불변으로 하는 힘이 있다고 하여 고대인은 소금을 변함 없는 우정 ·성실 ·맹세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원시시대에는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채취하거나 해조(海藻)를 태워서 얻기도 하였는데,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염분을 함유한 물이 솟아
나와 대상(隊商)은 그것에서 소금을 얻었다. 유럽에서는 철기시대부터 암염이 이용되고, 때로는 암염이 있는 곳에 물을 붓고 소금이 녹은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채취한 일도 있다. .
한국에서는 고려 이전의 소금에 대한 문헌은 매우 적다. 다만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고구려조에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신라나 백제에서도 해안지방에서 소금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도염원(都鹽院)을 두어 염분(鹽盆)을 국가에서 관장하여 직접 소금을 제조 ·판매하여
재정수입원으로 삼았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사유로 이관하였다가 다시 1309년(충선 1) 염정을 민부(民部)에 이관하고 유통부분에서는 중국의
입포매법(立鋪賣法)과 계구매법(計口賣法)을 모방하여 포(布)를 납부하게 하여 소금을 구입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연안의 주군마다
염장(鹽場)을 설치하여 관가에서 소금을 구워 백성들은 미포와 환물하였는데, 1411년(태종 11)에 염장역미법(鹽場易米法)을 폐지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소금은 국가의 중요한 재정 세원이었다. 그리고 궁가와 아문(衙門)경영의 소금은 일부 현물로 수납하고, 일반민영은 세금을 과해
왔다. 그 후 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가 되자 소금은 완전히 전매제(專賣制)가 되었고, 1961년에 염전매법이 폐지되자 종전의 국유염전과
민영업계로 양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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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소금은 생리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그 이유는 소금은 체내, 특히
체액(體液)에 존재하며, 삼투압의 유지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혈액 속에는 0.9 %의 염분이 함유되어 있다. 소금의
나트륨은 체내에서 탄산과 결합하여 중탄산염이 되고, 혈액이나 그 밖의 체액의 알칼리성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또 인산과 결합한 것은
완충물질로서 체액의 산 ·알칼리의 평형을 유지시키는 구실을 한다.
따라서 어떤 원인으로 체내에 산이나 알칼리가 증가하여도 체내의
산 ·알칼리도(度)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또 나트륨은 쓸개즙 ·이자액 ·장액 등 알칼리성의 소화액 성분이 된다. 만일 소금 섭취량이 부족하면
이들의 소화액 분비가 감소하여 식욕이 떨어진다. 또한 나트륨은 식물성 식품 속에 많은 칼륨과 항상 체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칼륨이 많고
나트륨이 적으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또 염소는 위액의 염산을 만들어주는 재료로서도 중요하다.
이상과 같이 염분이
결핍되면 단기적인 경우에는 소화액의 분비가 부족하게 되어 식욕감퇴가 일어나고, 장기적인 경우에는 전신 무력 ·권태 ·피로나 정신불안 등이
일어난다. 또 땀을 다량으로 흘려 급격히 소금을 상실하면 현기증 ·무욕 ·의식혼탁 ·탈력 등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뚜렷한 기능상실이
일어난다.
소금의 필요량은 노동의 종류, 기후 등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보통 성인에서는 하루 12∼13 g이다. 한편 소금의
과잉은 고혈압증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혈액 속의 염분 농도가 증가하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수분이 혈액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진한 소금을 늘 섭취하는 것은 위암(胃癌)의 원인이 된다는 설도 있다.
소금은 삼투압이 강하므로 재료에 스며들기
쉽다. 또 삼투압 작용에 의해 생물체의 수분을 강하게 밖으로 빨아 내는 작용이 있다.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면 풀이 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소금은 요리할 때 맛 이외에 각종 물리적인 작용을 식품에 미친다. 삼투압 외에 밀이나 어육(魚肉) 단백질에 대해서는 농도가 낮을 때에는
용해하도록, 농도가 높을 때에는 응고시키도록 작용한다. 또 소금은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작용도 있다. 달걀요리에 소금을 쓰면 단단해지며,
생선살코기에 소금을 뿌리면 살이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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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구울 때 소금을 뿌리면 덜 탄다. 소금에는 방부작용이 있지만, 농도를 12% 이상으로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소금은 사과 등을 갈색으로 만드는 폴리페놀산화효소 등의 효소의 작용을 막아 갈변을 방지하거나
비타민 C의 공기산화(空氣酸化)를 방지하는 작용이 있다. 토란 ·문어 ·전복 등의 끈끈한 점액을 없애는 데도 소금이 유효하다.
짠맛은 신맛[酸味]을 더해주며 맛을 부드럽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신맛이 강한 것은 소금을 치면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금은 단맛에 대해서는 단맛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설탕량에 대하여 소금이 0.2%인 때 단맛이 최고가 된다. 단팥죽의 맛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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