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문화일보 2006-11-08 14:38]
# 강천산이 품고 있는 곱디고운 아기단풍과 붉게 익은 홍시 전북 순창의 강천산은 등산로 초입의 폭신한 흙길과 아름다운 계 곡이 풍경화처럼 낭만적인 곳이다. 특히 등산로를 따라 늘어선 단풍나무가 붉게 물드는 이즈음이면 선경과도 같은 경치를 선사 한다.
하지만 사실 이것저것 따지고 들자면 강천산은 의외로 흠 이 많다. 강천산이 가진 아름다움의 상당 부분이 ‘인공의 손길 ’이 닿아서 만들어진 탓이다.
강천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산길로 막 접어들자마자 만나는 병풍 폭포며 강천사 뒤편의 구장군폭포를 바라보며 탄성을 터뜨리지만 , 사실 이 폭포는 모두 인공폭포다. 하류 쪽에서 전기펌프로 끌 어올린 물을 폭포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곳곳에 만들어 놓은 벤치가 운치 있고 콘크리트 정자는 편리하지만, 자 연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굵은 모래를 깔아놓은 이른바 ‘맨발 산행로’도 사실 트럭에 모래를 실어다가 부어서 조성한 것이다.
등산로에는 곳곳에 숨겨놓은 스피커를 통해 은은하게 클래식 배 경음악까지 깔린다. 이런 인공의 냄새가 어떤 사람에게는 못마땅하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가을의 정취를 돋워주는 낭만적인 소품이 되는 법.
같은 풍경을 두고도 저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니 시비가 생길밖 에…. 하지만 강천산의 화려한 가을단풍 앞에서만큼은 이런 논란 이 부질없다.
계곡을 온통 붉게 물들인 단풍은 등산로 초입부터 시작돼 산길을 따라가며 펼쳐진다. 계곡을 끼고 고운 단풍나무와 우람한 메타 세쿼이아가 번갈아 나오는 산길을 20여분 걸으면 소박한 절집 강 천사다.
강천사 일대는 강천산 단풍의 하이라이트. 노랗고 빨간 색으로 온통 눈이 부시다. 자연이 스스로 만든 것이든, 혹은 사 람 손을 빌렸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작은 폭포며 옥색 물빛에 붉은 단풍이 하나 둘씩 떨어지면 계곡물까지 금세 붉게 물들 것 만 같다.
# 강천사의 비구니가 가지 끝에 남겨 놓은 홍시 강천산의 가을 풍경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강천사 절집 앞에 서있는 한 그루의 감나무다. 네댓 살짜리 아이 주먹만 한 붉은 홍시를 가지마다 가득 달고 있는 감나무 한 그루.
그 뒤편 으로 오래되고 소박한 절집이 배경으로 서있다. 절의 비구니 스 님은 간혹 장대를 들고 감을 몇개씩 따내지만, 기실 풍성하게 열 린 붉은 감은 산새들 몫이다. 하지만 등산복 차림의 길손들도 까 치 몇마리가 홍시를 쪼는 풍경에서 가을을 만나니, 산새들과 붉 은 감을 나눠 가지는 셈이다.
강천사는 고려 충숙왕 때는 1000명의 승려가 기거했고 암자만 열 두 개에 달하던 큰 절이었다. 1316년에 세워졌다는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이 그 역사를 말해준다. 그러나 요즘 강천사는 대웅전 보수공사로 수선스럽다.
절집 마당에는 여기저기 공사용 자재들 이 나뒹굴고 있다. 그럼에도 강천사에 들어서며 마음이 깊어지는 것은, 지금이 가을이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리라. 절집 문에 들어서고야 단풍이 그저 색깔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 는다. 새 잎이 나고 자라다가 가을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끈을 놓 고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까지 새삼 생각이 가 닿게 되는 것이다.
강천사 주지 스님은 단풍철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번잡스러웠는지 출타하고, 괄괄한 성격의 비구니 혼자 절집을 지키고 있다. 법 명을 물어도 대꾸조차 하지 않던 비구니. 슬그머니 일어서 카메 라를 쥐고 사진을 찍자 그제서야 “정작 찍을 것은 하나도 안 찍 느냐”며 불호령이다. 단풍이 물든 경관에만 넋을 빼앗긴 모습이 못마땅했었을까. 단풍과 낙엽의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굳이 이유는 묻지는 않았다.
