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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청명한 하늘이 아니라 잿빛하늘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아마 청명한 하늘이었다면 그 곳을 차마 걷지 못했을 것이다. 거리에서 바라보면 그저 아파트 빌딩숲인데, 그 뒤로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얼어붙은 저 하늘 / 얼어붙은 저 벌판 / 태양도 빛을 잃어…."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한동안 잊혀졌던 노래가 마음 속에서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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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도대체 사람은 왜 사람일까? 재개발 붐을 타고 투기꾼들이 들어오기도 했겠지만 정말 밀리고 밀려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이 이 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 아파트를 지어준들 그 곳에서 살 수 없어 딱지팔고 또 어느 달동네나 판자촌을 전전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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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다 무너져 내린 삶의 터전, 그 곳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따스한 방에서 코가 막힌다고 투덜거렸던 지난 밤이 부끄럽다. 아무 생각없이 먹고 마시던 물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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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전기도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지만, 잿빛하늘에 쪽방이 어두워 형광등불을 밝히고 있는 그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투기꾼이요, 재개발의 이익을 노리고 살고 있는 이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들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 한들, 그렇게 만든 이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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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그 언젠가 달동네 돌계단 골목길을 돌아돌아 올라가면서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이제 그 골목길조차도 폐허의 잔해 속에 묻혀버렸다. 그래도 그때만 해도 열심이 노력하면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하는 노랫말이 진실인 듯 들렸다. 그러나 이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뒤로 보이는 저 사각건물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신을 본다. 상실감, 무능력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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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여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붉은 락카 글씨는 마치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 사회가 사람 아닌 것처럼 바라보는 것에 대한 항변을 보는 듯했다. 그래,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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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오죽했으면,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았으면 이렇게라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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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그 언젠가는 달동네 꼬마들의 시선을 한껏 붙잡았을 작은 골목길의 가게, 이름이 '늘봄상회'란다. 늘 봄날 같기를 바랬던 그들의 소망이 들어 있어 겨울을 앞둔 이 곳의 풍광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얼마나 겨울이 지긋지긋했을까? 차라리 냄새나는 여름, 모기와 싸우는 것이 추운 겨울보다는 훨씬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여름도 겨울도 아닌 봄날, 그 얼마나 기다리던 봄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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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공용화장실이 제법 번듯한 것은 그만큼 이 곳에 살던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요, 한때는 번성했던 곳이라는 증거다. 아침마다 줄을 서서 배변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 우리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별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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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민수 |
| 모두 떠난 그 곳, 깨진 항아리는 이제 그 곳의 삶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음의 상징이다. 지금도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던 것들이 하나 둘 깨어져 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깨어지고,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져가고 있다.
겨울 초입, 그 곳에서 겨울을 나야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부디 이 겨울을 잘 이겨내시길.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다 자연을 닮은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등의 책을 썼으며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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