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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006년 11월 14일(화) 오후 3:07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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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젤란 해협을 점령한 가마우지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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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동호 |
| 지난여름, 마음에 깊은 계곡이 생겼다. 군데군데 놓여있던 희망뿐 아니라 절망까지 휩쓸어가는 바람에 삶이 참으로 멍해졌다. 그렇게 홍수는 무서웠다. 마을의 당산나무는 기우뚱, 천년 세월의 삶을 순식간에 내던져버렸다. 먹구름이 걷히자 폐허 위에서 소문만 뒤숭숭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물난리 한 번 겪어본 일이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란 “하늘이 노했나?”뿐. 간혹 이상기후나 지구온난화 같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로부터 나는 물을 좀 의심하기 시작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지 않았나. 일찍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한 노자에게 선이란 꼭 좋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모양이다. 생명의 근원으로 추앙받던 비가 때로 홍수를 데려오고, 어제는 부드러운 새털구름이었다가 오늘은 먹구름이 되어 해를 가리고, 흙 속의 미네랄을 담아 흐르던 시냇물이 난데없이 공장폐수를 실어오기도 하고, 아름답게 쌓인 눈 사이로 크레바스가 악마의 입처럼 검은 목구멍을 드러내고…
많다. 물을 편견 속으로 몰아넣어서, 아주 부드럽고 유약한 것으로 둔갑시켜서, 마치 물을 제멋대로 다룰 수 있는 양 착각에 이르러, 어르고 달래면 영원히 곁에서 유유히 흘러줄 것이라고, 좋은 게 좋아서, 그 많은 물의 모습 중에서 유리한 것만 골라 취해, ‘상선약수’란 그런 과거의 이야기로…
숨차다. 절벽을 만나 장렬하게 내리꽂히는 폭포처럼 나의 가슴 속에 물벼락이 쏟아졌다. 남극에서다. 남극은 사실 얼음의 세계가 아니라 물의 세계다. 인간의 언어로 이름 붙여진 모든 물을 나는 남극에서 만났다. 바다, 구름, 호수, 눈, 비, 빙하, 빙산, 부빙, 유빙들이다.
물은 액체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기체이기도 했고 단단한 고체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증발하여 비나 눈처럼 찰나의 시간에 모습을 바꾸었다가, 빙하처럼 수억 년의 시간을 간직하기도 했다. 그렇게 남극의 물은 변화무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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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행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드레이크 해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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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동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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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안데스산맥. 장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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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동호 |
| 나는 남극으로 오는 길목에서 여러 형태의 물과 마주쳤다. 성운권 위로 솟구친 비행기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구름을 보았고, 이내 감상에 젖어들었다. 구름바다는 내가 본 가장 찬연한 바다였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푼타아레나스로 가는 비행기는 안데스산맥을 따라 이동했다. 만년설의 안데스산맥은 잉카문명만큼이나 신비로웠다. 솟구친 봉우리마다 아직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양과 교신하는 부족이 있을 듯했다.
푼타아레나스의 마젤란 해협에는 비가 내렸다. 그 해협으로 모비딕의 모티브가 되었던 에식스호가 지나갔을 터였다. 어린 선원이었던 허먼 멜빌의 머리위로 내리던 비가 내 머리 위로도 내렸다. 우루과이 군수송기가 드레이크 해협을 지날 때 나는 볼룸을 최고로 높여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을 들었다. 부빙들을 헤쳐 간 대항해시대의 범선들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위대한 열망들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거친 파도에 나는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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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곳곳에 입을 벌리고 있는 크레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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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동호 | 나는 생각했다. ‘물로 이뤄진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그러나 그건 너무 낭만적이었다. 남극 바다는 차고 예측할 수 없이 사나웠다. 수많은 생태계를 보듬어온 남극의 바다였지만 시시각각 인간의 목숨을 노렸다. 옥색의 빙하와 눈부신 백년설은 담합했다.
빙하가 크레바스를 만들면 눈이 그 위를 덮었다. 극지에 도전한 팔뚝 굵은 사내들이 그 밑으로 사라졌다. 동료들로 하여금 스스로 무능함에 치를 떨게 했다. 블리자드와 함께 온 눈은 어떤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와 옷 속을 적시고 서서히 체온을 앗아갔다.
그랬다. 남극의 물은 무섭다. 아니 모든 물은 무섭다. 그러나 이 물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노련한 대원들도, 초보 참관단도 모두 이 앞에서는 평등했고 조심했다. 바다로 나갈 때는 너나없이 방수복을 입는 것이 원칙이었다. 눈길을 걸을 땐 한발 한발 겸손하게 내딛었다.
노자의 이 말은 남극에 어울리는 것 같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인자하지 않은 과거의 하늘과 땅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었겠지만 남극에서의 해석은 다르다. 물은 인간에게 평등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남극에서는 비를 내려 옥토를 만들거나, 구름이 걷혀 양지를 만들지 않는다. 착한 물의 가면을 벗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깨닫게 한다. 인자하지 않음으로 해서 모든 이들을 가치 있게 하고 있다.
아, 한 가지를 잊었다. 남극에 아름다운 물이 하나 있는데 빼먹었다. 그리움의 눈물이다. 사랑의 눈물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흘리는 눈물이다. 남극의 사내들이 어제를 반추하며 흘리는 눈물을 나는 보았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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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톤반도 태극봉 인근에 펼쳐진 설원. 아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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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동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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