강천사를 들렀다면 홍화정을 거쳐 50m 높이에 걸려있는 현수교까 지 가봐야 하는 것이 순서다. 매표소에서 40분 정도면 넉넉히 닿 는다. 내친김에 전망대가 있는 신선봉에 올라 강천산의 전체 모 습을 감상하고 삼인대 쪽으로 내려와 다시 강천사로 하산하는 코 스도 좋다. 2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 백양사 쌍계루에서 만난 새빨간 단풍에 멀미가 나다 강천산을 돌아나와 전남 장성의 백양사를 찾는다. 백양사는 사실 내장산을 찾았다가 인파에 치어 ‘꿩대신 닭’으로 찾아나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때로는 닭이 꿩보다 더 나은 법. 백양사의 아기단풍은 지금 산불이라도 난 듯 붉게 타오르고 있다. 백양사 입구의 백양관광호텔 앞에서 매표소까지의 1.5km 구간에는 단풍 이 흐드러지게 물들었다.
백양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단풍나무가 둘러싼 단아한 정 자인 쌍계루에서 만날 수 있다. 울긋불긋 물든 산과 고요한 물, 여기에 붉은 단풍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백양사의 가을풍경은 절 정으로 향한다. 백양사 경내를 벗어나 등산로를 따라 1시간쯤 오 르면 만날 수 있는 학바위. 이곳에서는 붉은 단풍숲으로 포위돼 있는 백양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백양사가 깃든 백암산은 줄기가 내장산과 맞닿아 있어 내장산 국 립공원에 속해 있다. 예년의 경우는 백양사의 단풍이 물드는 시 기가 내장사 단풍보다 며칠 일렀지만, 올해는 내장산과 거의 같 다. 올가을 날씨가 널뛰기를 계속하면서 단풍도 두서없이 이곳저 곳에 옮아가고 있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 일대 은행 잎은 노랗게 물들었다가 다 떨어져버리고 말았지만, 서울의 가로수길 은행 잎 은 아직도 청청한 푸른색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올해 단풍은 게 릴라와도 같다.
이번 주말이면 백양사의 단풍은 마지막 절정에 도달한다. 워낙 단풍이 유명한 곳이라 단풍철에는 행락객들로 붐비지만, ‘가을 에는 단풍잎보다 사람들이 많다’는 내장산에 비하면 그래도 사 정은 좀 나은 편. 그러나 이곳도 휴일에는 행락객들이 몰고온 차 량들로 일대 도로가 가득 찬다.
# 내장산 단풍, 올해도 그 이름 값을 톡톡히 하다 굳이 내장산을 찾은 것은 단풍이 예년만 못했던 올가을에도 내장 산의 단풍은 예년의 아름다운 색감을 잃지 않고 있을까 하는 궁 금증 때문이었다. 내장산 단풍이 첫손으로 꼽히는 것은 먼저 ‘ 나무의 크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내장사까지 들어가는 도로 주변의 단풍터널에는 수령 50년은 넘었음 직한 단풍나무 거목들 이가지마다 풍성하게 단풍잎을 달고 있다. 내장산 단풍은 유난히 밝은 선홍색이다. 다른 곳 단풍보다 잎이 얇고 작아서 햇볕이 잘 투과되기 때문이다.
맑은 물에 세워진 우화정을 지나면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에서 내장사 입구까지의 아치형 단풍 통로에서는 행락객들의 감탄사가 쏟아진다. 다른 곳의 단풍이 예년만 못했기에 내장산에서 보는 단풍의 감동은 더 크다.
내장사 뒤편의 서래봉 일대의 단풍도 곱 게 물들었다. 내장사 북쪽에 기기묘묘하게 솟은 바위봉우리가 바 로 서래봉. 1100m에 달하는 바위절벽이 단풍과 어우러지면서 장 관을 이뤘다.
내장산 단풍을 즐기려면 단풍터널을 지나 내장사를 둘러본 뒤 케 이블카를 타고 연자봉에 올라 1시간 거리인 신선봉까지 갔다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순서. 하산 시에는 케이블 카 대신 금선계곡 쪽으로 내려와도 좋다.
지난 주말 무렵부터 시작된 내장산 단풍의 절정은 이번 주말까지 계속된다. 급작스레 기온이 떨어지긴 했지만 서리가 내리면 단 풍잎은 더욱 붉어지는 법. 내장산 단풍의 ‘최고의 순간’을 만 나려면 이번 주말 안에 찾아야 한다.
그러나 주말에는 단풍관광 인파들이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에도 호남고속도로 정 읍 IC에서 내려서 내장사까지 가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주중 에 찾아가거나, 주말이나 휴일에는 아예 새벽에 도착해야 짜증 없이 단풍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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