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식도락 여행이 되어버린 가을 소풍

피나얀 2006. 11. 9. 20:53

 

출처-[오마이뉴스 2006-11-09 07:49]  



▲ 모전욕 장성 가는 길에는 많은 농가원이 있습니다.
ⓒ2006 윤영옥
가을은 1년 중 북경이 최고로 아름다운 시기입니다. 그 다음 좋은 때는 없습니다. 북경에서의 일 년은 '가을'과 '가을 아닌 나머지'로 나눌 수 있지요.

하늘 파랗고 햇빛 빛나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강의를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강의실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을수록, 한숨은 더욱 깊어집니다. '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수업하러 가야 한다니. 내가 학생이었으면 수업 빠지고 놀러 갈 텐데.'

'가을'과 '가을 아닌 계절'로 나뉘는 북경

다른 교수님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나 봅니다. 그날 점심시간 밥을 먹다가 한 교수님이 무심결에 내뱉으신 한 마디. "우리 가을 소풍 갈까요?"

그 말 한마디가 촉매가 되어, 가을 소풍 계획은 급격히 진전되었습니다. 바로 그 앉은 자리에서 장소와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장소는 북경 주재 한국인들의 온라인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조선족 분이 경영하는 한 민박집, 날짜는 4일 후인 주말.

놀러간다는 기대에 시간은 빨리도 흘렀고, 드디어 소풍날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예약한 그 민박집은 모전욕 장성 근처에 위치한 '금성 농가원'입니다. 저는 처음에 '농가원(農家院:농지아위엔)'이 고유명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전욕 장성으로 가는 길 양 옆에는 농가원이라는 간판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알고 보니 농가원은 홈스테이(home stay)나 팜 스테이(farm stay) 같은 숙박 형태의 중국식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는 길인데다 주변 경치가 너무 예뻐 전혀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가다보니 한 하천을 따라 올라가게 되었는데, 운전기사 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이 하천이 이화원(頤和園:이허위안)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이 아주 깨끗해서 이 일대에서는 물고기 요리가 별미인데, 특히 홍준어(虹鱒魚·홍준위)가 유명하니 꼭 먹어보라고 몇 번이나 강조를 하셨습니다.

이 지방에서 가장 잘 하는 요리라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농가원에 도착해 짐을 풀어 놓고, 모전욕 장성으로 가기 전에 다시 운전기사 아저씨의 추천을 받아 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호기 어린 목소리로 홍준어를 먹겠다고 했지요. 식당 뒤편에서는 직접 홍준어를 양식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잡아 무게를 재어 값을 매기고 요리를 해줍니다.

▲ 식당에서 직접 양식하고 있는 고기를 바로 잡아서 요리합니다.
ⓒ2006 윤영옥
주인이 물고기를 잡고 나서 회로 먹겠냐 구워 먹겠냐고 물어봅니다. 민물고기를 회로 먹기에는 조금 떨떠름해서 구워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늘 먹던 익숙한 음식을 몇 접시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물고기의 이름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홍'자는 붉은 홍일까? 아냐, 물고기가 노란색이니까 아닐 거야. 그럼 '준'자는 군사 군자일까(실제로 軍과 鱒은 중국어로도 발음이 다릅니다. 하지만 저희의 중국어 실력으로는 글자를 보지 않고 말만 들어서는 비슷하게 들렸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해보아도 다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해결은 되지 않고, 이윽고 음식이 나왔습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생선 구이. 워낙 배가 고팠던 지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생선살이 무척 부드럽고, 민물고기치고는 가시도 많지 않습니다. 중국식 향신료가 뿌려져 있지만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못 먹는 중국의 특선 음식을 먹었다고 무척이나 뿌듯해하면 식사를 마쳤는데……. 나중에서야 그 '홍준어'가 '송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기한 홍준어, 알고보니...

▲ 홍준어 구이. 홍준어의 정체는 나중에 밝혀져, 약간의 배신감(?)을 주었습니다.
ⓒ2006 윤영옥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 것을. 처음 먹어보는 생선이라고 다들 굉장히 신나했었는데. 그래도 뭐, 한국에서는 송어를 이렇게 구워 먹지는 않으니까 새로운 음식이긴 하다며 서로를 위안했습니다. 송어면 어떻고 고등어면 어떻습니까. 굉장히 기쁘게, 아주 맛있게 먹었는걸요.

