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건강】

회사가 준 ‘마음의 병’ 회사가 치료 나선다

피나얀 2006. 11. 6. 20:54

 

출처-[한겨레 2006-11-06 12:03] 




컨설팅 기업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회사원 박진철(34·가명)씨는 운전을 하면서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데 고객이나 회사 동료 모두 항상 일로 엮여 사니까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이들이 없다. 프레젠테이션이든 보고서든 성과가 유리알처럼 드러나고 비교되니 삶이 늘 숫자로 기록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에 이메일로 예약신청을 했다고 털어놨다. “상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동료들끼리 서로 알까봐 겁나니까 이메일로 각자 예약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인사부에서 알게 되면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는 1년 전 업무에 짓눌려 있던 동료 컨설턴트가 자살한 기억이 떠올랐다며 치료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했다.

 

1997년 대학 졸업 뒤 아이티 업계에서 일해온 김승민(35·가명)씨도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주기적으로 ‘위태로움’을 느낀다. “일에 매달릴 때는 괜찮지만 마감을 넘기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들어 한없이 우울해진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회의가 들고 일상이 무의미해진다.” 그도 곧 사내 상담실을 찾을 계획이다.

 

직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얻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회사가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접 심리상담사를 채용해 업무시간에 상담을 받게 하거나, 외부 전문 상담기업에 아웃소싱을 맡기는 것이다.

 

2001년부터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현재 9개의 사업장에서 15명의 심리상담사가 일하며 한 해 700건 정도의 상담을 받고 있다. 엘지씨엔에스도 지난달 ‘마음쉼터’라는 상담소를 사내에 열었다. 메신저, 이메일, 방문상담 등 한달새 140건 정도의 상담이 이뤄졌으니, 꽤 인기가 높은 셈이다.

 

엘지씨엔에스 입사 2년차인 강지민(26·가명)씨는 한달 전 이곳에서 적성·성격검사를 받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업무 속성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고 분석적·논리적 사고를 해야 하는데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내 성격 때문인지 의욕이 없고 재미가 없었다.”

 

그는 상담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불만의 원인과 문제를 개선할 방법을 발견했다고 했다. 주일정 심리상담사는 “직원들은 남에게 털어놓기 힘든 문제들을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을 매우 원했다”며 “외근하는 직원들은 메신저를 통해서라도 상담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신건강 관리를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회사도 생기고 있다. 사내 상담센터는 일상적인 심리상담을 주로 맡고 있어 직원들이 심각한 처지에 놓였을 때 대처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데다, 사내에 위치하고 있어 ‘비밀보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설립된 다인시앤엠은 기업의 직원지원프로그램(EAP)을 전문으로 대행하는 회사다. 하나은행,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구글코리아, 매쿼리은행, 수자원공사 등과 계약을 맺고 직원들의 정신건강 상담을 맡고 있다. 이 회사의 강민재 컨설턴트는 “상담 범위, 이용률에 따라 다르지만 직원 1명마다 연간 3만~3만5천원꼴로 계약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다인시앤엠의 심리상담사 양경연씨는 “상사와 안 맞는다거나 까다로운 고객 때문에 괴롭다는 등의 직무 스트레스도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심리적 바탕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인지치료를 통해 내적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비행기 추락사고나 화학공장 폭발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회사 시이오(CEO)가 정서적 안정이 안 돼 판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회사 존립이 흔들릴 수도 있다”며 “이제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사람을 갈아치우는 식으로 넘어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또한 회사 위기관리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