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gif)
출처-2006년 11월 12일(일) 오후 2:02 [오마이뉴스]
![](http://news.nate.com/picture/2006/11/12/108//dach_328231_1[546434].jpg) |
|
▲ "여보, 잘 댕겨오소!" |
|
ⓒ2006 김민수 |
| 강원도 어느 산골에 아주 오랫동안 그 곳을 지키며 살아온 노부부가 있습니다. 마을이라고 해야 산길을 따라 10여분 내려가야 집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산골입니다.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부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늘 반갑고 헤어질 때가 되면 아쉬워 "다음 주에 꼭 와야 하우"하며 손을 놓질 못하는 마음씨 좋은 노부부가 있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라고는 내외지간일 터이니 지겨울 법한데도, 잠시 밭이나 논에 일하러 나갈 때면 먼 길을 가는 듯 아쉬워합니다.
산골의 밤은 일찍 시작됩니다. 그러니 그 긴긴 밤 홀로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마 홀로였다면 산골 집 버려두고 외지로 나간 자식들을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둘이라는 것,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고마운 일이지요.
때론 토닥토닥 다투기도 할 것이고 수십 년을 함께 살았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젠 그 다툼조차 그냥 소꿉놀이처럼 금방 끝나버리니 싱겁다고 하십니다.
할머니가 서서 논으로 일하러 가시는 할아버지를 배웅하고, 할아버지도 고개를 내려가기 전에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할머니를 보고는 논으로 향합니다. 경운기 소리가 제법 멀어졌을 때에야 발길을 돌리시는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새참을 준비하십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산골, 그 곳에 이렇게 자연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http://news.nate.com/picture/2006/11/12/108//dach_328231_1[546437].jpg) |
|
▲ 할머니가 서있던 그 자리를 걸어가고 있는 할아버지. |
|
ⓒ2006 김민수 |
| 수시로 그 곳을 드나들면서 그들의 조용한 삶을 훼방하는 방해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훼방꾼을 싫다 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갈 시간만 되면 "다음 주에 꼭 와야 하우"하십니다.
그 언젠가 감자를 수확할 무렵 그 곳을 찾았을 때,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물길에 갇힐 뻔 했던 그 날, 이미 내린 비에 길이란 길은 질척질척 흙길이었습니다. 잠시 쨍한 햇살이 내리쬐자 썩기 전에 감자를 거둔다고 밭으로 향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랍니다.
삶이라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진흙길을 걸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휘적휘적 걸어갈 만큼 자유스러운 상황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비가 와도 질퍽거릴 줄 모르는 도시의 길, 살 만한가요? 자기의 십자가 없이 살아가는 삶이 정말 행복해서 미치도록 살만할까요?
내게 펼쳐진 길도 걸어갈 수 있기에 펼쳐진 것이고, 내게 지워진 짐도 질 수 있기에 주어진 것입니다. 산야에 피고 지는 들꽃들을 만나면서 삶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저 작은 들꽃들도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돌아보는 것이지요.
어떤 때는 내게 지워진 짐이 무거워서 쩔쩔 맬 때도 있고, 구두를 잘 닦아 신고 나왔는데 돌아갈 수도 없는 진흙탕 길을 만난 것처럼 황당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너무나 화가 나서 하나님께 항의하지요. '도대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 있는 것이냐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살아 있으니까 진흙탕 길도 걸어가고 짐도 지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흙탕 길을 맨발로 걸으면 꼬물꼬물 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흙의 느낌도 색다르고, 짐을 지고 가면 가볍게 걸어가는 것보다 더 깊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잖아요.
이번 주에는 당직이 있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빈말로 "서울양반, 다음 주에 꼭 와야 하우"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보처럼 진짜인 줄 알고 시간만 나면 그 곳을 찾아가 민폐를 끼쳤는지도 모르지요.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봄꽃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는 발걸음이 뜸해질 것 같습니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그 곳에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꽃이 피는 계절에 꼭 오겠다고, 기다리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와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다 자연을 닮은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등의 책을 썼으며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
![](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