모전욕 장성에 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모전욕 장성은 별로 긴 거리가 아닌데도 괜히 피곤합니다. 다들 방에 뻗어 있다가, 주인아주머니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느끼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는 한창 고기를 굽고 계셨습니다. 싱싱한 고기, 뚝뚝 떨어지는 기름, 활활 타오르는 숯불. 좀 전에 방에서 '아직 배가 안 고픈데'라고 했던 것이 무색하게, 갑자기 배가 고파집니다.

▲ 보기만 해도 침이 꿀떡 넘어가는 숯불구이
ⓒ2006 윤영옥
언제 다 구워지나 주변을 계속 서성이며 고기 익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주머니는 방에서 먹겠냐 밖에서 먹겠냐 물어보십니다. 밖에서 먹겠다 했더니 마당 한 쪽에 모닥불을 피워주십니다. 어둠이 어둑어둑 내리 깔리고, 모닥불은 타닥타닥 타오르고. 분위기 최고입니다.

밭에서 직접 기르셨다는 상추와 깻잎에 숯불구이 고기를 싸먹는 맛. 아~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정겨운 맛입니까. 그런데!!!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고기가 아니었습니다. 고기를 굽고 있을 때, 그 옆에서 타일로 만든 아궁이에 밥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 아궁이가 과연 아궁이의 역할을 제대로 할까 미심쩍었는데, 가져다주신 밥맛은…. 옛날 시골에서 먹던 맛 그대로였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 타일로 만든 아궁이. 어설퍼 보여도 그 기능은 그만입니다.
ⓒ2006 윤영옥
고기 먹을 때는 밥 한 숟갈 안 먹고 고기만 먹는 제가 오히려 그 밥 때문에 고기를 못 먹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쌀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건, 제게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같이 갖다 주신 누룽지도 어찌나 바삭하고 고소하던지. 저녁을 다 먹고 모닥불 근처에서 술 한 잔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으려니, 아까 고기 굽던 숯불에 함께 구운 고구마와 밤도 갖다 주십니다. 모닥불이 꺼질 만하면 오셔서 장작을 넣어주십니다. 놀러 와서 이렇게 편하게,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쌀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 밤이 깊을 수록 모닥불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2006 윤영옥
다음날 아침, 칼칼한 고추장찌개가 올려진 아침상을 받았습니다. 부족하지 않게 먹으라고 찌개와 밥도 커다란 그릇에 따로 담아 더 갖다 주십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인상만큼이나 넉넉하고 푸근하십니다.

잠깐 중국에 여행 오시는 분들께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오래 외국에 체류하는 경우에는 한국 음식이 무척 그립기 마련입니다. 방에서 음식을 직접 해먹지 않는 제게는 더욱 그러하고요. 가을 소풍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농가원이 한국식 삼식(三食)을 제공한다는 것이었지요.

아침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 새, 아주머니는 다시 점심 준비로 바쁘십니다. 점심 메뉴는 닭백숙과 닭죽. 마당의 평상에 앉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옵니다. 동네는 참으로 조용합니다. 먼저 닭을 뜯어먹고 나니 닭죽을 주십니다.

▲ 허한 몸 원기보충엔 닭백숙이 최고~
ⓒ2006 윤영옥
인삼과 대추와 밤, 은행을 고루 넣고 오랜 시간 푹 끓인 닭죽은, 신기하게 닭뼈 우린 맛이 아니라 소뼈를 우린 맛이 납니다. 보얀 국물이 아주 진하고 쌀알은 부드럽게 퍼져 있어 술술 목으로 넘어갑니다.

1박 2일의 이번 가을 소풍은 맛있는 음식 먹은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중국 음식 때문에 허했던 몸이 꽉 채워지는 기분입니다. 누가 가을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했나요? 가을은 천고인비(天高人肥)의 계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쓰고 있는 번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말발음(한자:중국어발음)'의 형식으로 표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